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생각, 글쓰기, 일상의 소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노트북을 꺼내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낀다. 이 글을 잘 마무리하여 끝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마음속에 살아있는 말들이 어떻게 풀려 글로 쓰일지 궁금하고 설렌다.
기억은 점차 사라지고 마음의 상처와 원망도 서서히 옅어질 것이다.
그러나 함께한 기쁨의 시간들은 남겨, 내가 떠날 때 그 기억들을 가져가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신 앞에 고통과 슬픔, 원망만을 가져갈 것이기에, 이 기억들이라도 있어야 이 생을 떠날 때 지팡이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아픈 기억, 고통과 원망의 기억은 버리자. 그렇게 마음을 다짐하지만, 기쁨과 즐거움의 기억조차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을 매일 느낀다.
태어나 할머니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시험을 치고 공무원이 되었다. 최선을 다해 열정과 성실함으로 공직에 임했으니, 업무적으로는 부끄러움 없이 당당히 살았다. 처음 임용될 때 선서한 기밀 누설 금지 조항도 지켰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며, 아이가 백혈병으로 고생하는 과정에서 내 피를 수없이 뽑아 수혈했다. 급여에서 원천징수된 의료보험료는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고,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밤에 잠들면 아침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며 살았다. 그런 중에 친정어머니의 도움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끝없이 밀려오는 운명의 파도를 정면으로 맞으며 살았다. 10년, 질곡의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이를 살려내고 유학도 보냈다.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 봉사활동을 하고 해외봉사도 다녀왔으며, 오지 여행도 다녔다. 어미로서 성공했다고 자부했다.
남편과 함께 한 시간들, 대한민국을 지도 한 장으로 운전하며 거의 모든 국도와 고속도로를 달리며 전국을 여행했다. 그리고 해외여행도 다녔다. 남들보다 일찍 우리는 동남아, 오세아니아, 미국, 캐나다를 여행했다.
고통의 시간도 끝이 있다고 한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도 끝이 있었다.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남편의 죽음이 우리 가족의 삶을 무너뜨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슬픔을 안고 살았다. 스스로를 고둥껍질 속에 가두었다. 그렇게 또다시 십수 년을 죽음의 충동과 우울증, 상실감, 배신감, 죄책감, 원망이 뒤엉킨 삶을 살았다.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한 발짝씩 나아갔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육신만 살아있다는 것이 아니다. 의식이 살고 생각이 살아나가야 한다. 누구도 다른 이의 슬픔과 고통을 대신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도 없다.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니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앞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남은 날이 많지 않음을 안다. 내가 주저앉았던 자리가 내가 설 자리이다.
허약한 몸으로 긴 세월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았으니, 나의 기력은 쇠잔하다. 지난날을 기억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고둥껍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통과 힘든 삶은 우리의 몫이었고, '너희들을 키울 때 이 고통보다 더 많은 기쁨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도록, 그 기쁨의 날들을 기록해야 한다.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 글을 잘 쓰니 글쓰기를 해보라는 말씀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동안 겪었던 삶의 경험과 공무원으로서의 경험, 자식의 병을 이겨내기 위해 했던 노력, 동네 병원 의사 선생님의 충고와 돌봄, 가족과 함께했던 여행의 즐거웠던 기록들,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해주신 많은 이야기들을 글로 써보려 한다. 누군가가 읽어준다면, 아픔도 공감하고 행복한 마음도 공감해 주길 바라며, 힘들고 나아가지 못할 때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감성에 젖어보기도 하며, 슬픔을 극복하고, 짧은 행복이라도 소중히 감사하며 살기를 바란다. 나의 생각과 슬픔,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려 한다.
