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별곡

by 능선오름


면회를 오겠노라고 연락을 받은 건 며칠 전이었다.

전화통화도 여의치 않은 사정들로 인하여 오랜만에 받은 편지에는 짤막하지만 단아한 글씨의 단어 몇 개가 가슴에 콕 박혀왔다.

‘ 면회, 토요일, 터미널 ’

몇 개의 단어만으로도 힘겨운 매일 들이 사뭇 즐거운 나날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연인을 기다리는 시간은 하루가 열흘처럼 길지만 그 기다림의 즐거움이 더 크다라고.


나 역시 예외가 아닌 듯 매일 반복되는 훈련과 교육의 반복 속에서도 토요일은 좀처럼 오지 않고 그렇지만 매일 밤 그녀를 그리며 잠드는 시간들은 행복하였다.

중부전선에 배치될 때만 해도 그래도 서울로부터 먼 거리는 아니라고 자위하였으나 하필 그중에서도 최전방에 근접한 자대로 배치가 되면서 실망했던 것은 사실.

한창 나이대인 이십 대 중반인데 청춘을 고스란히 국방색 위장색 사이에 물들어 어디로 고개를 돌려 보아도 시커먼 사내들 뿐 인 최전방 생활 이라니.


업무를 끝내고 돌아온 BOQ( Bachelor Officer Quarters 독신 장교숙소)는 늘 냉기가 감돌았다.

방 여섯 개에 장교들은 열두 명가량 되었지만 번갈아 야간당직과 파견훈련 등으로 늘 실제 인원은 여섯이 안 되는 경우들이 태반이었다.

BOQ의 생활 이란 것이 그저 사병들처럼 내무검열이나 점호가 없다는 것뿐,

병영 내 위치하고 있는 특성상 근무의 연장과도 같아서 잠자는 것 이외엔 별게 없는 일상.


원래 순번대로 라면 이번 주 토요일 일직근무가 차례였으나 인사장교를 꼬드기고 얼레어 순번을 바꿔 모처럼의 면회를 보낼 생각에 묵직한 군화 발걸음이 가볍기만 했다.

후배의 점퍼와 인사장교의 티셔츠를 빌려 입고 나서는 토요일은 하늘도 축복하듯 맑았다.

짧은 머리가 신경 쓰였지만 그거야 이 동네 표준 두발상태이니 탓할게 아니었다.

마침 읍내로 나간다는 인사계의 지프를 얻어 타고 읍내에 도착.

아직 수유리 발 도착 예정 시외버스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전방부대 피엑스에서 거둘 수 있는 향기라고 해봐야 초록색으로 병에 담긴 스킨브레이서 달랑 한 종류뿐이지만 그것이 천상의 향유라도 되는 듯 거칠어진 얼굴에 붓다시피 한 건 아마 그녀를 향한 내 마음 같은 것이리라.

시외버스 터미널 이라곤 해도 버스 두 대가 서있으면 꽉 차고 말 비좁은 공간에 가을볕만큼은 풍요로워서 빈 마당 가득 눈이 부시다.

바람은 쌀쌀하지도 않고 딱 알맞게 드문드문 불어오고 사람들도 많지도 않게 드문드문 서 있다.

이 모든 정경들이 그녀와 나의 만남을 위한 배경이라도 되는 듯 기다림을 만끽하면서도,

행여 그녀에게 불쾌한 냄새라도 풍길까 싶어 담배 한 대를 태우지 않고 매표소 벽에 기대서서 해바라기를 한다.

멀리서 버스가 들어온다.

급한 눈은 미리부터 버스 앞창을 투시라도 할 듯 뚫어지게 차를 노려본다.

그러나 드러누운 가을볕은 차창에 눈부시게 부딪쳐 차 내부는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멈춘 버스 앞문으로 하나둘 내린다.

내리고 짐을 꺼내고 하는 서슬 어디에고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애가 탄다.

입이 바짝 마르고 행여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아니면 차를 못 탄 건지 알 도리가 없다.

서로 전화통화를 할 방법이 없었으니 그저 기다릴 따름이다.

이번 차가 지나가면 한 시간 후 에나 차가 올 텐데.

나도 모르게 굳어진 얼굴로 버스 입구로 다가서는 내게 마지막 승객이 내려오는 것 이 보인다.

베이지색 구두. 하얀 종아리. 나풀거리는 흰 스커트. 그리고 나타나는 얼굴.

초승달처럼 그려지는 눈웃음.

그리고 활짝 열린 빨간 입술.

그녀가 왔다.

내 일그러지려던 얼굴이 웃지도 어쩌지도 못하는 희한한 근육의 모양을 만든다.

나는 오른손을 높이 쳐들었다.

어차피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사람이라곤 나 하나뿐이란 것도 잊은 채.

그녀가 내게 왔다.

눈부신 가을볕을 어깨에 머금고서.


그녀는 내게 다가오며 말없이 웃는다.

그녀의 어깨와 원피스에 부딪는 햇살들이 하얗게 빛난다.

눈이 부시다.

그녀의 발걸음이 한걸음 씩 다가올 때마다 은은한 향기가 다가온다.

그녀는 장난꾸러기처럼 두 손을 뒷짐 짓고 천천히 내게로 왔다.

나는 잠시 호흡을 멈추었다가 조용히 내쉰다.

그녀의 존재감에 숨이 가쁘다.

내 어색한 손은 갈피를 못 찾고 허공을 방황한다.


“ 뭐해요. 누가 보겠어요. 여기 당신밖에 없잖아요.”


까르륵 그녀가 웃으며 손을 내민다.

나는 급히 올렸던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마주 잡는다.

작고 보드랍고 따스하다.

세상의 것 같지 않다.


“ 맨 뒷자리이었나 봐요.”


나는 엉뚱하게도 그녀를 기다렸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한다.


“ 아, 그건 아닌데 깜빡. 잠이 들었어요. 많이 기다렸어요?”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슬며시 손을 뺀다.

그녀도 나도, 처음으로 마주 잡았던 손. 아쉽다.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하다.


“ 아, 조금요. 그럼……. 배고프지 않아요?”


참으로 식상한 말을 하는 내 입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여긴 전방 읍내. 크게 가보자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그게 배가 고프다는 건지 아니란 건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점심시간이라 일단 그녀와 함께 읍내에 있는 식당을 물색한다.

고기 집, 닭갈비집, 맥줏집, 경양식집, 분식집, 다방.

그게 읍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먹거리의 전부 다.

서울과는 사뭇 다른 간소한 선택범위에 그녀가 잠깐 당황한다.

그녀가 한참 망설인 끝에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다.


‘춘천 닭갈비’


새처럼 조금씩 먹이를 먹는 그녀의 오물거리는 작은 입술을 보느라 나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로 몇 걸음 옆에 있는 다방을 갔다.

