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 중국노벨문학상 '붉은수수밭'

by kidong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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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가오미시: 중국 노벨문학상수상자 ‘모옌’의 고향

가오미, 모옌: 유전자를 통한 동양의 영생 서사


Ⅰ. 장면: 붉은 수수밭으로 가는 길의 사유


중국 산둥성 칭다오공항을 나서자 바닷바람이 잦아들고, 창밖으로 평야가 천천히 펼쳐진다. 공항을 벗어나자 도시의 윤곽이 희미해지고, 반짝이던 해안선은 곧 황토빛 평야로 바뀐다. 택시 속도가 느려질수록 바다의 짠내 대신 흙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바람 속에는 갓 수확한 곡식의 냄새와 오래된 시간의 냄새가 함께 섞여 있다.


“가오미(高密)”라는 이정표가 나타날 무렵, 붉은 수수밭이 시야에 들어온다. 도로 양편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이 펼쳐지고, 햇살은 수수의 이삭 위로 반사되어 피처럼 붉게 번진다. 이곳은 중국 노벨문학상 작가 모옌(莫言)이 태어난 고향이며, 그의 문학적 영감이 뿌리 내린 장소이다.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배경 또한 이 가오미의 수수밭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모옌문학예술관은 소박한 벽돌 건물이다. 내부에는 작가가 집필하던 나무 책상과 육필 원고가 남아있다. 오래된 목재의 표면엔 세월의 손길이 남아 있고, 펜촉의 흔적은 여전히 마른 잉크처럼 빛난다. 모옌, 그의 이름은 ‘말하지 않는다(莫言)’는 뜻이다. 그는 말 대신 붓으로 이 붉은 땅의 이야기를 풀어낸 작가다.


예술관 뒤편에는 붉은 수수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햇살은 들판 위를 천천히 가로지르며 흙냄새와 수수의 이삭, 저녁의 노을이 한 화면처럼 겹친다. 여행자는 그 풍경 속에서 느낀다. 이곳에서는 생명과 죽음이 함께 숨 쉬는 것 같다. 붉은 빛은 ‘피’이자 ‘술’이며, ‘흙’ 색이다.


이 붉은 수수밭의 풍경을 통해 모옌은 인간이 마지막에 어디로, 무엇으로 돌아가는가를 질문한다. 여주인공 '지우얼'의 이름에는 아홉 번째 딸이라는 뜻이 있지만, 이 이름은 한자 아홉 구(九, jiǔ)와 발음이 같은 오래될 구(久, jiǔ) 자의 의미를 동시에 품는다. 즉, 그녀의 이름 자체가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력’을 암시하는 상징 장치다. 그녀의 사랑과 죽음은 한 개인의 운명을 넘어 세대의 순환을 완성한다.


Ⅱ. 질문: 개인적 종말을 넘어, 가족을 통한 영원함을 묻다


모옌의 문학은 늘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 인간은 왜 흙으로 돌아가려 하는가. 그의 작품 세계는 생명과 죽음, 가족과 기억의 문제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서양의 죽음관은 개개인이 신의 심판을 받고 천국에서 부활을 기다리는 개인적 종말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동양, 특히 중국에서 인간은 죽음을 조상-나-후손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계승으로 이해한다. 개인의 육체는 소멸하나, 나의 피와 정신은 유전자를 통해 영원히 후손에게 이월된다.


그렇다면 서양의 개인적 종말과는 달리, 동양에서 인간은 죽음을 극복하고 조상-나-후손의 회로를 통해 어떻게 영원히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모옌의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구조다.


모옌은 왜 소설 원제목에 ‘가족(家族)’을 강조하며 ‘피와 수수’의 순환을 그렸을까? 소설의 원제는 『홍까오량가족(红高粱家族)』이다. 그러나 한국 번역판에서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빠지고 『붉은수수밭』으로만 유통되어, 이 작품의 핵심인 '가족을 통한 생명 순환'이라는 개념이 희석되었다. 모옌의 관심은 개인이 아닌, 피를 잇는 '가족'이라는 영속의 끈에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신(神)의 부재를 경험한 중국에서, 인간은 가족과 유전자를 통해 영속성을 확보하고 구원을 경험한다.


