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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Sep 15. 2024

분수란 무엇인가?

나는 뱁새요.

하이 브런치.

나다.


 최근 몇 가지 일들을 겪으며 새삼 느낀 바가 있어 글을 써보려 한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

 본인 분수가 맞지 않는 것을 무리하게 좇다간 오히려 화를 당한다는 오래된 속담이다.


"분수"

 나는 오늘 이 단어에 집중해보고 싶다.

 "네 분수를 알아."라는 대사는 흔하디 흔해 부잣집 남주와 가난한 여주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남주의 어머니가 표독스럽게 말하는 듯한 음성이 지원되기까지 한다. 이처럼 분수라는 단어는 어감이 부정적이다. 누군가 나에게 분수를 알라고 말한다면 그이가 날 무시한다고 생각해 즉시 반박하고 나설 것이다. 어학사전에 나오는 분수의 의미도 현 시대와는 조금 맞지 않는 것도 같다.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마치 중산층이면 중산층 답게, 상류층이면 상류층 답게를 말하는 것처럼 꼭 계급사회에서나 쓰일 것 같은 의미이다.

 하지만 동시에 "분수"라는 단어에는 담백한 의미도 있다. [사람으로서 일정하게 이를 수 있는 한계]. 첫 번째 의미와 비슷한 것도 같지만 계급화는 느껴지지 않고 내 자신의 한계가 어느 수준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요 몇 주간의 시간을 보내며 "분수"에 대한 인식을 첫 번째 의미에서 두 번째 의미로 옮겨가게 되었고, 어째서 그럴 수 있었는지 한 번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회사에서의 일이었다. 의지하고 믿고 따랐던 선배가 퇴사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선배의 특징을 나열해보자면, 꼼꼼하고 확실한 일처리는 물론 명확한 상황판단 능력, 그리고 주변인들을 챙기는 살가운 성격이 바로 그것이다. 같은 동료로서는 최고의 동료가 아닐 수 없다. 우리 팀원들은 대부분 식사를 따로 했는데, 간혹 함께 식사를 할 때면 꼭 후배들의 밥을 사주시곤 했다. 만 원이면 싼 강남의 밥값으론 몇 명의 식사 값을 한 번에 내는 게 부담이었을텐데 늘 식사값을 부담하셨다. 일에 있어선, 우리 팀은 한동안 팀장님이 부재한 상태여서 그 선배가 팀장 대행 수준으로 팀을 이끌었다. 판단이 서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선배에게 여쭤봤고, 그의 판단력을 토대로 일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판단에는 주저함이 없었고, 만약 본인이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윗사람에게 보고하고 묻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처리가 빠르고 막힘이 없었다. 또한 본인의 일에 있어선 정리가 잘 되어 있고, 누구나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니 팀에서 선배가 빠진다고 했을 때 후배들을 비롯한 상사들까지 모두 동공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선배가 퇴사를 하고, 나는 은연 중에 팀원들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웃긴게 내가 이 팀의 기존 멤버 중에선 가장 늦게 들어온 사람인데 말이다. 선배를 닮고 싶다는 마음, 가까이 지냈던 시간과 더불어 나의 거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배의 퇴사 후 나는 종종 우리팀 막내와 다른 동료들과 식사를 하면 밥값을 내거나 커피값을 냈다. 그리고 팀의 모든 업무를 한 번 쯤은 해봤다는 이유로 담당자에게 어떠한 조언을 해주려고 하거나, 업무 범위를 넘어 나서기도 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나니, 힘들었다.

 내 생활비는 나 혼자만의 식사와 시간에 맞춰져 있다. 도시락을 싸고 다니니 많은 금액의 생활비가 필요하지 않았고, 커피도 나 혼자 저렴한 커피 한 잔을 사먹으면 됐다. 그러니 여러 명의 식사를 결제하는 건 어쩌다 한 번이라도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나 혼자에게 쓸 돈이 없어져 주객전도의 상황이 오기도 했다.