전방의 다방이 으레 그러하듯 진하게 화장을 한 다방 아가씨가 건들거리며 주문을 받고 나와 그녀를 번갈아 흘깃 거리며 돌아간다.

그녀도 나도 길게 나눌 대화는 별로 없다.

아는 친구를 통해 서울 외박 길에 그녀를 소개받은 지 한 달 전.

유일한 소통 수단인 편지가 오간 게 두어 번.

준공무원에 해당하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것.

나 역시 ‘군공무원’이라고 헛소리를 하며 공통점이랍시고 내세우던 게 전부.

그렇고 그런 뻔 한 내용의 편지글 두어 번 이 전부 인 관계.

그리고 예고 없던 그녀의 면회.


그 이유가 어떻든 나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였다.

별 얘기 없이도 눈 마주치면 웃고.

그러다 살짝 민망하여 외면하기도 하고.

나는 근처의 관광지를 가보겠느냐 말했고 다방이 갑갑한 듯 그녀도 선뜻 나섰다.

관광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조악한 곳이었지만 그나마 전방동네에서 관광지라고 이름 붙인 곳이라서 걷기에는 좋았다.

그때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 기억에 선명한 것 은 그녀의 흰 원피스가 바람에 흩날리며 그녀와 내가 손을 마주 잡고 그 허허로웠던 시골길을 달음박질쳐 달렸다는 것.

영화에서 연인들의 러브신이 나오면 늘 등장하는 이유 없는 달음박질이.

단지 영상미를 위한 과장이 아니었다는 걸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이미 이십 대 초반을 지난 우리 둘은 어린아이들처럼 달음박질하며 깔깔 웃었다.

그리고 가을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던 그녀의 흰 얼굴.

짧게 잘라 바람에 나부끼던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

손을 통해 전해지던 따스한 체온.

그 가을은 그렇게 눈부신 기억으로 내 머릿속 창고에 놓여 있다.

기다림의 시간은 몇 달처럼 길었건만 토요일의 만남은 겨울 해처럼 짧디 짧았다.

수유리로 돌아가는 버스 막차 시간은 일곱 시.

그나마도 도착 시간은 열 시 가까이 걸릴 것이었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버스 승차시간을 기다리는 시간.

이미 저녁 해도 짧아져 터미널 주변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순식간에 고요가 밀려든 전방의 읍내.

그리고 이따금 멀리서 들리는 총성.

그 살풍경 속에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장교라고 해 보아야 불과 이십 대 중반.

세상을 잘 알지 못하고 어리숙하던 내겐 그저 그 순간 헤어짐이 아쉽고 꿀 같던 하루가 그리울 뿐.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던 그녀의 옆얼굴이 어딘지 골똘하였음은 나중에 든 생각이었다.


반나절 만에 급격히 가까워진 우리는 버스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여남은 명 내리고,

버스 내부 청소가 끝난 후 개찰을 시작하기 전까지 벤치에 앉아 손을 꼭 마주 잡고 있었다.

어둠과 함께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져 왔다.

공해 하나 없이 맑은 전방지역의 공기는 해가 지면 여름에도 서늘하다.

엷은 원피스 한 벌로 도착한 그녀는 몸을 움츠린다.

나는 겉 점퍼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둘러주며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처음 움찔하던 그녀가 이내 긴장을 풀며 내 가슴에 고개를 기대 왔다.

내 엷은 셔츠 한 장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따스한 체온.

서로 아무 말은 없었지만 두 사람을 보이지 않는 공기방울이 둥그렇게 감싸고 있는 것 같은 안락함.

내 심장은 위험할 만큼 두근대고 그 울림이 고스란히 그녀에게 전달될 것 같아 민망하다.

곧 버스가 떠날 시간이 되고, 몇 안 되는 승객들뿐인 버스기사의 눈길이 나와 마주쳤다.


기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 인다.

이제 출발해야 한다는 것.

난 그녀를 감싸다시피 일으켜 버스표를 건넸다.

슬쩍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망울이 촉촉하게 보인다.

굳게 손을 꼭 한번 그러쥐고 나서 그녀는 천천히 버스에 올랐다.

이내 버스 문이 닫히고, 중간쯤 자리에 앉은 그녀가 희디 흰 손을 흔든다.

나도 마주 손을 흔든다. 손목이 떨어져 나가라고.

버스는 짙은 매연과 울부짖음 같은 소음을 남기고 읍내를 떠났다.

나는 가슴 한 뭉텅이를 버스에 실어 보낸 듯 허망해진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한참 동안을 텅 비어버린 버스터미널 승강장에서 넋을 놓고 서 있었다.

마지막 버스를 보내고 난 매표소 직원들과 승강장 직원들이 여기저기 셔터를 내리고 문을 닫으며 퇴근을 서두르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곳 전방읍내의 터미널에서 흔하게 보는 광경이었겠지만, 그들은 삼삼오오 터미널을 빠져나가며 멍하니 서 있는 나를 흘깃 거리기도 하고 뭐라 소곤거리며 킥킥 대며 지나갔다.


이윽고 터미널을 밝히던 조명들도 서서히 사그라졌다.

나는 본격적으로 불어오는 차가운 밤바람 보다 더 차가워진 가슴을 주체할 수 없어서 어두워진 벤치에 무너지듯 몸을 주저앉혔다.

종일 담배 한 대를 태우지 않았음을 비로소 느꼈다.

점퍼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주머니 속 담뱃갑을 더듬는 사이 뭔가 작은 종잇조각이 사그락 거린다.

리본 모양으로 접힌 분홍색 메모지.

펼쳐 보니 급히 써진 듯 몇 줄 적힌 메모에서 그녀의 향기가 은은히 풍긴다.

지금쯤 숙소로 돌아가고 계시는지, 아니면 이미 돌아갔는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잠깐 자리 비운 사이 몇 자 적습니다.

두 달 전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생소한 군복 차림의 당신은 참 어색해 보였어요.

마치 있을 곳이 아닌 장소에 나와 있는 사람처럼 보였었지요.

몇 번 편지왕래 끝에 당신이 생활하는 곳이 문득 궁금해졌어요.

망설임 끝에 먼 길 면회를 오게 되었고 이렇게 마주했네요.

이곳은 많이 낯설고 긴장되기도 하지만 당신에겐 잘 맞는 옷처럼 잘 어울려 보여요.

모처럼 맑은 공기와 바람을 당신과 함께 나눌 수 있었기에 기쁩니다.

어찌 보실지 몰라도 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작은 계집아이에 불과해요.

당신의 씩씩한 모습에 든든함을 느끼면서도 자주 함께 할 수 없음은 아쉽습니다.

오늘 당신의 밝은 모습, 기억에 많이 남아요.

내가 당신에게 그런 웃음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다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외박 나올 때 미리 편지 주세요.

