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밝고 어두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고전이라 함은 그것이 출간된 이후 인간의 삶에, 인간의 사유에 큰 영향을 끼친 책에 주어지는 이름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 고전은 의외로 평범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미 일반화된 사상인 것이다. 그러나 군주론이라는 고전은 아직 미숙한 나에게 있어 충격으로 다가왔다.
군주론은 악행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해서 시시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제야 비로소 이해되는 누군가의 행동이었다.
군주론은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책에서는 군주(리더)의 덕이란 악덕이라 말한다. 덕치를 우선시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력을 상실한 리더는 업신여김 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군주의 덕은 악덕이라는 말은 결과적 효익을 말한다. 당장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회피하기보다는 악인이 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과적 효익을 얻어내라고 말한다. 그 정도의 근성은 가지라 말한다. 상황이 좋을 때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라 말한다.
그럴 때 군주 개인은 영광을 얻고, 국가는 번영하며, 백성(부하직원)들은 안정된 삶을 살 것이라고 말한다.
군주론은 이와 같은 것들을 과거의 예시와 자신의 경험적 지혜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이성과 본능을 가진 동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언어보다 행동을 가지고 판단을 내리는 고등 지적 동물이다.
폭발하는 홍수 속에서도 대비가 잘 되어있는 곳은 강물이 피해 간다.
손자는 대비되어 있음을 믿으라 했다.
평소 자신의 행동 이면에 드러나는 것에 질서와 권위가 서려 있는가?
나는 동료들에게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군주론을 읽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나는 무언가를 함께 이뤄낼 수 있을 정도로 조직 내에서의 역학을 이해하고 있고 훈련되어 있는가?
군주론에서 배운 점을 하나만 꼽자면 이것을 들 수 있다.
사랑보다 두려움을 얻는 것이 더 나은 가치이다.
선 듯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법칙이 가정 내에서는 통용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사회에서 통용되는 법칙이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내가 판단할 때 마키아벨리가 사랑보다 두려움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한 것의 진의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믿을 때 내 일상이 온전한 발판 위에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통제할 수 없고, 즉흥적이고, 약하다. 가볍다.(일시적으로 볼 때)
그러나 두려움은 통제할 수 있고, 지속적이고, 강하다. 무겁다.
그래서 사랑과 두려움이 전쟁을 벌이면 대부분의 경우 승자는 두려움을 뿜어내는 쪽이다.
사랑으로 기른 자식은 자유분방하고 때때로 제멋대로이지만, 매로 기른 자식은 예의 바르고 훈련되어 있다. 물론 이해하지 못하고 무력만 경험한다면 주눅 들어 있을 것이다.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사회에서는 두려움을 택하는 것이 옳다.
사랑은 평소에, 두려움은 문제가 생겼을 때 주어진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관리자가 가져야 할 원칙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노동자는 기능을 하는 존재들이지 사랑받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우선순위가 그렇다.
본질을 따지자면 우리는 대가를 받고 기능을 지불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가 구성되어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린다.
다만 다시 한번 말해두고 싶은 것은 두려움은 '필요이지 필수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희망과 안정을 택한다.
두려움으로 사람을 일시적으로 묶어둘 수는 있지만 그것은 포기일 뿐이다.
실제로 내가 군주론을 읽고 사회생활 속에 두려움을 인지시켜보자고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겼을 때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내 스킬이 낮은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나는 이것이 절반의 지침이라고 생각한다.
사랑보다 두려움이 더 나은 가치이다.
두려움은 필요하다.
그러나 두려움은 포기를 뜻하기도 한다. 포기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해내기를 요구하는 것은 억지다.
무언가를 이루려면 두려움은 일시적이어야 한다. 사랑하지만 부모(팀장)로써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의무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 속에 때때로 보이는 일시적인 두려움으로 족해야 한다.
옆에서 도와줄 수는 있지만 결국 결정을 하는 주체는 본인 자신이다. 결정은 본인이 내리는 것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한 명의 구성원이다.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존중해야 한다. 다만 두려움으로 이끌 뿐.
자기가 한 말을 자기가 부정하고 있으니 이게 무엇인가 하겠지만 결국 "사랑보다 두려움이 더 나은 가치이다."라는 것을 이해하고, 사회생활을 영위하면서 하는 행동 이면에 사랑이 있어야 하며, 결과적으로 팀원에게 질서를 통한 안정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조직으로써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다.
책을 읽고 무언가 이해했다면 실행에 옮겨보라. 이해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실행하며 생기는 문제들을 마주하고 고민하다 보면 체득하게 될 것이다.
자고로 선임이라면 후임들에게 몽둥이를 휘둘러 깨우침을 주어야 한다.
방치하거나 두려움으로 압박하려 들어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줄 수 있어야 한다. 사랑으로 대하되 막대기로 깨우쳐 주어야 한다.
"사랑보다 두려움이 더 나은 가치이다."
이것을 전제로 할 때 직장에서의 많은 불합리한 부분들이 이해가 갔다.
상처받고 위축된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랑으로 대하되 두려움으로 이끌어야 한다."
이것이 군주(리더)가 가져야 하는 덕이다.
리더의 덕은 악덕이다. 리더는 결과로써 말해야 한다. 구성원들이 먹고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동일한 원리로 리더라면 사랑받기를 원해서는 곤란하다. 그보다 결과적 효익을 챙기며 구성원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방법을 찾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그게 성과를 내는 조직의 리더가 구성원을 대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내 주위에는 그렇지 못한 리더만 있다고 불평만 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배워나가서 바꿔보려는 마음이 있을까?