 업무에 있어서도 부담은 커졌다. 선배와 같은 업무를 하던 동료가(이 동료도 심지어 나보다 몇 년은 더 회사생활을 한 사람이다.) 혼자 하기에 업무가 부담스럽다고 하여 내가 보조로 하겠다고 나섰던 게 패착인 것 같다. 새로운 직원을 뽑을 동안 나의 주업무도 늘어났는데, 보조 업무도 생겨버리니 여기저기서 실수가 나와버렸다. 가령 면접시간을 잘못 안내해 당일에 급히 면접관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면접을 본다던가, 일정에 맞춰 해야할 일이 늦어진다던가. 보조업무는 급여 작업이었는데, 급여 계산만 같이하고 맞춰보면 되는 작업이었지만 이것에 들어가는 시간이 꽤 컸다. 그래서 급여 마감일자가 다가오면 내 업무는 모두 제쳐두고 급여 업무를 하는데 여넘이 없었다. 이걸 또 기복없이 소화하면 좋으련만 실수가 나오면 자책하고, 예민해지고 하니 나와 함께 업무를 하는 이에게도 민폐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낸 후 최근에 난 문득 내가 내 분수를 몰랐다는 생각을 했다. 내 분수는 선배의 그것보다 낮은 수준이라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거다. 말 그대로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져버렸다." 나는 팀원들에게 밥을 살 정도로 여유있는 생활비를 갖고 있지 않고, 심지어 난 혼자 도시락 먹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사람들과의 많은 대화는 날 지치게 만들고, 예민하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난 덜렁댄다. 내 업무 하나에 집중하면서도 덜렁대는데 그 외의 다른 업무까지 나서서 신경쓰기엔 난 꼼꼼하고 유능하지 않다. 아직 업무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그러니 이제 이 선을 인정해야 할 때가 왔다. 나는 그를 대체할 수 없다. 그는 그이고, 나는 나여서 우리 팀의 공백을 채우기 보단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 이 명징한 사실을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깨달아 버렸으니 꽤 멀리 온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나는 내 분수에 맞춰 나 자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한다 싶다.


두 번째는 취미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올해 초부터 골프를 배우고 있다. 여담으로, 브런치와 골프는 참 안 어울린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골프는 환경 파괴적인 스포츠이므로 멀리해야 하고 요가라던지 헬스라던지 조금 더 본인 집중적인 스포츠를 즐겨해야 할 것만 같다. 우리 언니도 나에게 환경파괴적인 스포츠를 한다고 말하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골프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환경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책임감은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다시 돌아오자면, 3월에 결혼식을 하고 남은 돈을 예금으로 묶어두기 전 우리 부부는 일정 금액을 서로를 위해 소비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나의 골프연습이었다. 골프연습은 흔히 스크린골프 혹은 인도어를 통해 할 수 있다. 스크린은 말 그대로 실내에서 연습하고, 공이 날아가는 모습은 센서가 인식하여 스크린으로 띄워준다. 인도어는 매우 거대한 그물망으로 둘러쌓인 곳에서 허공을 향해 공을 날리는 곳으로, 실제로 공이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은 보통 인도어 연습장이 비싸다. 그리고 나는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 스크린 연습장은 답답하다는 이유로 인도어에서 시작을 했다. 그리고 다시 연습장을 갱신해야 하는 시점이 되니, 그 가격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우리 집 근처를 기준으로 인도어는 스크린의 두 배 가격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한 달에 30만원에 가까운 돈을 부담할 수가 없었다. 저축을 줄이면야 가능하겠지만 그것이 무책임한 욜로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다는 이유로 기피했던 스크린 연습장을 등록해야 할지 끈질기게 고민하다, 문득 내가 또 내 분수를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한 월급쟁이에게 인도어 연습장은 결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한 달에 10만원 내외라면 충분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간다면 저축이나, 경조사, 생활유지비 등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제 막 30살이 된, 대기업에 다니지 않는 나에겐 그랬다. 나는 10만원이면 충분했고, 그 이상은 부담이었다. 연초에 인도어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결혼 준비에 대한 이상한 보상심리, 그리고 남들보다 좋은 조건을 누리고 싶다는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동네 아저씨들이 단골이고, 약간은 칙칙한 스크린장보다는 깍듯하게 날 맞이해주는 직원들과 번듯한 로비가 있는 인도어에서 골프 연습을 하며, 잘사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분수는 그냥 일반 회사원 그 이상도 아닌데, 언제나 그것보단 위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약간은 높아진 콧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 잘 살아를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 같다. 실상은 내 능력도, 상황도 그렇지 않은데.

 그래서 이번에도 내 분수를 뼈저리게 느끼고 스크린 연습장으로 등록했다. 조금 칙칙하긴 하지만 차를 타고 가야하는 인도어에 비교해 걸어갈 수도 있고 단골처럼 맞이해주는 사장님도 있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 남편과 둘 다 등록해 매일 같은 취미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분수"

 이 말을 이해하고, 또 내 분수를 깨닫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번 일들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나는 조금 더 잘 살고, 여유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정작 내 분수는 그 수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분수를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막상 인정하고 나니 마음은 편해진 것이다. 아울렛에 가서도 더 싼 옷을 찾는다던가, 여행 숙소를 정할 때 합리적인 가격의 게스트하우스 등을 찾는다던가. 예전엔 브랜드, 호텔을 선호했다면 내 현재의 상황에 맞춰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

 나는 뱁새다. 아무리 유연성을 늘려도 황새가 될 수 없다. 그러니 내 짧은 다리 길이를 인정하고 만족하는 수 밖에. 그리고 조금씩 다리 아래 굽을 늘려보지 뭐. 그렇게 늘려 늘려 내 분수를 키우면 그게 또 내 새로운 상한선이 되고 그러지 않겠는가. 허영심은 내려놓고 내 현재 상황에 당당할 수 있어야겠다. 그것부터가 내 분수를 키워갈 수 있는 시발점이리라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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