난 지금 한참 어두운 밤을 달려 집으로 돌아가고 있겠지만,

오늘의 눈부신 햇살을 그리고 있을 듯합니다.


그녀가 면회를 다녀 간 이후 두어 달 동안은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매년 가을이면 닥치는 전투력 측정, 이어지는 동계훈련.

늘 그렇듯 훈련을 준비하고 계획하고 진행하고 결과 평가.

BOQ로 들어와 잠을 잘 수 있는 날도 극히 드물었고 들어온다고 해도 이미 파김치처럼 퍼져버린 육신으로 잠을 청하기 도 바쁜 하루하루.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한동안 그녀와 함께 했던 반나절이 내 머릿속에 맴돌았고 전차를 타고 지나치는 길목 어딘가 그녀와 함께 걸었던 곳을 지날 때면 마음 한편이 싸르르 아파왔다.

이것이 그리움 이란 것 인지, 아니면 사랑이라는 감정 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군이라는 특수집단에 오게 되면 간부들은 또래의 병사들을 지휘 관리해야 한다.

그들과 크게 차이 없는 나이또래 이긴 하지만 때로는 부모 같은 마음, 때로는 엄격한 선생님 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때때로 친구처럼 그들의 고충을 듣기도 해야 한다.

대부분 사회에서 그저 이성 친구 정도로 지내던 병사들도 군대에 입대하고 나면 그 관계가 묘하게 변한다.

일단 그들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이성이다 보니 좀 더 애틋한 마음과 기다림 같은 게 생기는 것이다.

그것을 그들은 친구에서 연인으로 바뀌었다고 들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아닌 경우도 많다.

물론 그 이성친구가 활발한 인간관계를 가진 경우라면 무시당하기도 한다.

그 이성 또한 군에 온 친구가 유일한 이성이라면 반대로 역시 애틋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감정들이 반드시 사랑 이란 것 은 아니다.

주변 환경과 상황이 만들어낸 ‘착각’인 경우도 적지 않다.

만약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3년간 면회를 거듭하며 연인으로 지낸다 해도 나중에 전역할 때가 되면 스스로의 감정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했었다.

대개 여자는 3년이 지나면 혼기가 되는데 남자는 전역 후 복학을 하든가 막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시기이다 보니 동갑 또래의 이성이 결혼까지 골인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 곤 했다.

이른바 입대 초기에 고무신을 바꿔 신는다거나, 오랜 기간을 기다려주었음에도 전투화를 바꿔 신는 경우들이 발생한다는 것.


나는 초급간부로서 병사들과는 달리 근무시간 외 자유가 있다곤 하지만 그것도 늘 읍내 주변 일뿐,

세상과 격리된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래서 내가 현재 바라보는 이성은 단지 ‘그녀’ 일 수밖에 없었기에 그것이 과연 온전한 그리움이고 사랑인 건지 아니면 상황에 따른 선택여지가 없는 일방적 바라 봄인 건지는 몰랐다.

간부로서 때로 어버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는 하나 나 역시 이성보다는 본능이 지배하는 나이.

내 감정의 근원에 대해 의구심이 때로 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런 감정들은 본능적인 그리움과 갈망에 의해 대부분 희석이 되곤 했다.

멀리 떨어져서, 오직 오가는 편지에 의지하는 관계란 서로에 대한 이해보다는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하여 상대방에 대한 환상 혹은 착각을 종종 만들곤 한다.


내 그리움의 무게만큼 그녀도 그러하리라 생각을 하고,

온갖 현실적인 어려움들과 각박함을 이겨내는 에너지의 근원을 그녀로 생각하게 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어쩌면 그날은 종교와 무관하게 젊은 연인 누구나가 바라는 공인된 커플의 날이었을 것이니.

연이은 훈련과 평가들로 새파란 미혼의 초급간부가 연말에 외박을 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그런 시기일수록 경계강화령 같은 게 상급부대에서 내려오곤 하니까.


사단의 간부사격측정 공지가 내려온 것은 오히려 내겐 기회라고 생각했다.

사격측정에서 특등사수가 되면 포상으로 외박을 준다는 문구를 보고 나는 어떻게든 나가야겠다 생각했다.

다들 꺼려하는 기색이 역력한데 스스로 자청하여 나간다는 나를 보고 주변간부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교육용 탄을 최대한 지급받아 일주일 내내 사격에 매달렸다.

거의 종일 얼음장 같은 흙바닥에 엎드려 여분의 총기를 놓고 총만 쏴댔다.

지속된 사격으로 총열이 달아오르면 총을 바꿔가며 아침부터 어두워진 이후에도 사격을 했다.

BOQ로 돌아 가 씻어도 내 몸에서는 화약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종일 개머리판의 충격을 받아 낸 어깨에는 푸른 멍이 들었고 코 주변은 화약재가 침착해서 늘 거뭇거뭇했다.

밤에 잠이 들면 귀마개를 했었음에도 귓속에 멍한 총울림이 들렸다.

그렇게 일주야를 보내고서 나는 사격 측정에 나갔고, 우승을 했다.

적을 하나라도 더 명중시키기 위해 노력한 공로로 표창을 준다는 엄숙한 훈시에 웃음이 날 뻔했다.


참으로 죄송하게도 나는 외박을 위해 쏘았다고 밝힐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전방은 온통 하얗게 눈이 내렸다.

굳이 읍내 세탁소에 며칠 전부터 맡겨놓았던 잘 다려진 군복을 입고 시외버스에 올라탄 내게 미끌거리는 도로로 인해 굼벵이 걸음을 하는 버스는 갑갑하기만 했다.

아마 할 수 있다면 한나절을 달려서 라도 서울로 달려갔을.

크리스마스이브에 외박을 나갈 것이니 명동성당에서 저녁 일곱 시에 만나자는 편지를 보내놓고 답을 받을 시간여유는 없었다.

그녀가 편지를 온전히 제때 받았는지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무작정 갔다.

평소보다 두 시간이 더 걸려 수유리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미친 듯 뛰어 전철을 타고, 택시를 탔다.

시내는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하고 그 여파로 도로는 제대로 막혔으며 다행히 눈은 오지 않았지만 주말이라 혼잡함은 극에 달했다.

충무로쯤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택시에서 내려 무조건 뛰었다.

그곳. 그녀가 있을 곳으로.


명동 이란 곳에 그것도 크리스마스이브에 가 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압도하는 인파에 기가 질렸다.

게다가 몇 년을 오와 열이 뚜렷하게 잘 맞는 정리된 무리들 속에서 생활하다 느닷없이 마주친 무질서한 사람들의 물결은 거의 혼비백산 수준이었다.

나는 일곱 시란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추운 날임에도 등판에 땀이 날 정도로 뛰었지만 수많은 인파를 밀쳐가며 뛰다 보니 늦어질 것 같았다.

약속시간에 늦는 것도 그렇지만 이 추운 날 성당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게 할 순 없었다.

