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대하여

by 야옹이


가끔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서 묘한 고요함을 본다.

그 고요함은 평온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음의 더 깊은 곳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은 말한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욕망이 주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났다는 듯이,

그 말 뒤에는 이상한 자부심이 살짝 묻어 있다.

인간으로서의 흔들림을 뛰어넘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고요함은 종종 상처가 만든 결과에 가깝다.

사람은 흔들리기 싫을 때, 아예 자신을 움직이지 않게 만드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욕망이 괴롭히면 욕망을 내려놓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삶의 활기도 함께 내려놓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욕망은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살아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켰을 때 느끼는 창피함,

무언가가 잘되기를 바랄 때 찾아오는 조급함,

이 모든 흔들림은 불편하지만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중요한 감각들이다.

욕망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새로운 관계를 만들게 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보고 싶은 충동을 주며,

때로는 실패를 감수할 용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욕망이 아예 없다면 사람은 감정적 무게 중심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것은 편안함이 아니라 무중력에 가깝다.

많은 영적 수행자들이 부처의 가르침에서 욕망을 내려놓으라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하지만 부처가 말한 것은 욕망이 아니라 집착이었다.

“이것이 반드시 되어야만 한다”는 절박함, “이것 없이는 나는 불행하다”는 압박감,

바로 그것이 고통의 원인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 사람이 나를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는 기대는 우리를 망가뜨린다.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은 아름답지만, 글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를 갉아먹는다.

욕망이 문제가 아니라 욕망에 매달리는 방식이 문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집착을 버리려다가 욕망까지 함께 버리는 선택을 한다.

목욕물을 버리며 아기까지 버리는 실수를 한다.

욕망이 나를 괴롭히니, 욕망 자체가 사라지면 더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조용히 마취시키는 쪽을 택한다.

슬프지 않기 위해 기쁘지 않기로 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기로 하고,

실패할까 두려워 꿈도 꾸지 않는 편을 선택한다.

그 선택은 얼핏 성숙해 보이지만, 그 자리에 남는 것은 평온이 아니라 무감각이다.

삶의 풍경에서 소리가 꺼지고, 빛의 대비가 옅어지고, 감정이 얇아진다.

그런 상태는 고통이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결도 함께 사라진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평화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흔들림이 없다는 데서 오는 정적에 가깝다.

욕망을 버리는 대신 욕망과의 관계를 조금 바꾸는 것은 어떨까.

나는 이것을 원하지만, 되지 않아도 괜찮다.

이 문장은 욕망을 지울 필요도, 집착할 필요도 없는 길을 열어준다.

원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마음이 나를 약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런 태도에서는 욕망이 삶을 흔들 수는 있어도, 나를 파괴할 수는 없다.

사람은 원함 속에서 살아난다.

예술가는 창조하고 싶어하고, 연인은 연결되고 싶고, 여행자는 새로운 세계를 보고 싶어한다.

이런 ‘원함’이 삶을 확장시킨다.

욕망이 없으면 사람은 관찰자가 되고, 욕망이 있으면 비로소 참여자가 된다.

삶은 우리에게 구경만 하고 있으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직접 들어가 겪고 깨지고 다시 시작하라고 건네진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상처를 피할 수는 있지만,

삶이 주는 기쁨과 움직임에서도 조금씩 멀어진다.

우리는 결국 선택해야 한다.

고통을 피하되 살아 있음의 온기를 잃지 않는 방식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고요함을 얻기 위해 삶의 색채까지 포기할 것인지.

어쩌면 답은 아주 단순할지도 모른다.
욕망을 무서워하지 말고, 욕망에게도 자리를 조금 내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욕망을 통해 망가지지 않고, 욕망을 통해 확장될 수 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이 깨달음이 아니라,
원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을 힘을 기르는 것이 성숙이다.

그리고 그런 삶은 고요하기만 한 삶보다 훨씬 더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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