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처럼 살지 마

녹차를 다시 주세요

by 마리솔

1994년 한참 연애의 감정이 물이 올랐을 때

연인과 앉은자리는 창가로 바다가 보이는 카페이든 차가 달리는 모습만 보이는 카페이든 서로 마주 보고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으로도 너무 설레고 행복하단걸 30년의 세월뒤에 서있는 연인들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달콤했던 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내 나의 아이가 부디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고 간절히 바라고 있다.


봄의 벚꽃이 흐드러진 월미산을 지나 몇 번인가를 들렀던 오래된 경양식집 옆에 새로 생긴 커피숖을 갔던 날의 고구마 같은 기억이다

지금은 카페로 거의 통칭되어 불리지만 그때만 해도 커피숖과 카페는 살짝 다른 느낌이었다.

월미도 바다가 훤히 보이는 커피숖에서 남자친구는 커피를 나는 녹차를 시켰다.

지금은 녹차로 다양한 음료가 제작되기도 하지만

1994년에는 녹차에 대한 반응은 모험 혹은 작은 우쭐 감이지 않았나 하는 건 내 생각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녹차맛도 모르는 스물 언저리 처자는 녹차를 시키고는 연인 앞에서 조금쯤 고고한 매력을 뽐내고 싶어 했다.

따뜻한 햇살이 드는 창가에 둘의 눈길이 바다를 보다 서로에게 향할 때쯤 나온 차와 커피를 보면 나는 울상이 되고 말았다.

녹차의 초록물을 담은 하얀 도자기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붉은 립스틱의 입술자국...

지금은 대부분의 음료가 5000원이 넘지만 30년 전만 해도 경양식에서 돈가스를 시켜도 5000원이면 먹던 시절이라 녹차 한잔이 5000원이면 꽤 큰 결심을 하고 시킨 음료였는데 빨갛게 선명하게 남아있는 입술자국을 보니 도저히 마실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애도 낳고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지금의 나라면

당장 주인을 불러

ㅡ이게 뭐냐

ㅡ설거지가 제대로 안 됐지 않냐

ㅡ다시 새로 깨끗한 컵에 가져다 달라

했을 텐데 그때는 잔을 받고도 한참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러나 차 한잔에 오천 원의 거금의 기운에 밀려 조심스레 종업원을 호출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생각한 말을 아무것도 못 한 채

결국 조근하고 조용히 한마디

ㅡ이거 바꿔주세요.

본인들도 보는 눈은 있었기에

=>앗 네 다시 가져다 드릴게요

하면서 잔을 가져가기에

남자친구에게 눈빛을 보내며

ㅡ봤지, 내가 해냈어

하며 으쓱했는데

이런...

종업원이 뒤를 돌더니 새 컵을 꺼내

립스틱이 묻어 있던 컵에 녹차를 다른 컵에 옮기는 것을 대놓고 하는 것이 아닌가

'뭐지'

'우리가 여기 앉아 자기를 보는 게 안 보이나'

'내가 새로 달라고 구체적으로 말을 안 해선가'

'컵만 바꾸지 말고 다시 달라고요'

난 마음으로만 떠들다가 다시 받은 녹차를 빤히 쳐다만 보다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결국 조용히 오천 원을 내고 카페를 나왔다.

그 후로는 월미도 바다도 봐도 별로

벚꽃 잎이 흩날리는 것도 별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까지 바보같이 일어서 나온

나 자신이 실망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이를 낳고 내 아이들이 부당한 대우에도 꾹 참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때 내 모습이 떠올라

자다가 이불킥이 몇 번인지를 모를 지경이다

ㅡ아들, 딸! 제발 엄마처럼 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