이 글을 적는 나 또한 이상적인 리더는 못 만나봤다. 어딘가 한두 군데씩 하자가 있는 선배님들이었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이 하나 더 필요할 것 같다. ‘현명함’은 각 위협의 ‘본질’을 평가할 수 있고 ‘차악’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차악이란 실현가능한 최선의 선택지를 말한다. 내게 주어진 선택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선택지 가운데 차악을 택하다 보면 일상은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인들의 사회에서 밝기만 한 선택지는 없다. 사랑보다 두려움이 더 나은 가치이다. 두려움은 일시적으로 강하고 우리는 기능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 ‘잔인한 행위’가 제대로 쓰일 때 -> 단 한 번의, 공익을 위한 것일 때. 그렇지 못한다면 미움받게 된다. 그 미움이 충분히 쌓이면 위협이 될 것이다.
- 군주의 수치 : 무력이 결여되어 있으면 사람들은 당신(군주)을 경멸하게 된다.
- 무력을 갖추지 못한 예지자 -> 운이 떨어져 나가면(쓸모를 다하면) 참수당한다.
- ‘은혜’에 대한 이해 -> 이 부분은 글을 쓰며 다시 찾아봤는데 결국 못 찾았다. 글쓴이로서 실격이지만 나도 직장인이라 우선순위가 있다. 독서는 결국 '사회생활 중 생기는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행동이다. 우선순위는 직업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후에 수정할 예정이다.
- 인색함을 두려워 말라. -> 장기적으로 보고, 결과적 효익을 얻어라.
- 사랑보다 두려움을 얻는 것이 더 나은 가치이다. ->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믿어라.
- 군주는 필요시 악행을 저지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 그러지 못하면 업신여김 당할 것이고, 사람들은 사사건건 당신의 행사를 방해할 것이다.
- ‘현명함’은 각 위협의 ‘본질’을 평가할 수 있고 ‘차악’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 전쟁은 회피하지 못한다. -> 전쟁은 우연이 아니다. 전쟁은 이긴 자가 선이다. 전쟁을 두려워 말고 오히려 준비하라.(대비하라)
- 바다가 고요할 때 폭풍을 예상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약점이다. -> 여유가 있을 때 미리 대비하고, 대비되어 있음을 믿어라.
- 운이란 ‘난폭한 강물’과 같다.
-> 모든 사람이 그 앞에서 도망친다. 그 기세에 굴복한다. 저항의 가능성은 없다.
이런 것이 강물의 본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물이 조용히 흐를 때 강물이 수로로 흐르게 하거나 그 기세를 꺾어 덜 사납고 덜 위험하게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운도 마찬가지이다. 운은 그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위력을 드러내며, 자신을 저지하기 위한 제방과 둑이 세워져 있지 않은 곳을 알고 거기로 기세를 돌린다.
읽어보면서 느꼈겠지만 인간 무의식의 심리에 대한 이해가 들어있는 통찰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어려운 책이지만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그 속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리더라면 반드시 이해하고 훈련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록 중용되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비현실적인 선을 말할 때 현실의 악을 통찰한 마키아벨리의 노력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을 위축되게 만든다.
이해하면 활로가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책이 중세에 쓰여 중세의 경험으로 풀이해 놓아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나도 처음 군주론을 읽을 때는 이 책이 중세시대 상류층에게 '부자 되기 비법'을 설파하는 책인 줄로 알았다. 표면은 이득이다. 그러나 사고 후 깨닫게 되는 이면은 달랐다.
마키아벨리는 왜 이 책을 썼을까?)
군주론은 악행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가 기능을 해야 하는 존재임을 암시하는 불편한 책이다.
군주론은 사랑받길 포기하라 말한다.
악을 받아들일 근성을 가지라 말한다.
결과를 내기 위해서 인색해지라 말하고 잔혹해지라 말한다.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전쟁(문제)을 대비하고 장기적으로 이득을 얻으라 말한다.
차악을 받아들이라 말한다.
책을 읽고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6세기 이탈리아가 외세의 침략과 내부의 견제가 수백 년간 지속된 혼탁한 세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면, 그 속에서 평화를 얻기 위해 마키아벨리가 얼마나 절실한 궁리를 했는지 조금은 체감하게 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불안정함이 끝없이 지속되는듯한 혼돈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질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두려움에 굴복하지 말고 이해하고 대비할 것이며, 행동 이면에 선함이 깃들어 있어야 사람들이 마음을 드러낼 것이다.
두려움이 사랑보다 더 나은 가치임을 이해하고, 구성원들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질서를 세우고 안정을 주는 리더가 되어야 사람들이 따를 것이다.
단단한 기반을 가지고 주위에 선함과 안정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나 자신이 가장 먼저 안정될 것이다.
남은 것은 실력과 결과뿐이다.
이 글은 리더를 꿈꾸는 주니어에게는 더 큰 세상이 있음을 알려주고, 삶이 고단한 시니어에게는 손길을 내미는 마음으로 작성했다.
우리 사회는 한 명 한 명의 업무수행으로 굴러간다.
그것이 너무 잘 짜여진 나머지 오롯이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편히 잠드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고단한 하루를 보낸 그들에게 오늘 하루 고생 많았다고.. 한 마디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