나는 마치 격투훈련을 하듯 인파를 밀쳐가며 뛰었다.

뒤에서 욕지거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차마 군인에게 시비를 대놓고 거는 사람은 없었다.

숨 가쁘게 명동성당의 낮은 언덕을 거슬러 올랐을 때 성당 앞 인파는 절정에 달했다.


난 헉헉 거리며 사격표적을 찾듯 날카롭게 인파를 훑어보았다.

없다. 손목시계를 보니 일곱 시 이십 여분. 너무 늦은 건가.

성당 앞 마리아 상 주변에 사람은 많았지만 그녀는 없었다.

순간적으로 등골이 싸늘해진 것은 단지 땀이 식는 것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는 잠시 사방을 가득 채운 군중들 틈바구니에서 공황을 느꼈다.

누군가가 내 등을 톡톡 두드려 내 공황상태를 깼다.

돌아서니 그녀가 있었다.

그녀의 향기가 내 거친 숨 고르기 속으로 들어왔다.

풍성한 밀크색 털모자를 쓰고 있는 그녀는 귀여운 고양이 같았다.

초승달처럼 눈웃음을 짓는 그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덜컥 그녀를 안아 버렸다.

순간 그녀는 당황한 듯 나를 밀쳐내려는 듯하다가, 이내 내 잔등을 마주 안고 토닥거렸다.

그녀의 털모자로부터 은은히 올라오는 향기가 아득하다.

행복하다. 이대로 세상이 멈췄으면.


전방에 눈이 많이 내렸고, 차가 연착 했으며 충무로 5가부터 뛰었다는 얘기 따윈 않았다.

그냥 말없이 털장갑을 낀 그녀의 손을 마주 잡고 성당으로부터 천천히 벗어나는 게 고작이었다.

덜컥 성당을 나오고 나니 문득 어디로 가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머리가 하얗게 백지화되었다.

사실 성인이 되자 또 다른 구속에 들어갔던 몸으로 서울시내의 명소 같은 건 전혀 모른다.

연인들의 순례길 같은 것도 몰랐다.

적어도 데이트라면 남자가 밥 먹을 곳, 차 마실 곳, 술 마실 곳 정도는 미리 정해 놓아야 능력이 있는 듯 인식이 되곤 하던 시절이었다.

아는 거라곤 관측하기 좋은 고지, 사격하기 좋은 감제고지 따위나 장갑차를 숨기기 좋은 장소 따위나 생각하던 머리로서는 참으로 갑갑한 일이었다.

내 망설이는 발걸음을 느낀 듯 그녀가 입을 열었다.


“ 실은, 편지를 엊저녁에서야 받았어요. 며칠 전에 동생이 편지를 받았다가 깜빡 잊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실은 못 나오는 줄 알고 있었어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했다.

만약 그 편지를 어제도 못 받았다면 나는 네 시간이 넘도록 달려온 보람도 없이 인파로 부글거리는 명동 한복판에서 홀로 기다리다 지쳐 집으로 돌아갔을 게다.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사전 연락도 없이 누가 오늘 같은 날 나를 기다릴 것 인가.

그녀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 그래서……. 친구들하고 선약을 잡아놨었거든요.

미안한데 함께 가면 안 돼요? 미리 해놓았던 약속이라 혼자 빠지기가 그래서요.”


그녀는 미안해하며 내게 말을 했고, 나는 선선히 그러 고마하고 대답했다.

이미 일이 그렇게 꼬인 게 누구 탓도 아닌 데다 내가 아는 장소도 없기도 하고,

이미 어지간한 커피숍이나 식당, 술집들은 사전예약으로 인산인해라는 소식을 듣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다만, 어렵사리 우여곡절 끝에 찾아와 만나게 된 그녀와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없음이 서운하긴 하였으나, 그녀의 사정을 안들을 수 도 없었다.

달리 둘이 함께 해야 한다 하고 사전에 약조가 된 것 도 아니었으므로.


그녀의 친구들이 예약해놓은 술집도 입추의 여지없이 붐볐고 그 왁자함 속에 던져진 군인아저씨는 여럿의 눈길을 받기에 충분하였다.

친구들은 온갖 호기심과 장난 섞인 농담 같은 것 들을 내게 쏟아부었고 나는 진땀을 흘려가며 응대를 했다.

한동안 내게 관심을 두던 그들은 이내 자신들의 이야기로 돌아갔고 나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보다 더 무색한 자세로 몇 시간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이브에, 전방 숙소 대기가 아니라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뿌듯했다.

이곳에 나오기 위해 치러야 했던 몇 주간의 고군분투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명동을 채운 인파의 수가 최고조에 달할 때쯤 자리는 끝났고 그녀도 돌아가야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를 바래다주겠다고 했고 그녀는 집방향이 반대인데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그녀와 단둘이 보낼 시간이라야 더 낼 수 없던 나는 한사코 고집을 피웠다.

성탄전야에 명동에서 택시를 잡는다는 것은 복권당첨만큼 어려운 일이다.

나는 호기롭게 교통순경에게 다가가서 바빠서 그러는데 도와 달라고 했다.

순경은 내 복장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군 말없이 택시를 잡아 주었다.

나는 가볍게 고맙다고 하고 그녀와 택시에 올랐다.

역시나 도로는 차량으로 가득했고 졸지에 변두리로 운행을 하게 된 기사는 가는 동안 내내 툴툴거렸지만,

군복과 룸미러를 통해 내가 보내는 사나운 눈빛 때문이었는지 그럭저럭 차를 몰아갔다.

나는 차라리 교통이 아예 막혀버려서 이대로 차 안에서 밤을 지새우고만 싶었다.

그녀와 손을 꼭 잡곤 아무 말 없이 창밖의 인파와 차량의 물결들을 바라보다가,

때때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곤 빙긋 미소 짓는 것. 그게 다였지만 내 마음은 뭔가 따스한 느낌이 흘렀다. 그렇게 성탄의 새벽이 흘렀다.


그날 밤. 오랜 시간이 걸려 그녀의 집 앞 도로에 택시가 멈추기까지 우린 거의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서로 잡고 있던 손길로 나누는 체온. 그것으로 충분했다고 하면 맞을까.

때로는 의미 없는 긴 대화보다는 그저 스킨십이 모든 심정을 대변할 수 있고, 그날 우린 그랬다.

택시가 떠나고 난 자리에서 나와 그녀는 한동안 서로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촉수 낮은 가로등불 밑에서 그녀와 나는 한 손을 마주 잡곤 마치 그 손으로 서로의 에너지가 오가는 듯 가만히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내 중심부가 아니어서 인지 동네는 고요했고 어디 멀리서 캐럴송이 들려온다.

문 닫힌 가게들의 쇼윈도에는 조악한 트리들이 불빛을 색색으로 반짝이고 있고.

