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현 선생님 영전에 부쳐

by 데일리아트

한인현 선생님을 만난 지 벌써 25년이 되었다. 이제 선생님을 뵐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스쳐 지나가는 추억 한 조각도 소중하게 생각된다. 대학에서 서예를 좋아하는 사람들 7명이 모여 '개심속리(서로 마음을 열자! 세상의 혼탁함에서 떠나자!)라는 모임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때다. 어느날 모임의 한 회원이 우리나라에 이런 예술가가 있다고 하면서 한인현 선생님을 소개해 주었다. 그 회원은 이계진 아나운서의 「바보화가 한인현」을 읽고 너무 감명을 받아 다짜고짜 개봉동 선생님 댁을 다녀왔다고 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저렇게 호들갑을 떠나 하면서, 우리 회원들은 선생님을 인사동에서 만났다. 그래서 선생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3059_8466_4042.jpg

2009년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앞줄 왼쪽 두 번째 한인현 화백, 뒷줄 세 번째 필자

3059_8467_4054.jpg

2014년 팔순 기념 사진. 앞줄 왼쪽 두 번째 한인현 화백


첫 만남에서의 생각은 어째서 이런 분을 이렇게 늦게 만났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선생님은 그때 일흔이 다 된 나이였다. 그 후로 선생님과 우리는 많이도 어울렸다. 봄, 가을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고, 우리 모임에서 개최하는 서예전에도 오셔서 덕담과 격려를 잊지 않으셨다. 함께 어울리면 우리는 서로 나이를 잊었다. 나의 부친보다도 더 나이가 많아 큰아버지뻘 되지만, 행동 속에는 권위적인 모습이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자애로운 형님, 키가 작아서 그런지 함께 웃고 농담할 때는 젊은 오빠라 부르며 놀리기도 했다.

3059_8483_4437.jpg

신년에 한인현 선생님께 연하장을 받고 찍은 사진


놀라운 건 우리 일곱 명중 누구도 선생님의 기억력과 위트에 견줄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여행 중에는 약속 시간에 단 한 번도 제일 먼저 오시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쩌다 막걸리 한 잔 드시면 고향 함흥 땅의 이야기도 했고 우리들이 태어나기 전 어려웠던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어디를 가든지 변함없는 것은 늘 화구를 챙겨 온다는 거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림을 그리셨다. 함께 있으면 예술을 하는 사람의 자세를 말하지 않아도 배우게 되었다. 참 선비 같은 모습이었다.

3059_8465_3942.jpg

내가 조그만 학원을 개업할 때 받은 그림. 우리집 가보가 되었다.


나는 뜻하지 않게 선생님에게 그림을 한 점 받았다. 그림을 생명처럼 여기시기에 팔지 않기로 정평이 난 분인데 조그만 학원을 연다고 하니 힘찬 기분 받으라고 아끼던 소 그림을 선뜻 내 주셨다. 너무도 고마워 표구하러 갔더니 표구상이 세상에 이런 좋은 그림 처음 본다고 했다. 세상을 떠났어도 그림 속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다시 일어나라고 독려하는 목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갑자기 어려워진 형편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회원들에게는 그림을 주시며 팔아 쓰라고 하셨던 분이다. 경제적 목적으로 그림을 전혀 팔지 않던 분인데···.


선생님은 해가 바뀌면 쥐, 소부터 돼지까지 십이간지 동물을 기막힌 해학으로 해마다 연하장으로 보내주기도 했다. 여행 가서도 일찍 깨어 자신만의 시간을 갖으며 그림과 사랑에 빠졌던 분. 이 시대의 참 스승이요, 참된 예술가다.


얼마전 병상에서 뵐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죽는 것도 좋다며 죽어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고흐를 만날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가슴이 뛴다고 하셨던 선생님, 우리 선생님 !


선생님! 질투가 나지만 이제 선생님을 돌려 보내 드립니다. 그토록 짝사랑하셨던 고흐에게로, 우리 선생님에서 모든 이의 선생님으로 되어 주기를 기도합니다.


선생님을 만나 정말 행복했습니다. 감사하는 인생을 살게 해 주신 선생님 영전에 마음을 담아 올려 드립니다.


2025년 4월 선생님을 보내는 날에 개심속리 유세현 올림


한인현 선생님 영전에 부쳐 < 독자 칼럼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작가의 이전글[서촌미술인문 기행 ⑧] 수성동계곡의 복사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