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성 칭다오를 떠나 내륙으로 깊숙이 향하는 길. 바닷바람이 잦아들고, 택시 속도가 느려질수록 바다의 짠내 대신 황토빛 평야에서 불어오는 흙냄새가 코끝을 스쳤습니다. 이곳은 중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작가 모옌(莫言)이 태어난 가오미(高密). 그의 이름처럼 '말하지 않는다'는 침묵 속에서, 붉은 땅의 거대한 서사를 붓으로 풀어낸 작가입니다.
모옌문학예술관 뒤편에는 붉은 수수밭이 끝없이 이어진 풍경이 펼쳐집니다. 햇살은 들판 위를 천천히 가로지르고, 흙냄새와 저녁의 노을이 마치 한 폭의 유화처럼 겹쳤습니다. 이 광활한 들판 앞에서 저는 문득 느꼈습니다. 이곳에서는 생명과 죽음이 함께 숨 쉬는 것 같다고.
모옌의 소설 『붉은 수수밭 가족』 속 여주인공 '지우얼'의 이름에는 흥미로운 상징이 담겨 있습니다. 아홉 번째 딸이라는 뜻이지만, 아홉 구(九)는 발음이 같은 오래될 구(久)의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즉, 지우얼은 한 개인의 운명을 넘어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력' 그 자체를 암시하는 존재입니다. 이 붉은 땅에서 모옌은 결국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인간은 죽음 이후 어디로 돌아가 영원히 이어지는가?
우리는 보통 서양의 사상에 익숙해져 개인의 죽음을 '종말'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동양, 특히 중국에서 죽음은 '조상-나-후손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계승'으로 이해됩니다. 개인의 육체는 소멸하지만, 나의 피와 정신은 유전자를 통해 영원히 후손에게 이월되는 순환입니다.
모옌이 소설 원제목에 ‘가족(家族)’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관심은 개인이 아니라 피를 잇는 영속의 끈에 있었으며, 소설 속 붉은 수수밭은 피 흘린 조상의 영혼이 다시 수수로 피어나 후손을 기르는 생명의 회로를 상징합니다. 신(神)의 부재를 경험한 중국에서, 인간은 가족과 유전자를 통해 영속성을 확보하고 구원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사유는 유교의 제사 문화에서 철학적 근거를 찾습니다. 공자는 제사를 강조했으나, 정작 귀신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습니다.
이 지점에서 공자와 묵자의 흥미로운 논쟁이 발생합니다. 공자는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했으나, 묵자는 제삿밥을 먹을 조상 귀신이 없는데 공자가 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공자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이에 공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묵자여, 귀신이 먹지 않아도 마음이 먹는다. 마음을 잊으면 인간이 아니다.”
공자는 제사가 조상의 귀신을 모시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있게 한 근본에 보답하고 나의 영원한 존재를 확인하는 의식이라고 본 것입니다. 유교는 죽은 후의 영생 대신 가족을 통한 생명 계승을 말하며, 사실상 종교의 역할을 대신 수행했습니다. 결국 유전자의 영속을 위해 현실에서 끈질기게 생존하는 것은 개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후손에게 생명을 전달해야 하는 개인의 윤리적 의무가 됩니다.
가오미의 붉은 들판 위로 노을빛이 깊게 스며듭니다. 저는 그 순간, "죽음이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라는 동양적 깨달음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나는 나의 조상에게서 왔으며, 나의 후손을 통해 영원히 이어지는 존재입니다. 나의 몸속에 흐르는 영원함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깨달음은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지라도,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끈질기게 살아가야 할 이유를 던져줍니다.
이 가오미의 대지에서 시작된 사유의 여행은, 다음 목적지인 칭다오 맥주 거리로 이어집니다. 영속성을 위한 끈질긴 생존 의지가 현대 중국인의 실용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그 현장을 이어서 분석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