서로 내뿜는 숨결들이 옅은 안개처럼 둘 사이의 허공을 맴돌았다.

뭔가가 목구멍에 걸린 듯 갑갑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 언제 복귀하세요?”

“ 내일 점심때쯤요. 내일 일직사관 근무가 잡혀 있어서요.”

“ 아쉽다……. 멀리 왔는데. 그럼 내일 오전에 수유리터미널 근처에서 볼까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그녀는 나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내 허리를 끌어안으며 눈을 감는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감싸 안으며 조심스럽게 입술을 포갠다.

밤공기에 그녀의 코끝이 차다.

내 코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니 움찔 미안하다.

그녀와 나의 입술은 아주 살짝 부딪힌다.

그녀의 숨결이 달콤하다. 서로 어루만지듯 겹쳐진 입술과 입술.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슬며시 입을 떼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고 새초롬하게 내려뜬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내 손을 당겨 꼭 움켜쥐곤 내일 열 시쯤 수유터미널서 만나자고 하곤 그녀가 깡충거리며 골목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녀를 떠나보내던 그날처럼 아주 한참 동안을 거리에 서서 그녀가 사라진 골목을 바라보았다.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은, 전방지역만큼은 아니라도 서울 외곽이라 그런지 별이 총총하다.


아쉬움. 그리고 뿌듯함. 뜬금없이 떠오른 잊고 지냈던 미당의 시 한 구절.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 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다른 연인들이 긴 밤을 보내고 지친 몸을 이끌며 도시를 헤맬 시간.

나는 그녀와 서울 한구석 후미진 다방에서 만나 아쉬운 몇 시간을 보내곤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

지난번과는 반대로 시외버스를 탄 것은 나였으며 그녀는 창밖에서 환히 미소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간밤의 차갑고 달던 키스는 꿈처럼 허전하기만 했다.

버스는 가차 없이 돌아서고 그녀는 꿈속처럼 점점 멀어지다 소실점조차 없어지고 나서야 나는 창밖의 풍경들이 불현듯 음울하게 느껴졌다.

어제 막 급하게 서둘러 도착할 때만 해도 창밖 우중충한 여관 네온사인조차 아름답게 보였건만.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해서 어제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꼬맹이의 심정이었으나 오늘은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의 마음처럼 무겁고 싫기만 했다.

점점 불빛들이 사라져 가는 국도 변 저 멀리, 북쪽의 하늘은 흐림이었다.


그 해 겨울은 눈이 많기도 했다.

쉼 없이 내린 눈을 치우는 제설작업에 병사들도 지쳐가고 그들을 감독하는 나도 지쳐갈 때쯤,

그녀로부터 면회를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뛸 듯이 기쁘기도 했지만 한 번도 얼음이 풀리지 않은 전방지역의 도로사정에 염려가 앞섰다.

절반의 염려와 절반의 기다림 끝에 그녀가 다시 그곳으로 왔다.

근무를 마치자마자 나오게 된 나는 군복 차림이었다.

그녀는 크림빛 패딩코트를 입고 있었고 버스에서 서둘러 내리는 그녀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생각보다 버스 난방이 잘 안 되어 꽤 추웠다고 했다.

거기서 거기 이긴 하였지만 읍내 경양식 집과 다방을 오가고, 근처 들길을 걸으며 그녀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기온은 얼음장처럼 차갑지만 너무 추워 겨우내 녹지 않는 산야는 온통 하얀빛으로 가득했다.

마치 오래전 티브이에서 방영한 삼포로 가는 길에 나오던 눈 덮인 들판처럼.

아이처럼 팔을 벌려 달리고 눈을 뭉쳐 던지기도 하며 뛰놀던 그녀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져서 나는 왜 그러냐? 물었고,

그녀는 추워서 화장실이 급한데 너무 읍내에서 멀리 나와 버려서 어쩌냐고 소근 거리는 소리로 속삭였다.

순간 나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워 얼싸안고 뛰고 싶었지만, 그렇게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어쩔 도리 없이 눈 덮인 논 근처에 볏단 쌓인 곳을 찾았다.

그녀는 하얀 눈이 반짝거리는 들판 한가운데 나락더미 뒤로 돌아가고, 나는 졸지에 경계초병처럼 나락더미 앞을 지키게 되었다.

물론 그 추위에, 벌판을 누가 돌아다닐 리는 없었지만.

칼바람 소리가 부는 가운데 조그맣게 논바닥 녹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순간 얼굴이 벌게졌다.

서로 쑥스러움을 담고 말없이 손잡고 읍내로 걸어오는데 눈발이 내리기 시작했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눈발이었으나 점점 쌓인 눈이 높아져가더니 결국 막차운행이 중단되었다는 팻말이 버스터미널에 붙었다.

그녀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생각지도 못한 막차 운행 중단.

쌓여가는 눈 들.

이제 눈을 좋아라 하던 그녀에게도 더 이상 눈은 낭만은 아니었나 보다.

침착하던 그녀도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였다.

어떻든 당장 택시도 다니지 못할 상황이니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한참 고민 끝에 상황을 받아들이고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되지도 않는 변명을 그녀가 집에 늘어놓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잠시 물러서서 읍내에 있는 여관들을 훑어보았다.

어디고 간에 다 그렇고 그런 낡고, 면회자 위주로 만들어진 조악한 여관 들.

그나마 주말 인지라 빨리 방을 잡지 않으면 몹시 난처한 상황이 될 것이었다.

전화를 마치고 터미널에서 나온 그녀에게 사정을 말했다.

빨리 방을 잡지 않으면 방이 없을 수 있다고.

나는 BOQ로 돌아가도 되지만 영내라 민간인이 들어오진 못한다고.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치뜨며 내게 말했다.

“ 어, 그럼 나보고 혼자서 여관에서 자라고요? 못해요. 무섭잖아요!”

나는 어린아이 같이 순진한 표정을 하는 그녀가 귀여워서 피식 웃으며 농담을 했다.

“ 응? 내가 함께 있으면 더 무서울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요?”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며 그게 왜 무서운 거냐고, 무서운 사람이냐고 거꾸로 묻는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농을 할 분위긴 아니었다.

나는 눈이 쌓여가는 거리를 그녀의 손을 잡고 이끌어 그나마 좀 깨끗해 보이는 여관으로 찾아들었다.

이미 그곳은 방이 꽉 찼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야 그녀도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모양이다.

읍내 여관을 모두 뒤져 보았으나 모든 방이 만원이라고 한다.

대부분 우리와 같이 막차가 끊기는 바람에 그럴 것이었다.

점점 어두워가는 읍내를 누비며 돌아본 여관이 모두 다 차버렸다는 사실을 알곤 나 역시도 당황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그녀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것도 잊을 만큼 걱정을 하면서 점점 추워가는 날씨에 입술이 파랗게 변하려고 했다.