온전히 나의 감성으로 담담하게 때론 격정적으로 때로는 잔잔한 글로 재미있는 글로써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보려 한다. 그리고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책들이 도움이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하며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공자가 말하기를 15세 학문에 뜻을 두고 열심히 정진하라고 이때를 지학(志學)이라고 하였다. 이때 열심히 공부하고 읽고 배운 것들은 뇌에 저장되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삶에서 큰 충격을 받았거나 늙어 치매의 증상이 온 것이 아니라면 이때의 배우고 익힌 것들은 인생의 전 과정에 남아 있다. 그것이 시험을 위한 주입식 교육이든 아니든 공부하고 암기하며 뇌에 저장하여 뇌가 확장되었으니까.
그리고 20세 약관이 되어 관직에 나아가며 가정을 꾸리고 나라의 일을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의 20은 아직 공부를 다 마치지도 못하였고 세상에 나아가지도 못하였다.
학비에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옛날의 주경야독이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공부와 일을 병행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공부에 뜻이 없고 주변의 흐름, 유혹의 분위기에 흘러들어 가 쉽게 흥분하고 가볍게 젊음을 즐기며 생활한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가장 길 것만 같은 인생의 시기가 가장 짧은 시간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심지가 굳건하지 못하다. 그리다 취업의 시기가 오면 길을 찾지 못한다. 이미 분위기에 휩쓸린 생활에 젖어 있기에, 그러나 어떤 이는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하며 차근차근 목표에 다가간 사람은 흔들림이 적다. 뿌리가 굳건히 내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젊은이는 세월이 지나고 보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알뜰히 보냈음을 알게 된다.
30 이립(而立)이라 하였다.
이때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바로 서있기에 흔들림이 없다는 뜻이다
뜻과 말이 바로 잡혔으니 주관이 바르고 행동함에 흐트러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30대인 사람은 사리분별이 바르고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고 가장 왕성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40은 불혹(不惑)이라,
간단히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요즈음은 40이 유혹받기 쉽고 심하게 흔들린다. 열심히 사느라 앞만 보고 나아가다 잠깐 멈춰 주변을 돌아보고 왔던 길을 돌아본다. 어떤 이는 후회의 삶을 느낄 것이고 어떤 이는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유혹의 눈길이 닿고 방심을 할지도 모른다. 아직 인생 반도 못 왔는데, 그렇게 혼란의 시간을 맞이한다. 그러니 불혹이라 할 수없다. _ 물론 안정적인 삶과 인생을 구축하는 이도 많다
50 지천명(知天命)이 된다.
하늘의 뜻을 알아 함부로 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리라_ 자신의 운명과 그릇을 알아 과욕과 과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60 이순(耳順)이 되면,
귀를 열어 두고 남의 말을 잘 듣고 내 말보다 다른 이의 말을 듣는 귀로 순화가 된다고 하였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삶을 관조하기 시작한다. 귀를 열어 객관적인 사람이 된다, 듣는 귀를 가지니 소통을 잘한다
70 고희(古稀),
중국 시성 두보의 ‘인생 70 고래희(古來稀 )'라고 한 시에서 유래되었다.
뜻대로라면 인생 70세까지 사는 이가 드물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100세를 산다고 한다. 20 약관(弱冠)만 하더라도 옛 시절에는 관직에 나아가 나라의 일을 본다고 하지만 지금은 겨우 대학생으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공부만 하겠는가? 이때부터 취업걱정을 하고 학비에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해야 한다. 그러니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던 시절과는 다르다. 그러니 지금은 고희(古稀)를 넘겨 사는 분들이 많다. 건강과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고희(古稀)가 기쁠 희(喜)가 된다
지천명에서 하늘의 뜻을 어찌 알 수 있을까 100세까지 산다는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요즈음은 한창의 나이라고 한다. 청년이라고도 한다. 인간이 어찌 천명을 헤아리겠는가 발붙이고 사는 이 땅의 삶이 정신없이 치열한데, 그러니 연륜이 쌓이고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하여 삶에 조금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가 현란하지는 않겠지만, 인생의 진솔한 글을 쓸 때라고, 지금이 인생을 뒤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표현하여 글쓰기 좋은 때라고 생각한다. 남은 인생을 바라보며 인생길의 마지막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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