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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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멋진 신세계 1.


사내는 내 몸 위에서 미친 듯 몸부림쳤다.

때로는 흐느끼듯, 어느 순간은 부르르 몸부림을 쳤다가 다시 내 가슴을 거칠게 움켜쥐고,

몇 분간은 내 몸뚱이를 뒤집기도 하고 때로는 입에, 때로는 항문에,

온몸에 자신의 생식기를 닥치는 대로 넣어보고 기기묘묘한 자세들을 할 수 있는 육체의 한계까지 몰아세웠다.

물론 나는 그 사내의 욕구에 따라서 원하는 대로 자세를 취해 주거나, 그가 필요해하는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응해 주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내의 흥분에 비하여 전혀 아무런 느낌도, 고통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내게 주어진 상황에 맞춰 움직여 줄 뿐이었다.

물론 사내의 몰입도와 흥분 상승지수, 호르몬의 분비에 따라 나 역시 적절한 신음소리와,

필요한 만큼의 체액 분비물과, 사내가 기분 좋을 만큼의 체온 상승 들이 이루어지긴 하였으나

그건 전적으로 내 의지와는 무관한 자동적인 반응이라서 사내가 어찌 생각할지 까지는 짐작이 가질 않았다.


도무지 나로서는 알 수 도 없고 느껴지지도 않는,

희한한 에너지 운동을 십여 분 간 지속하는 사내를 보면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건,

인간이란 참 기묘한 존재라는 것이었다.

마치 당장 죽어도 좋다는 식으로 미친 듯 내게 덤벼들긴 하지만,

그래 보아야 기껏 지속이 가능한 시간이라야 결국 삼십 여분 남짓.

그러고 나서 힘껏 사정을 하고 나면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탈진하여 쓰러지고,

조금 잠이 들어버리거나, 아니면 일어나서 주섬주섬 샤워를 하고 나서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갈 것이 너무나 뻔한데.

첫 시작은 마치, 당장 일을 치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이 핏발 선 눈으로 덤벼들어서,

내 몸뚱이 이곳저곳을 미친 듯 쓰다듬고 애무를 하고 하지만 그게 애무라 할 수 없는 건

나 자신이 느끼는 부분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할 때의 사내가 만약 힌두 신화의 여신처럼 여러 개의 팔이 있다면,

있는 대로 다 동원해서라도 내 온몸을 샅샅이 주물러 대려고 했을 것이다.

그 행위를 보고 있자면 이것이 일반적으로 부르는 ‘생식 행위’ 혹은 듣기 좋게 부르는 ‘사랑’의 행위라곤 절대 보여 지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 행위만을 놓고 본다면 이것은 그저 약탈과 침범, 포식자의 행위에 오히려 걸맞는다.

이미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때는 내 반응이나 느낌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렇게 사내는 저 좋을 행동들을 하고 싶은 대로 한창 하고는 이내 자신의 생식기를 내게 들이대는 것.

그리고 그게 내게 어떤 의미와 느낌 일지도 중요하진 않다.

오직 일 시간의 쾌락, 그리고 조금 지난 후 이어지는 사정.

그 외에 사내가 내게 바라거나, 내 반응을 살피는 일 따위는 애초에 없다.


입이라고 부르는 에너지 섭취 기관을 통하여 온갖 종류의 단백질과 탄수화물,

식이용 섬유질 들을 그다지 효용성은 없는 인공화합물로 덮거나 섞어서 내장기관에 밀어 넣고.

또 한참 동안을 내장기관의 운동에 의하여 영양분과 칼로리로 전환하여 신체기능을 움직여야 하는 지극히 비효율적인 에너지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숱한 과정을 거쳐 비축한 에너지와 수분, 단백질 등을 십 여분 정도의 아무 의미 없는 활동을 통하여 소모를 하고, 그러고는 다시 또 수 시간에 걸친 에너지 비축을 한다는 건.

도무지 내 상상력으로는 이해도 되지 않고, 너무나도 불합리한 에너지 소모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내의 ‘부적절한 에너지 소모 행위’에 동참을 하는 것 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구조로 에너지를 섭취하는 내 신체기능에서도,

어느 정도는 유지관리에 필요한 약간의 동물성 단백질이 필요하기도 해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보충을 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자원의 재활용, 그리고 적절한 재생.

이것이 23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인류의 바람직한 행동 아니겠는가.

나는 이 세기를 살아가는 인간, 특히 남성들을 위해 프로그램된 이른바 ‘시버 러버’이고.

사실 ‘시버 러버’라고 불리는 건 공식 명칭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들 이란 대개 그다지 의미 없는 일에 의미 따위를 부여하는 묘한 습성이 있다.

그들이 21세기를 살았던, 그리 유명하진 않았던 ‘가수’라는 직업을 가졌던 한 사내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실수했던 우스개.

타 가수의 노래 제목 ‘Cyber LOVER’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시버 러버’라고 했었었 다는.

정말 대단치 않은 한때 우스갯소리가 어이없게도 22세기까지 농담처럼 흘러 다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통칭할 때 원래의 공식 영어 명칭이 길다는 이유 하나로 우스갯소리처럼 별명 삼아 부르기 시작한 것 이 일반화되어 버린 것이다.

내게 그 이름에 대한 큰 감정은 물론 없지만,

그래도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 은 나와 같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오랜 기간 온갖 머리 좋다는 인간들이 모여 생각하고 연구해서 만들어 낸 것의 프로토 타입에다가,

기껏 21세기의 우스갯소리에서 비롯된 농담 같은 애칭을 붙였냐는 것이었다.


하긴, 그만큼 많은 자원과 비용과 두뇌를 동원해서 만든 결과물 이란 게 실은 인간의 짧고도 불필요한 생식이 배제된 생식 행위를 위한 것 이라니 이 또한 큰 모순이 아닐 수 없지만.

그렇다.

나는 인간, 그중 사내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유기체 안드로이드.

Enjoyment Virtual Automation Robotics. 이른바 ‘EVA’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