일단 그녀를 다방으로 데려가 따뜻한 코코아를 먹이고 진정시키면서 다방 카운터에 양해를 구하고 전화기를 돌렸다.

부대 근처에 있는 간부관사로 전화를 했다.


“ 통일! 선배님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저 작전장굡니다. ”

“ 어~웬일이야? 주말인데 전화를 다하고? 뭔 일 났어? ”


최전방인 만큼 다 저녁에 후배장교로부터 전화를 받는 경우는 늘 긴장을 동반한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곤 선배에게 혹시 재워줄 수 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선배는 킥킥 거리며 나를 한참 놀려대곤 무조건 오라고 했다.

영내 대기 차량 보낼 테니 그걸 타고 오라고.

선배의 배려 덕분에 곧 대기지프가 왔고 나는 그녀를 데리고 선배의 관사로 갔다.

다 똑같은 모습으로 삭막하게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관사는 따뜻했다.

형수는 아기를 안고 나와서 인사를 하곤 우리 둘 에게 밥상을 차려 주었다.

한참 추운 곳을 헤맨 터라 찬은 얼마 없어도 밥은 달았다.

그녀와 나는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지만 안도의 마음으로 식사를 마쳤다.

형수도 적적한 전방 생활에 느닷없이 나타난 불청객이 오히려 반가왔는 듯 그녀를 붙들고 한참 수다를 떨며 웃고 킥킥거렸다.

주방 식탁에서 형수와 그녀가 수다를 떠는 사이 나와 선배는 술잔을 앞에 놓고 앉아 그렇고 그런 군대 얘기들을 했다.

여자들은 정말 싫어한다는 군대 얘기, 축구 얘기,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까지.

밤이 깊어가자 선배는 은근한 목소리와 느끼한 눈빛으로 내게 귀엣말을 한다.


“ 야. 이중아. - 장교 선배들은 보통 후배들을 이 중위라고 부르지 않고 이중아, 김중아 식으로 애칭 한다. - 너 저 아가씨 하고 잤냐?”


나는 얼굴이 벌게지면 그런 사이 아직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선배는 더 느끼해진 눈빛으로 코치 아닌 코치를 한다.


“ 야, 별거 없어. 어차피 그렇게 될 건데. 여기 전방까지 면회 왔으면 된 거야.

니 형수와 나도 그렀었다고. 오늘밤 신방 차리면 되겠다. 큭큭. ”


나는 선배의 너스레가 부담스러웠지만 아주 싫진 않았다.

적어도 그녀와 나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였으니까.

간단히 씻고 군복을 벗고 선배의 운동복을 빌려 입고 방으로 들어가니 그녀가 형수의 운동복을 입고 이불 위에 다리를 앞으로 오므려 감싼 자세로 앉아 있다.

먼저 씻은 상태에서 종일 바람을 맞고 다닌 탓 인지 양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방은 따뜻했으나 여늬 군대 관사가 다 그렇듯 웃풍이 만만치 않았다.

얇은 창문 틈으로 괴성처럼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녀의 옆에 조금 비켜 앉았다.

헐겁게 지어진 군 관사라 그런지 옆방의 아기 칭얼거리는 소리, 선배와 형수가 뭔가 수군대며 키득거리는 소리가 벽 너머로 온전히 다 들려온다.

갑자기 웃풍 감도는 방이 무척 덥게 느껴진다.

목이 마른 사람처럼 나는 연거푸 침을 꿀꺽 삼켰다.


늦은 아침을 마치고 나선 관사의 바깥세상은 온통 순백의 잔치였다.

밤새 내린 눈은 종아리 어름까지 그득하니 차 올랐고 바람은 잔잔하였다.

언제 눈이 내렸냐 싶게 내리쬐는 햇살이 온천지를 덮은 눈에 어우러져 눈이 시렸다.

흰디 흰 산야. 하얀 능선 위로는 무서우리만치 새파란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었다.

의미심장한 미소로 배웅을 하는 선배를 뒤로 하고, 당직 차량을 부르겠다는 선배의 권유도 말리고서, 그녀와 나는 나란히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을 조심스러운 발자국으로 한 걸음씩 걸었다.

바람은 거의 없었으나 밤새 차갑게 식은 공기들이 폐부로 들어와 머릿속을 쩡 하니 일깨우고 먼 산 위로는 배고픈 산새들이 지저귀며 날았다.

사방에 내리 쪼이는 햇살에 눈이 부신 우리 둘은 말없이 손을 꼭 잡고 인적 없는 길을 걸었다.

너른 시골길 가득 우리의 눈 밟는 소리만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버스터미널은 어제 불시에 출발을 못한 면회객들로 만원이었다.

그녀의 귀성표를 끊고 버스를 기다리며 우리 둘은 아무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저 떨어질세라 손을 꼭 마주 잡은 채 아무 말 없이 사람들로 복작이는 터미널과 비좁은 터미널 밖의 눈 치우는 관경들을 고요히 목도할 뿐이었다.

이따금 서로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희미한 미소를 짓다 다시 고개를 돌리고,

그러다가 다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들이 꽤 길었다.

이윽고 그녀의 차례가 되어 그녀는 버스에 올랐다.


기온 차로 잔뜩 성에가 낀 버스 유리창 어딘가 그녀가 앉았으리라 짐작을 하는데 뒷좌석 차창에 조그맣게 하트가 그려졌다.

내 가슴에 들어온 작은 하트문양은 잔잔하게 가슴에 따스한 파문을 일으켰다.

내가 잘 보일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버스는 이내 우르릉 울부짖으며 병촌의 터미널을 떠나갔다.

나는 읍내 귀퉁이로 버스가 빠져나갈 때까지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내리쬐는 볕에 간밤 내린 눈들이 방울방울 건물 처마로 떨어져 내리던 날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잦았다.

봄에 이르기까지 하루가 멀다 눈이 내렸고 병촌의 일과는 눈을 치우는 것으로 시작하여 눈을 치우는 것으로 마감을 했음에도 도로는 늘 번들거리는 빙판이었다.

때로 우체국 차량조차 드나들기 어려울 정도로 눈이 내리기도 하고, 그렇게 이따금 세상과 단절되는 병촌마을은 눈 속에 파묻힌 섬 같았다.

긴 겨울이 곧 지나갈 거라 학수고대하던 어느 날 그녀로부터 오랜만에 편지가 왔다.

한동안 날씨 때문에 끊겼던 편지라서 나는 두근대는 가슴으로 편지를 받곤,

일부러 BOQ에 돌아가기 전 까지는 편지를 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이 작은 행복을 오래도록 누리고 싶었으니까.

잘 지냈나요. 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 이곳 도시에서 무슨 큰일이야 있겠습니까.

첫 면회를 가서 느꼈지만 그곳은 너무나 다른 세상 인 걸요.

