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요... 농촌이 싫었어요

농촌 입덕부정기

by 삽십삼

고등학교를 졸업을 코앞에 둔 시점. 부모님이 귀농하겠다고 하셨다. 그때 살아 계셨던 할아버지 앞으로 땅이 있는데 거기서 깻잎을 키워보겠다고. 벌써 십 년도 더 된 얘기다.


당시에는 귀농하던 사람이 드물었다. (내가 아는 선에서는)농업과 관련된 힐링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던 때도 아니고 그렇다고 귀농인을 위한 혜택이 지금처럼 다양하지도 않았다. 당시 귀농은 정년퇴임을 앞두고 옛 고향 생각에 농촌으로 내려온 중장년들 몇몇 뿐이었다.


부모님이 귀농을 결정한 건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전기·기계공이던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생 때 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로 아버지는 몇 년 병원에 입원했고, 후유증으로 추운 날 기계를 만지면 뼈가 시리다고 하셨다. 그 뒤 전국을 누비며 일하러 다녔지만 빠듯한 살림에 몇 안 되는 월급은 별 도움이 안 됐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입원하는 바람에 몇 년 간 모은 돈을 모두 까먹은 데다 결정적으로 내가 고등학생 때 2년 정도 일을 쉬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살던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가서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을 판이었다. 다행히 전셋집은 잘 마무리됐지만 당장 먹고 살 돈이 없었다. 궁지에 몰린 우리에게 선택권이란 없었다.


부모님은 할아버지 댁에 기거하며 농사를 지었다. 따로 살 집은 얻는 것도 사치였다. 그렇게 몇 년 살다 아버지는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그곳이 새 보금자리가 됐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안 맞아서 그랬다. 세대가 다른 사람이니 당연했다. 안 맞으니 두 사람한테는 나름 스트레스였을 테고.


둘만 스트레스받는 게 아니었다. 엄마도, 나도, 내 동생도 스트레스였다. 엄마는 나와 만날 때면 항상 그 얘기를 했다. 엄마 딴에는 힘들어서 넋두리한 거지만 마음이 넉넉지 못한 난 듣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 그런 얘기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았고, 여러 번 반복되는 레퍼토리에 슬슬 짜증도 났다. 머리는 엄마의 상황을 이해했지만 마음은 따라주지 않아 답답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얘기하면 두통부터 찾아올 정도다.


형편이 어려우니 동생은 돈 때문에 학비와 기숙사 비용이 얼마 안 드는 대학으로 갔고, 빨리 돈을 벌고 싶어 장교가 됐다. 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집 형편은 나아졌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기껏 해봐야 현상유지 정도. 몇 해 전부터 할아버지 상속문제로 친척과 분쟁 중인 데다 그로 인해 뜻하지 않게 빚까지 졌으니 농사로 계속 수입이 있다는 거 말고는 형편이 안 좋은 건 여전했다.


그래서일까? 20대에 나는 농촌이 정말 싫었다. 부모님이 밤잠 설쳐가며 작물 걱정하는 것도 싫었고, 그렇게 애써 키운 작물이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치여 낮은 금액으로 되돌아오는 것도 싫었다. 들이는 노력 대비 성과가 미미한 것도 싫었다.


교통편도 안 좋고, 주변에 뭐 하나 제대로 된 편의시설 하나 없는 데다 내가 꽃가루 알레르기를 심하게 앓고 있어 산으로 빙 둘러싸인 농촌은 한 마디로 최악 그 자체였다. 간혹 시골에 갈 일이 생기면 온갖 핑계를 대며 어떻게든 피하고만 싶었다. 그래서 내가 농촌에 돌아갈 거라고, 농부가 될 거라고 나 자신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스물여섯에 첫 직장생활을 시작해 어느덧 서른셋. 직장생활로 얻은 온갖 잔병치레들 말고는 내 수중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저곳 회사를 옮기며 내 연봉을 올려도 방값이며 식비로 빠져나가는 만만치 않았다. 성공하겠다는 부푼 기대와 달리 내 성과는 저조했고, 매번 내 무능력만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지난해 11월까지 다니던 회사를 끝으로 나는 백수가 됐다.


백수가 된 뒤 세 달 동안은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았다. 그러다 뭔가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많은 나이와 애매한 경력과 부끄러운 실력 때문에 한동안 진통을 겪기도 했다. 실업급여를 받고 있어 생활을 유지하긴 했지만 그거 때문에 취직을 뒤로 미뤘다. 그러다 모 기관에서 운영하는 농업 교육 프로그램을 알았다. 사실 신청할 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이 교육 프로그램 이수 후 여러 혜택 중 적금과 대출이 마음에 들어서 지원한 거였으니까. 그거라면 이제껏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든 6개월짜리 수업이 농업에 대한, 농사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