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한국전쟁의 깊은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황량한 대지 위에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한 편의 기적 같은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이 땅 위에서, 우리 민족의 손으로 직접 빚어낸 첫 번째 자동차가 위풍당당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지요. 그 이름 또한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었습니다. '비로소 시작할 시(始)'와 '힘차게 출발할 발(發)', 찬란한 미래를 향한 첫 발자국과 같은 '시발'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1950년대 중반, 전쟁의 폐허 속에서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변변한 공장 설비나 축적된 기술조차 전무하던 그 열악한 상황 속에서, 정비업에 헌신했던 최무성, 최혜성, 최순성 세 형제는 남다른 결심을 하게 됩니다. "우리 손으로 직접 자동차를 만들어보자!" 그리하여 국제차량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은 불가능해 보이던 꿈을 현실로 빚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미군이 남기고 간 윌리스 MB 지프의 부품들을 정성껏 해체하여 재활용하고, 심지어는 폐드럼통을 섬세하게 펴서 차체를 구성하는 놀라운 시도를 감행했지요. 번듯한 공장 대신 허름한 천막 아래에서 오직 망치 소리에 의지해 자동차를 탄생시키던 그 지난한 시간은, 실로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와도 같았습니다.
처음 등장했을 무렵, 이 경이로운 자동차는 워낙 귀한 존재였기에 소수의 부유층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발택시'라는 이름으로 서민들의 삶 속 깊이 파고들며 뜨거운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서울의 거리를 활보하던 시발택시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오늘날까지 회자되곤 합니다. 시발자동차는 광고 방식에서도 시대를 앞서가는 획기적인 면모를 보였습니다. 당시 라디오에서는 중독성 강한 로고송이 흘러나와 많은 이들의 귀를 사로잡았지요. "시발~ 시발~ 우리의 시~발자동차를 타고 삼천리를 달리자 ♬" 이 흥겨운 멜로디는, 그 시대를 살아온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추억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광고 자체가 귀했던 시절, 로고송까지 갖춘 자동차 광고의 등장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었습니다. 숙련된 기술자의 손길로 부품 하나하나를 직접 두드려 만들었기에, 차체는 다소 투박하고 직각에 가까운 형태를 지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려한 유선형 곡선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시대에, 폐드럼통을 펴서 만든 그 투박한 차체는 어쩌면 시대의 미적 감각과는 조금 동떨어져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피어난 집념과 불굴의 의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증거였습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한국GM의 전신 중 하나인 새나라자동차가 등장하며, 일본 닛산의 블루버드를 라이선스 생산한 '새나라' 모델을 선보였던 것이지요. 유선형의 세련된 디자인과 안정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새나라의 등장과 함께, 시발자동차는 서서히 그 위상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국제차량회사는 1969년에 아쉽게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시발자동차가 이 땅에 존재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자부심을 느끼는 현대, 기아와 같은 거대한 자동차 기업들이 '국산차'라는 개념을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시발자동차의 원형은 온전히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적 의미와 빛나는 정신을 기리기 위해 몇몇 박물관에서는 정교하게 재현된 차량들을 전시하며, 그 시절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