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생존을 위협하지 않지만, 존재를 흔든다.

by 야옹이


보고자: Zeta 행성 4군 감각분석관
관찰 대상: 지구 종족 ‘인간’
관찰 주제: 고통이라는 감정 에너지의 존재론적 영향


지구의 인간들은
‘고통’이라는 감정적 현상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 고통은 물리적 손상 외에도
심리적, 관계적, 상상적 자극에 의해서도 발생하며
단지 ‘아프다’는 차원을 넘어
삶 전체를 흔드는 파장을 일으킨다.

고통은 이들에게 있어
생존을 위협하지 않아도 존재를 흔드는 힘이다.

그들은 밥을 먹고 숨을 쉬며,
몸이 멀쩡히 기능하고 있어도
마음의 고통이 클 경우,
삶 자체를 포기하려는 충동에 이른다.


관찰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는 극히 비효율적인 구조다.

대부분의 종족은
‘생존’이 최우선 시스템이며,
감정은 그 생존을 돕기 위한 보조 장치에 가깝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이들은 감정이 생존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감정 중
가장 파괴적인 에너지를 가진 것이
‘고통’이다.


흥미로운 건,
고통의 대부분이
‘실제 일어난 사건’보다는
그 사건에 대한 해석, 기억, 의미 부여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한마디 말,
애정의 변화,
말없이 사라진 인연
이런 것들은 육체에 손상을 입히지 않지만
심리적 균형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충분하다.

그리고 그 무너짐은
인간에게 삶 전체가 흔들리는 체험을 안긴다.


고통은 이들에게 경고이자 기록이다.
고통은 말한다.
“여기서 무언가 중요한 것이 흔들렸다”라고.
“이 감정은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된다”라고.

인간은 그 고통을 붙잡고,
노래로 만들고,
글로 기록하며,
예술로 승화시킨다.

그런 방식으로 그들은
고통의 무게를 의미로 바꾸는 존재다.


이 관찰자는 고통을 ‘불완전함의 자각’으로 이해한다.
고통이 찾아오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완전하지 않음을,
누군가에게 기대고 있었음을,
삶이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통렬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자각의 지점에서,
인간은 다시
변화하거나, 포기하거나, 멈추거나,
혹은 더 깊어지기 시작한다.


고통은 인간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선명하게
자기 존재를 자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고통은 생존을 멈추게 하진 않지만,
삶을 완전히 다르게 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존보다 더 깊은 차원의
존재의 궤도를 바꾸는 힘이 된다.


다음 보고 예고:
인간이 감정적으로 가장 깊게 고립되는 감정
‘외로움’이라는 에너지의 정체에 대해 보고할 예정.

보고 종료.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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