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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好同樂 ⑤] 이계진 회장과의 인터뷰

by 데일리아트 Mar 14. 2025

이계진 회장이 곤지암에서 둥지를 튼 지도 벌써 30년이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의 삶을 너무도 즐기는 듯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밖으로 나왔다. 시골 생활에 관심이 많은 기자도 전원의 아름다움을 직접 보고 싶었다.  기자를 안내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더니, 빨랫줄에 말리기 위해 걸어둔 이불을 걷어 어깨에 둘러멘다. 방 안에 있는 아내에게 갖다 주기 위해서다. 영락없는 사랑꾼이다. 아나운서 시절, 국회의원 그리고 이곳에서 무소유의 삶을 함께하는 아내가 그에게는 가장 소중한 보물이 아닐까? 아니 무소유를 실천한다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아내에게 잘 못한다면 이 또한 거짓일 것이다.모든 시대의 굴곡을 묵묵히 지켜준 아내에 대한 배려와 고마움이 인터뷰 내내 묻어 나왔다. 이곳에서의 전원생활에 대해 물어봤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나는 모든 꽃과 식물을 좋아 합니다. 여기저기에 많은 꽃들을 심어놓았습니다. 시골에서 살아보니까 한 500평은 돼야 시골 생활 좀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100평 정도면 관리하기는 편하지만, 집 지어놓고 잠만 자야해요. 좀 넓어야 여기저기 나무도 심고 밭도 만듭니다. 내가 살다가 처가든 처남이든 그냥 줘버리면 되니까. 꼭 내 꺼로 등기돼 있어야만 되는 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쓸 수 있으면 되는 거예요." 전원생활에 관심이 많은 기자보고 전원에서 살다가 나중에 누구에게든 줘 버리고 떠나라고 한다. 정말 무소유가 몸에 벤 사람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인터뷰가 무르익자 옛 날 방송에서의 친근한 아저씨 표정이 나왔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사가 궁금했다.


나는 6.25를 겪은 세대인데, 고향 원주에 전도사님이 계셨어요. 이분이 농촌 계몽에 관한 꿈이 있었어요. 나도 어릴 적에 구제품 받으러 크리스마스 같은 때 교회 갔는데, 전도사님이 교회에 문고를 만들고 책 한 100권 될까? 옛날에 <새벗> 같은 월간지도 갖다 놓고, 난 공부를 잘하는 편이어서, 책을 그냥 보는 겁니다. 동화, 읽기 어려운 톨스토이, 뚜르게네프, 부활, 카라마조프 형제 등도요. 중학교는 상당히 멀었는데 하루에 20리 꼬박, 한 4km도 휠씬 넘는 거리를 걸어서 가요. 원주 중학교가 강원도 영서에서는 제일 좋은 학교였는데 책 읽다가 늦은 시간, 해가 꼴딱 넘어갈 때 집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책과 함께 하면서 문학을 좋아하게 돼서 고려대 국문과로 들어갔는데 그 유명한 조지훈 선생한테 배웠어요"


문학을 전공했지만 시인이나 소설가는 되지 않았다. 높은 문학의 벽을 넘다가 생을 낭비하기보다 그냥 생활인이 되기로 했다. 그가 택한 생활인은 아나운서였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아나운서 시절 진행한 프로그램을 도자기에 새기니 빙 돌아가도 쓰지를 못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한국 아나운서 클럽  모임을 곤지암에서도 가끔 한다.


방송국이야기


아나운서 시험에 1등으로 합격하고 아버지에게 아나운서가 됐다니까, 아버지는 그렇게 즐거워 하지도 않으셨다. 아버지는 조그만 밭 뙈기나 가꾸면서 그냥 평범하게 살기를 바랬던 것이다. 어렵게 들어간 KBS 방속국, 그에게 좋은 프로그램을 맡기지 않았다. "그만두려고까지 생각했었어요. 그때만 해도 빽이 통하던 시절인데 내가 빽이 있습니까? 우리 학교에서 내가 제일 출세한 놈인데 누가 나를 밀어줘요? 혼자 8년 동안 별 볼일 없이 지냈어요" 어느날 방송국 사장이 점심먹고, 차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들어오다가 이계진이 진행하는 방송을 들었다.


"이 사람이 누구야? 그러니까 비서가 KBS 1기 아무개입니다. 근데 내가 왜 이 사람을 모르지? 워낙 사람이 얌전하고 배짱도 없고 그래서 지금 프로그램을 못하고... 라디오 프로 지금 처음으로 이거 하는 겁니다. 그랬답니다. 사장은 당장 내일 텔레비전 누구 내리고 거기다 집어넣어. 그래서 내가 <11시에 만납시다> 프로를 하게 됐어요."


방송국에서 그에게 큰 프로를 맡기는 것은 모험이었다. 그러나 이계진은 자기만의 소탈한 방송 스타일로 마이크를 잡았고, 그것이 시청자에게 어필했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아나운서가 되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법정 스님과의 대화. 그는 가끔 벽면에 걸린 법정 스님과 주고 받는 대화를 한다.