Ⅲ. 사유: 유교의 제사, 생명 계승을 확인하는 종교적 의식


모옌의 『붉은 수수밭 가족』은 피와 흙으로 쓴 동양적 영생 서사의 교과서다. 죽음은 개별적인 소멸이 아니라, 조상에서 후손으로 이어지는 유전자 코드의 이월(移越), 즉 생명의 순환이다.


이 순환의 논리는 소설 속 문장에 명확히 담겨있다. "그들의 피(유전자)는 땅에 스며들어, 다음 세대(후손)를 길렀다." 붉은 수수밭의 농민들은 조상의 피가 땅을 적시고, 그 땅에서 자라난 수수를 먹고 술을 빚어 마시며, 이 순환을 통해 조상의 생명력을 자신의 몸에 통합시킨다. 이 피 – 땅 – 수수 – 후손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순환 구조는 동양인의 근원적인 죽음관을 해설한다.


이러한 사유는 유교의 제사 문화에서 철학적 근거를 찾는다. 공자는 귀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제사를 “부모의 생명을 되새기는 예(禮)”라 했다.


여행자는 공자와 묵자의 철학적 입장을 머릿속으로 재구성해본다. 묵자는 현실의 합리를, 공자는 기억의 윤리를 중시했다.


공자는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묵자는 제삿밥을 먹을 조상 귀신이 없는데 공자가 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공자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공자는 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한다. “묵자여, 귀신이 먹지 않아도 마음이 먹는다. 마음을 잊으면 인간이 아니다.” 이 대립은 죽음을 ‘개인의 소멸’로 볼 것인가, ‘생명의 계승’으로 볼 것인가에 있었다.


공자는 제사가 조상의 귀신을 모시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있게 한 근본에 보답하고 나의 영원한 존재를 확인하는 의식이라고 말했다. 유교는 죽은 후의 귀신을 통한 영생을 말하지 않았으나, 개인의 죽음이 자손을 통해 계속 이어지므로 사실상 종교의 기능을 대신 수행했다. 서양의 종교가 천국에서의 개인 영생을 약속한다면, 유교는 가족을 통한 생명 계승을 말한다.


따라서 유전자의 영속이라는 큰 목적을 위해, 현실에서의 끈질긴 생존과 실용적 처세는 개인의 이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후손에게 생명을 전달해야 하는 개인의 윤리적 의무가 된다. 모옌의 문학은 이 순환 구조를 보여주는 ‘동양적 영생 서사’의 표본이다.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유는, 서양 유럽의 부활 사상과는 다른, 동양 아시아만의 독창적인 죽음관과 생명 철학을 문학으로 탁월하게 구현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Ⅳ. 여운: 흙으로 돌아가는 여행, 영속의 대화


가오미의 붉은 들판에 노을이 내린다. 수수의 이삭이 바람에 흔들리고, 흙은 그 안에서 숨을 쉰다.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죽음이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나는 나의 조상에게서 왔으며, 나의 후손을 통해 영원히 이어지는 존재다.


붉은 들판의 바람이 속삭인다. "너의 조상은 흙이었고, 너 또한 흙이 될 것이다. 그러나 너의 유전자를 품은 흙은 후손의 모습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노을 속에서 한참을 멈춰 선다. 죽음이란, 결국 가족의 이름으로 다시 살아나는 일.


여행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었다. 나의 죽음이 곧 가족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동양의 죽음관을 몸으로 사유한 시간이었다.


가오미의 대지에서 시작된 이 사유의 여행은 이제 칭다오로 이어진다. 중국인의 생존을 위한 끈질긴 의지가 현대 중국인의 실용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나는 칭다오맥주병 상표 속 잔교의 회란각(정자)에서 다시 묻는다.



글로 다 담지 못한 [붉은수수밭] 이야기는 아래 영상에서 더 생생하게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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