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이상하게도, 늘 한발 늦게 찾아온다.
사람이 떠나는 순간에도 우리는 눈물을 참을 수 있고,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에도 우리는 아침밥을 먹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무심한 하루의 틈 사이로
그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 때,
그제야 슬픔은 제 발로 걸어온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그때는 다들 울었지만, 나는 그저 조용했다.
슬픔이 뭔지도 몰랐고,
죽음이 나와 얼마나 가까운 일인지도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짜 슬픔이 무엇인지
나는 군대에서 배웠다.
1987년,
나는 예기치 않은 시기에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아버지와 이별을 맞았다.
전방의 별빛은 바람보다 차가왔고
나의 상실감은 모든 상황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울산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5일째 되는 날 나는 복귀했지만
내가 가진 모든 감정은 얼어붙어 있었다.
당시에는 실감조차 나지 않았다.
그 슬픔은
몇 년 후, 문득 문득 찾아왔다.
거리를 걷다 아버지를 닮은 뒷모습을 보았을 때,
내 아이가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음식만 먹을 때
그제야 나는 울었다.
혼자서 울었다.
한참이나 늦게.
그 뒤로도 여러 이별이 있었다.
어머니와의 이별,
아내와의 별거,
소중했던 사랑과의 끝맺음.
하지만 요즘 들어 가장 깊게 남아 있는 상실감은
2013년 즈음,
나를 산사로 이끌어 주신 스승님과의 이별이다.
이별은 조용히 찾아왔다.
그분이 떠났다는 사실을 나는 3개월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때의 충격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그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의 떠남을 조용히 준비하고 계셨지만,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며
나를 성장시켰고,
스승님과의 이별은
항상 부족한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분이 없다는 사실은
마치 등불이 꺼진 어둠 같았고,
그 속에서 나는 내 마음속 그림자를
다시 마주해야 했다.
나는 이제 안다.
뒤늦게 다가오는 슬픔이야말로
진짜 사랑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미련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었고,
그 미련이 내 안에서 서서히 무르익으며
슬픔으로 피어났다.
상실감은 그렇게 우리를 가르친다.
이별은 끝이 아니고,
회복은 결코 쉽게 오지 않으며,
때로는 회복되지 않는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오늘도 산을 오른다.
그들의 빈자리를 가슴에 품고 걷는다.
그것이 내가 그들을 기억하는 방식이고,
그들의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슬픔은 늘 한 발 늦게 찾아오지만,
그 늦은 방문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것은 그들이 남긴 사랑의 여운이고,
내 삶이 나에게 보내는,
가장 진실한 위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