국회의원이야기


"나는 정치를 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어요. 내가 인기가 높아지니까 이 당 저 당 여러 당에서 나를 오라는 겁니다. 높은 정치인들이 죄 왔다 갔어요. 물론 보수는 물론이고 진보까지도 나를 불렀어요. 민주당에서 높은 분이 전화가 왔습니다.


"대통령 찬가가 나가고 대통령이 삥 돌아가면서 악수를 할 것이다. 그때 대통령이 사회석에 가서 악수를 하며 당신에게 잘 해보자고 하면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된다.'고 그래요 난 그게 싫었어요. 난 아나운서로서 생을 마치고 싶었는데... 그렇게 정치와 무관하게 방송 일을 하고 평소대로 똑같이 했는데, 당시 집권당이 나한테 시비를 거는 겁니다. 왜 특정당 목소리를 내고 방송을 하냐는 거예요. 프로그램을 자르고 하차를 시켜서 내가 고민을 많이 하다가 '나 방송 이제 그만하겠다'고 하고 방송국에서 나왔습니다. 그때가 방송 생활 30년 되는 해였는데... 그래서 자의반 타의반 방송국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달라이라마를 만나러 갔죠 .그리고 기도하고 와서 '나 정치하겠다' 그랬어요. 방송하려는 사람을 못하게 하는 정치 이거 이상한 거 아닌가요? 나는 국회의원 할 때도 돈 받으면 거기에 눈치 봐야 해서, 후원금 조차도 안 받고 정치했어요.


그런 식으로 하니까 내 인기가 올라가니까 도지사 나가야 된다고 해요. 여론 조사해 보니까 이기는 걸로 나오니까. 그래서 강원도지사 선거도 출마하고요. 그런데 판도가 이상하게 돌아가요, 내가 아주 정상적으로 하니까 선거판에서 안되더라고요. 소위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법으로 선거를 했어요. 법을 어기는 불법이 아닌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법으로, 정직하게 했죠. 그러니까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선거는 이기든 지든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6

          이계진 아나운서 부부와 법정 스님


법정스님 만난 이야기


"법정스님을 만난 것은 1990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스님이 계신 송광사에서 수련회를 하는데, 집사람과 아이들이 참석했어요. 아내가 너무 좋았다고 해서 서울에 올라온 법정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니까, 스님이 제가 그 당시에 월간<샘터>에 연재한 글을 보고 대뜸 '처사의 글을 보니 참 맑고 좋다'고 하시는 거얘요. 그때부터 인연이 되었죠. 그래서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다가, 나중에 대원각을 길상사로 만들 때 도움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어려울 때 가끔 찾아뵙습니다. 정치권에서 하도 정치에 입문하라고 해서 마음 먹고 조언을 받으러 찾아갔죠. 그랬더니 대뜸 그러시더군요. '처사가 정치에 나가요? 나가면 차 맛을 잃어버릴 거얘요' 그 말을 듣고  맘 접었습니다. 그 이후에 방송국 나와서 다시 찾아 뵙고 정치하려 한다고 하니 '이제 나이도 웬만큼 되었으니, 그 나이에는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해 보라'고 해서 정치에 입문한 계기가 되었죠.


그 후로도 저를 늘 후원하셨어요. 한 번은 소리 없이 저를 찾아와 선거판에 힘을 실어주려고 했죠. 그래서 저는 스님께 누가 된다는 생각에 그냥 보내드렸어요. 내가 낙선해도 되는데 스님의 이름이 세상의 입질에 오르는 게 너무 싫었어요. 어떻게 쌓아올린 스님의 명성인데 나의 국회의원 뱃지하고 바꾸겠어요. 스님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분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김에 현재의 시국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렸다. 무언가 나름대로의 해법이 있을 거 같아서였다.


"잘은 모르는데 정치인들이 말 따로 생각 따로 행동 따로 하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이 초래된 것은 아닐까요? 국민을 위한다고 말을 해요.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한 말로 하죠.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순간에도 '웃기고 있네. 내 마음속에는 이것인데' 라고 하죠.


그리고 그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행동은 또 다른 짓을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은 보수 정치인들은 진보 정치인을 만날 때, 얼굴은 웃지만 '저놈들 공산주의하고 통하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죠. 말 따로 생각 따로 행동 따로입니다. 그 사람 마음속에는 국회의원 어떻게든지 한 번 더 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이죠.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행 할 수밖에 없어요. 거짓말도 해야 되고, 거짓 여론조사도 해야 되고, 불법으로 돈도 써야 되고, 불법으로 청탁도 해야 되고...


대화하자고 하면서도 말 따로, 행동 따로, 하면서 대화를 하니까 이게 대화가 안 되고 협치가 안되는 겁니다."

그의 답은 의외로 명쾌했다. 말 따로, 생각 따로, 행동 따로 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무소유의 삶을 생각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사회의 해법이 있는 듯했다. 


매월 한 번씩 모여 무소유의 삶을 생각하고 성찰하며 반성하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변화될까? 더 가지지 못해서 남의 것에 대해서도 욕심부리는 제로섬의 사회이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하루의 삶에 성찰하다보면 나의 삶도, 우리의 삶도 분명히 변화되는 날이 올 것이다. 앞으로 몇 년 후 이분들의 삶을 다시 추적해 보고 싶ㅇ든 생각이 든다. 이 분들의 삶은,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변화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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