서울로부터 불과 두 시간여 거리이지만 그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느껴집니다.

늘 긴장과 함께 오직 군인들만이 존재하는 세상 이란 참 생소하면서도 슬프기도 합니다.

제복을 입은 당신을 처음 마주했을 때, 조금 이질적이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들 보다 순수하고 자신의 일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있음을 느꼈었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알고자 했고, 그렇게 당신을 찾아가기도 하였었지요.

그곳에서의 당신은 밖에서 보는 당신과는 또 달랐었습니다.

내겐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지만 당신에겐 참 잘 아울려 보였어요.

아마도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 특유의 분위기 같은 것이겠지요.

당신의 순수함. 그리고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

나에 대한 당신의 마음,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과연 그러한 당신에게 좋은 짝이 될는지는 자신이 없군요.

나에게 그곳은 너무나 생소한 환경이고 특히 군인의 가족으로 전방을 떠돈다는 건 내겐 참 어려운 생각입니다.

그저 당신이 좋고, 자주 볼 수 없음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런 건 견디며 지낼 수 있다 생각해도, 이따금 친구들이 남자친구들과 함께 모이거나 할 때 늘 혼자여야 하는 내 모습 같은 것.

긴 밤 외로움이 몰려올 때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저 먼 전방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날들을 무수하게 견디어야 한다는 것.

내겐 참 가혹하고 힘든 일입니다.

물론 그 춥고 엄혹한 곳에서 나날을 보내는 당신에겐 너무 미안한 마음 이긴 하지만,

난 그저 아직 어리고 철없는 스물 중반의 계집아이 인 걸요.

당신이 좋다고 해서 그 삭막한 전방에서의 결혼생활을 견딜 만큼 강단 있는 내가 못됨을 자책하고, 다스리려 애써 보았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의 연속 들 이란 내겐 버겁습니다.

지난번 형수에게 들은 것처럼, 남편이 훈련을 나가면 한 달이라도 혼자 그 적막한 관사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그런 건 내겐 지나치게 무섭고 어려운 일이에요…….

당신과 손잡고 뛰어가던 황금들판의 눈부신 가을 햇살.

순백의 눈이 그득했던 들판에 단둘이 걷던 기억 들.

내겐 아름답고 소중 하지만 그 기억만으로 버텨내기엔 하루하루가 길기만 합니다.

당신을 향한 마음이 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기울어지기 전에 이만 접으려고 해요.

미안 하단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싫은 것 도, 내 마음이 애초부터 어떤 속셈을 가졌던 것도 아니니까요.

다만, 내가 당신과 함께 당신의 환경을 견디어 나갈 만큼 의지가 강하지 못함은

그저 제 탓일 따름입니다.

사랑했어요. 짧은 기간이지만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그 기억들을 나는 잊지 못할 겁니다.


겨울이 지나고 이른 봄이 왔다.

봄 이라곤 하지만 전선의 봄은 단지 잠시 산야의 색을 바꾸는 것 일 뿐이다.

겨울, 혹은 여름이 있을 뿐 봄과 가을은 잠시 흉내만 내다 스러지는 것이 병촌이다.

그 해 봄, 한 달여의 한미연합훈련을 나가서 낯선 진지에서 종일토록 훈련을 하게 된 것은 차라리 내겐 다행이었다.

현실적으로 나의 상황과 환경이 부담스러워 이별을 고하는 여인을 쫓아다니거나, 영화에서 보듯 그녀의 집 앞에서 버티거나 할 물리적인 시간이 내겐 없었다.

그렇다고 대문장가의 유려한 글로 그녀를 설득할 자신 또한 없었다.

분명한 건, 설사 그녀와 내가 서로에게 좋은 감정으로 연애를 이끌어간다 할지라도 서로가 함께 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현실이고,

내겐 그것이 꽤 오랜 시간이어야 했지만 그녀는 동갑이었기에 오래 기다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모든 걸 다 무시하고 그냥 되는대로 벼락치기처럼 결혼하고 살아가는 이 들도 주변엔 많았다.

그러나 내게는 그럴만한 배포 같은 게 없었다.

성인이었고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지만 나는 확실히 그녀보다는 어렸다.

세상사를 어느 정도 알고 스스로를 가늠하는 그녀에 비해 나는 그저 어린 고등학생처럼 연애감정에만 충실했을 뿐, 그 이후를 생각해 보진 않았었다.

이러지도, 저럴 수도 없는 감정의 질곡을 헤매던 내게 두 달여의 훈련준비와 한 달간의 야외기동훈련은 차라리 축복이었다.

눈 뜨면 정신없는 상황 들. 눈 감아도 수시로 닥치는 상황 들.

총탄이 오가지 않을 뿐 그보다 더 무서운 통제관들의 닦달 속에서 겨울의 자락이 가고, 어느새 봄도 스쳐 지나갔다.

훈련장에서 마주치는 선배는 내 공허한 눈길을 들여다보면서 이렇다 저렇다 묻진 않았다.

이미 내 표정 없어진 얼굴에서 모든 걸 알았다는 듯, 업무 외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선배의 그 말없는 배려가 고마웠다.

굳이 이렇다 저렇다 변명하거나 구구절절 말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으니.

어느 정도는 늘 생각하고 있었던 상황이랄까.

군에 뼈를 묻겠다는 신념 같은 것을 일찍부터 지니고 있었기에 그와 관련한 생각은 비록 구체적일 만큼 나잇대는 아니라도 무수히도 했었던 것 같다.

비극이라면 비극 일, 행여나 전쟁이 발발하는 즉시 군인 가족들은 모두 후방으로 가야 하고, 군인들은 전방 진지로 가야 하는, 실제라면 눈물바다가 될 비장한 현실.

나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현실.

그렇게 헤어지고 나면 다시 볼 기약은 둘 수 없다는 현실.

그런 것 들을 알기에 평생 독신을 고집하는 선배 장교들도 없진 않았었다.


‘연애’는 사내 이므로 할 수 있을 돼 ‘책임’ 질 수 없으므로 ‘가족’은 만들지 않는다는.

그렇게 이기적인 연애들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제법 있다.

만남과 동시에 결국은 헤어지리란 전제를 안고 가는.

그녀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들로 몇 달간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왔지만 눈을 뜨면 해야 할 훈련들이 가득하니 미친 듯 일을 하면서 잊고, 그러다 잠들면 꿈속에서 헤매다 깨고 가 반복 되었다.

봄이 끝나갈 무렵 모처럼 외박증이 나와서 아무 생각 없이 시외버스를 타고 춘천을 가게 되었다.

굳이 그곳에 지인이 있는 것도,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서울 보다는 거리가 가깝고, 병촌은 아니지만 군대의 기운? 들이 배어 있는 곳이라서 그나마 지나치게 거리감이 들진 않을 거란 막연한 생각에 이따금 간부들이 구경삼아 가곤 하는 곳이었다.

