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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eze lee Sep 07. 2024

박완서 선생님께  

-시련의 강을 건너는 법

박완서 작가님이라고 불러도 될 텐데 저는 왜 선생님이라는 말이 편할까요? 아무래도 선생님의 책을 오랫동안 접하면서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경외심과 존경심 때문일 것입니다.


선생님 살다 보면 갑자기 소나기를 맞을 때가 있지요? 폭우를 맞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요. 그럴 때면 누가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굳이 안 해도  "힘든 일이 있었구나...'"하고 더 이상 묻지 않는 것만으로도 배려받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요 딱 거기까지만 해 줬으면 할 때 말이에요.


  어릴 적 어머니께서 지인의 집에서 강아지를 데려 온 적이 있었어요. 강아지는 같은 형제들과 떨어져 오게 된 우리 집이 낯설었는지 시름시름 앓았어요. 나는 가여워서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개집에 맛있는 것들도 챙겨서 넣어 주었지만 잘 먹지 않았어요. 그리고 어느 날 강아지가 사라져서 이곳저곳을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울타리 사철나무 아래 숨어 있었어요. 안고 집으로 데려왔는데도 또다시 사라져서 보면 울타리 나무 아래 숨어 있기를 반복했지요.

  

힘들 때 누군가 곁에 있어주면 위로가 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어느 울타리 속으로 숨어 있고 싶을 때가 있어요. 제가 지난달 동안 느낀 마음이에요. 그러면서 갑자기 박완서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도 자매도 친구들도 아닌 선생님을요. 아마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선생님의 시련을 공감하고 또 가끔 실수나 후회도 허심탄회하게 적으신 글들을 보며 마치 제 경험인 것처럼 푹 빠져서 읽었기 때문인 거 같아요.


  선생님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서 초등학교 시절 개성으로 소풍을 가셨을 때 기차역에서 손녀가 온다고 베보자기에 떡을 싸서 기다리시던 할머니가 창피하여 모른 척하고 싶으셨다는 것이 기억에 나요.

  저도 초등학교 4학년 한창 동생의 육아에 지친 엄마가 담임 선생님 상담을 왔을 다른 어머니들보다 세련되지 않은 옷차림과 화장이 부끄럽다고 잠시 모른 숨은 적이 있어요. 지금도 너무나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에요.


  그리고 '누가 그 많던 싱아를 먹었을까'에서 선생님의 선하고 명석하신 오빠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어쩔 수 없이 월북을 했을 때 기관에 불려 다니시면서 얼마나 모진 고초를 겪으셨는지를 기억해요. 그때 선생님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반복되는 심문 등에 얼마나 고통이 심하셨는지 생생하게 쓰셨고 저도 우리 한국의 특이하고도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너무나도 소중한 아드님을 불의의 사고로 잃으셨을 때 신을 부정하실 만큼 괴로워하셨고 수도원에 한참을 가 계셨을 때 저도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어요. 만두를 그렇게 좋아해서 만두 하는 날이면 누나와 만두를 서로 많이 먹으려고 서로 웃으며 투닥이던 그 아드님을 만두 하는 날이면 떠올리셨다는데 저는 그 고통을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듯합니다. 제게 닥친 고난은 아마 그것보다는 훨씬 미비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저도 지난날동안 2번째 자아를 세워 놓고 1번째 자아는 저 구석에서 은둔하고 있었어요. 허깨비로 간신히 그럭저럭 일상을 유지한 거 같아요. 저를 유심히 본 사람만이 "요즘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보았어요. 근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저에게 그리 관심이 없었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그게 섭섭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다행이었어요. 진짜 울타리에 숨은 강아지처럼 모든 관심이 귀찮았거든요.


박완서 선생님

  그냥 선생님 옆에 앉아 선생님이 그 인자하신 웃음을 지어주신다면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릴 거 같아요. 그러고 그렇게 한참을 실컷 울다가 선생님이 몇 번 토닥여 주면 손수건을 접고 집으로 와 푹 잠을 잘 거 같아요. 요즘 잠을 통 못 이루었거든요. 며칠 전 꿈에서 얼굴에 덕지덕지 흰 칠을 한 사람이 보였어요. 얼마나 경황이 없었는지 자세히 보니 화장을 하다 말고 와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요. 꿈이 생생한 걸 보니 현재의 제 마음을 무의식이 보여주었나 봐요.


  선생님, 버스에 타서 졸고 있는 어린 버스 안내양이 안쓰러워서 깨우기 어려워하던 선생님의 모성애가 공감 가는 나이가 되어 가고 있어요.  버스 요금의 거스름돈을 받다가 떨어뜨렸을 때 배차시간 늦는다고 빨리 내리라고 매몰차게 쏘아대던 안내양을 미워하지 않고 동전을 엎드려 줍던 선생님이 떠올라요. 그러고도 원망하지 않던 인자한 선생님의 모습을요. 


 선생님이 그 많은 시련을 신앙과 시간의 힘으로 건녀셨듯이 저도 그렇게 지금의 시련을 시간의 징검다리를 따라 잘 건너갈게요. 선생님의 글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강물로 흐르고 있어요.

선생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하늘 나라에서 아드님 그리고 사부님과 만나 못 다한 이야기 나누시며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라요. 


 -선생님의 책으로도부터 위안과 희망을 얻는 어느 독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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