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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의 수확(收穫)

Talking with GOD

by 죽림헌

신이 주신대로 거두어 가시다


신께서 특별히 축복이라도 하신 듯하다. 날씨가 이렇게 맑고 좋을 수가 없다.

여름의 뜨거움은 아쉬운 듯 마른 더위로 머물고, 남아있는 잔열로 곡식은 단단하게 여물어 간다.


가을은 바삐 서두르며 발부터 들이밀어 더위를 식혀준다.

들녘은 잘 익은 벼가 바람에 흔들리며 물결일 듯 일렁인다.

수확의 날이 다가왔음이리라.


며칠 동안은 이상하리만치 좋은 날씨가 계속되었다.

단단한 푸른색으로 깨끗하게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하늘에는 작은 솜사탕 같은 구름 한 점이 조심스레 걸려있다.

바람은 아기 재우는 엄마의 조용한 부채질처럼 잔잔하다.

이것이 평화스럽다고 하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길을 나섰다.

편히 길이 허락하는 데로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호흡이 가빠지면 안 되니까.

제법 걸었나 보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 걸 보면,

그러나 실상 간 거리는 잘 걷는 사람들로 볼 때 멀리 못 갔다.



가다 보니,

길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사람들 소리가 웅성웅성하니 내 귀에는 매미소리처럼 시끄럽다.

원래 우리 인간이 모이면 시끄럽다.

도저히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귓가에 웅웅 거리는 것 같다.

그냥 갈까 하다, 한 사람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모르고 왔습니까?" 하고 의아한 듯 되묻는다.

"아 네, 모처럼 산책을 나와서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이러고 사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지나다 사람들이 모여있어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오늘 신이 잠깐 오셔서, 우리에게 소원을 한 가지씩 들어주신다네요.

시간은 해지기 전까지라고 하십니다."


신께서 여기까지, 현장확인하시는 건가, 우리가 잘 사는지 궁금하셨나 보다.

무척 오랜만에 세상나들이 오셨구나.


"무슨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합니까?"

"무엇이든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사람이 많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자리를 뜨려고 하니 그분이 붙잡는다.


"여기까지 왔으니 같이 기다리시죠" 한다.

"아니오 나는 피곤하여 집에 가서 쉬고 싶습니다."

정말 그렇다. 얼마 만에 외출하여 걷는지 알 수 없다.


"이런 행운이 어디 있겠어요. 천재일우의 기회잖아요." 한다.

힘도 없고 배도 고프고 피곤하여 돌아가고 싶지만,


또 마음 한쪽에서는 궁금증이 스멀스멀 고개를 치켜든다.

잠시 머뭇거리다.

"그러지요" 하고 함께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 사람이 묻는다.

"무슨 소원을 말할 것입니까?"

"별로 생각을 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차례가 저에게까지 오려나 모르겠군요."

"댁은 무슨 소원을 준비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기분 좋은 얼굴로, 약간 상기되어 있는 표정이다


"나는 신께서 소원을 한 가지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부자가 되고 싶으니 복권을 당첨시켜 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


가지지 못한 인간의 마음은 이것이 정상이다.

단번에 상황탈피하는 방법이 어디 그리 쉽겠는가, 듣고 있자니 이분이 실수를 할 것 같았다.


"실례가 안 된다면,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 사람은 왜 이러나 싶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의아한듯한 표정으로 말씀하세요, 한다


잠깐 생각하다가 말해준다.

"생각해 보세요, 당첨이라 하면 1등에서 마지막 등수까지 있습니다.

그중에서 어느 등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또한 언제 당첨되기를 원합니까?" 하니


그 사람이 아차 싶었나 보다

"그야 당연히 1등이지요."


"그럼 그렇게 확실히 말씀드리세요."

주위 사람들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다

무엇인가를 깨달았는지,

다들 혼자서 무엇이라고 들 한다.

아마도 소원을 다시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재물을, 명예를, 가족이 아픈 사람은 건강을, 글을 쓰는 사람은 불후의 명작을, 자녀를 위한 소원,

취업시험에 합격하기를,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하기를, 직장인은 승진 등 온갖 소원들이 다 있다.


긴 기다림에 지쳤다.

피곤함과 지루함에 눈꺼풀이 무거워 자꾸 떨어진다.

어디 잠깐 앉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앉을 수도 없다. 마음만 간절하다


어느덧 차례가 다 되어간다.

가까이서 보니 신은 적당히 높은 곳에 앉아 계신다. 복권을 당첨시켜 달라고 한다던 사람의 차례였다.

그 사람은 신께 예를 갖춘 후에 소원을 정확히 말했다.


"저의 소원은 로또복권을 이번 차에 1등으로 당첨시켜 주십시오."

그러자 높은 자리에 계신 신께서 말씀하신다.

"어디에 사용하려고 그러느냐?"

"지하방에 사는데 햇빛보지 못하고 산지가 10년을 넘었습니다. 해마다 월세를 올리는데,

월세를 주고 나면 먹고살 돈도 저축할 돈도 없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집을 사고 장사라도 하며 장가라도 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려면 최소한 기본이라도 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신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도와주십시오. 한 번도 허투루 살지 않았습니다."


신께서 말하신다.

"벌써 수많은 사람이 그 부탁을 하였지만, 너처럼 목적과 정확히 어느 회차에 몇 등을 당첨시켜 달라는 사람은 없었다. 너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소원을 빌었다. 그리하마, 그럼 네 소원을 들어 주마."


"대신 나도 너에게 하나를 요구하마. 너는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


그 사람은 몹시 당황하는 눈치다.

도와 달라는 표정으로 내쪽으로 바라본다.

신과의 대화에 무엇이라 참견할 수 있을까,


다행히 신은 너그러웠다.

그 사람이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신은 웃으시며,


"그 재물로 허황된 삶을 살지 말라, 그리고 베풀어라. 다른 사람에게 너의 주장을 강요하지 마라.


만약, 이것을 어기고 허황되고 방탕한 삶을 살며 타인을 얕잡아보고 무시하며 함부로 행동한다면,

즉시 모든 것을 회수할 것이며 지금보다 더 못한 삶이 될 것이다.

그리하겠느냐."


그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며,

"예 그리하겠습니다. 꼭 그리하겠습니다." 하고 물러간다

아마도 바로 로또복권을 사러 가는 것이리라.


차례가 되었다.

신은 나에게 물었다.

"너의 소원은 무엇이냐?"

"별로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냥 평안하게 남은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만, 신께 소원을 말하면 다 들어주실 겁니까?"


"그렇다 하지 않았느냐."


그럼 먼저 물어보겠습니다.

"신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요구하시겠습니까.?"


신이 말한다.

"그것은 너의 소원 내용에 따라 정해진다."


"그럼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 아무 대가도 원치 않겠군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기다려 여기까지 왔으니 소원을 말해야 한다.

나의 시간이 그리 허투루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러니 말하거라."


'지금 무엇이 더 필요하며 더 많은 시간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신께서 다그치신다. 마치고 가셔야 하나 보다.


"저의 소원은 편안한 죽음입니다. 저의 할머니께서도 어머니께서도 편안한 죽음을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이면 족합니다."


"신께 드릴 것은 저의 작은 삶입니다. 신께서 주신 대로 살았으니 저의 삶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점 하나까지 모두 수확하시기 바랍니다."


결국은 신께서 주신 것, 신께서 돌려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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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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