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
대학생땐, 나도 어엿한 직장인이 되면 오피스룩에 뾰족구두를 신고 숄더백을 둘러맨 채 ‘아 늦었다 늦었어!’하며 헐레벌떡 뛰어가곤 하겠지-라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웬걸, 직장인이 된 지 1년 차인데, 상의는 매일 후드집업, 하의는 매일 검정 트레이닝 바지이다.
Elvy는 왜 옷을 안 사요? - - - 귀찮아서요 ㅎㅎ..
Elvy는 남자친구 만날 때도 진짜 그렇게 가요?? - - -네 ㅎㅎ..
1년 동안 매번 듣는 질문이다. (Elvy는 내 영어이름이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는 것보다 내가 편한 게 가장 중요해졌다. 이런 생각을 가지기 시작한 건 대략 3-4년 전쯤부터였다.
그때 잠깐 만났던 남자친구가 나에게 ‘너는 먹이사슬 맨꼭대기에 있잖아.’, ‘너 정도면 탑티어지’, 등의 과한 외모 칭찬(?)을 해주었다. 당시 나는 공시생이었어서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는데, 칭찬을 듣고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걸 보면 나에게 칭찬으로 돌아오지 못한 듯하다.
외적인 모습에 대한 칭찬을 꽤 오랫동안 받고 나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내가 이렇게 공들여서 한 치장과 꾸밈이, 누굴 위한 것일까? 나를 위한 것인가, 남을 위한 것일까.
현대사회에서 치장은 후자에 가까운 거 같다. 평가와 비교, 유행을 좇는 게 미덕이자 트렌드이며, 내 걸 지키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고 느껴졌다. 나는 이러한 압박에서 스르륵 벗어나는 삶을 택하기로 마음먹고, 다른 색의 후드집업 5벌과 검은색 트레이닝바지 3벌을 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입고 있는 이 검정 트레이닝복은 입은 지 무려 5년이 되었다. 소매는 닳았고, 주머니 속엔 나만 알 수 있는 작은 구멍이 있다. 그렇지만 그곳으로 빠져나가는 자존감은 단 1g도 없다.
예쁜 건 불편하지만, 다소 쉽게 내가 원하는 이상향을 만들 수 있다. 옷으로 맵시를 만들고, 컬러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조금만 찾아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편한 상태로 내가 되고 싶은 나를 만드는 것은 꽤 많은 노력이 든다. 대충 입어도 후줄근해 보이지 않으려면 먹는 것부터 신경 써야 한다. 화장을 덜면서도 또렷한 눈을 가지려면 내면이 꽉 차있어야 한다. 그 사람의 됨됨이와 사색이 눈빛에서 드러나기 때문.
어쩌면 나는 편한 차림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것들로 나를 채우는 삶을 살고 있다.
모두가 겉치레보다 속치레에 치중하는 삶을 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