눈길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그저 의무처럼 창밖의 스쳐 지나는 움터오는 골짜기들을 더듬는 것.

누군가 톡톡 팔을 두드리는 서슬에 문득 고개를 돌렸다.

의식하지 못했었는데 어느 정류장에서부터 인지 옆 좌석에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작고 오목조목한 얼굴에 가만있어도 웃음기가 배어 나오는 듯 보이는 눈매.

난 무슨 일 인가 싶어서 눈만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실례라도?


“ 저기, 00 부대 맞죠? 000에 있는 부대요.”


아마도 내 군복에 붙은 사단표식과 가슴에 붙은 비표를 알아본 것 같았다.


“ 네. 맞습니다만……. 어떻게 아십니까?”


그녀는 안 그래도 웃는 것 같아 보이는 눈매를 더 크게 구부리면서 입을 연다.

당당이라도 까르르 소리가 들릴 것처럼 보이는 건강한 미소.


“ 제가 그 동네 살거든요. 물론 지금은 직장 때문에 춘천 나와 있지만요.

주말이라 집에 잠시 다녀오는 길에 아저씨 부대마크 보니까 반가워서요. 헤헷.”


장난꾸러기 같이 보이는 그녀는 묻지도 않은 말들을 조잘조잘한다.

춘천에 아는 곳이 있느냐, 거긴 왜 나가냐, 군대생활 힘들지 않냐, 난 춘천병원에 간호사로 근무 중이다, 000 동네 춥고 볼 것도 없어서 재미없겠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수다에 처음엔 정신이 없었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근래 몇 달간 누군가로부터, 훈련에 대한 말 말고 이렇게 오랫동안 관심 어린 말을 들어 본 일이 있었던가.

업무와 무관한 이야기들을 듣거나 해 본 기억도 없다.


한 시간에 이르는 버스길에서 내내 그녀는 무수히 많은 말을 했고, 나는 고개를 주억 거렸다.

그녀의 첫인상은 밝고 어린 누이동생처럼 잔잔히 미소를 머금게 하는 노란색이었다.

막 창밖에 움트고 있던 개나리처럼 활기 가득한.

춘천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그녀는 손을 흔들며 잘 가라고 하면서 어딘가로 뛰어갔다.

나는 잠시 차 안에서 뭔가에 홀린 것처럼 멍하니 낯 선 버스터미널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낯 선 도시에서의 낯 선 하룻밤.

나는 헤어짐의 상처가 덜 아물었던 탓 인지 알지 못할 거리들을 헤매며 호반을 서성였다.

어느 정도 지난 군생활로 지극히 익숙한 혼자만의 식사.

그리고 혼자만의 커피 한잔.

낯선 여관에 들어가 가방에 넣어 온 심상한 책을 읽는 심심한 밤.

그렇게 춘천에서의 첫 밤이 깊었다.


이른 아침 눈을 뜬 나는 창밖이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서슬에 창문을 열었다.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가 거리에 가득하게 차 있었다.

춘천이 호반의 도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군복을 입고 나선 거리는 온통 안개로 가득해서 허공에 손을 내밀어 움켜쥐면 주르륵하고 물이 배어 나올 것처럼 차가운 운무가 짙었다.

아침햇살이 강했을 것 같았건만 짙은 안개를 더 희부옇게 만들어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 수 없을 만큼 몽롱한 아침이었다.

천천히 길을 걷다 보면 뿌연 안갯속에서 문득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가 다시 안갯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거리에 가득한 안개 탓 인지 차량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안갯속을 거닐어 어제 봐둔 호반으로 걸음을 옮겼고 호수 위로 안개들이 연기처럼 몰려다는 것을 바라보며 내 마음속 깊이 서려있던 안개들을 끄집어내었다.

이윽고 해가 높이 솟아오르자 안개들은 서서히 걷혀가고 안개가 드리워져 있던 호수가 잔잔한 물결을 내보였다.

아침바람에 잔잔한 물결들이 일렁이며 햇살들이 물이랑에 부딪겨 멸치 떼처럼 반짝이는 윤슬을 만든다.

수개월의 시간을 지내고 나서야 나는 지난겨울의 추위보다 더 시리던 내 짧은 연애와 이별을 마주 할 수 있었다.

왜 그녀는 마지막 돌아가던 차창에 하트를 그렸던 것일까.

그러고 떠나가서 내가 보낸 연서에 그토록 냉정한 이별을 고했던 것일까.

나는 그녀가 내게 사랑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선배 관사에서의 그날 밤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보여주었으리라 생각하였는데.

어쩌면 떠나던 그날 아침의 마음이 차갑고 멀고 길었던 집으로 가는 길을 통해서 현실을 깨닫는 여로가 되었던 것일까.

아니라면 늘 현실에 마주하는 일상들에 나는 너무 멀리 생소한 곳에 있음이 문제 있었을까.

그 모든 걸 짐작할 수 없다 치더라도, 그녀의 일방적인 이별편지에 그저 아무 말 없이 따랐던 것이 문제였을까.

어떻게든 그녀의 집 앞이라도, 직장이라도 쫓아가서 영화처럼 부르짖어야 했던 것일까.


그러나 분명한 건, 나에겐 그럴 수 있는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는 것.

병사들도 그러하지만 군대를 업으로 삼은 간부라는 것도 보이지 않는 목줄을 매고 있는 것과 같아서 늘 부대를 중심으로 벗어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이유가 어떠하든 군인이란 늘 그런 것이다.

이성을 좇을 수 도 억지로 귀찮을 만큼 따라다녀 사랑을 얻어내는 그런 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별에 승복할 수 없는 병사들은 결국 자살 혹은 탈영 같은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군인 이란 직업을 스스로 선택 한 이상 감수해야 할 숙명 같은 것.

그래서 많은 선배들이 이른바 ‘선’ 같은 고색창연한 적령기 남녀를 짝 지워주는 형태로 대부분 결혼에 이르곤 하는 것 일지도.

사랑이란 조건도 환경도 없이 싹틀 수 있겠지만 그것이 현실적인 결혼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은 또 다른 것이다.

애초에 서로가 모종의 ‘각오’를 하고 시작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렇게 처음부터 나름의 각오를 하고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쩌면 그와 같은 갈등과 이별은 감수해야 하는 것 일게다.

그런 자조를 통해 내 이별을 스스로 납득시키면서 나는 내 젊디 젊은 한 시절이 그렇게 물러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점점 옅어지는 안갯속 파문이 일렁이는 호반을 바라보며 나는,

내 가슴에 가득하던 엷은 슬픔 같은 것 들을 그 물결에 띄웠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에 호숫가 가을에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 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에 호숫가 가을에 공원


- 박인환 -


부대로 복귀한 내겐 봄 진지보수공사라는 막노동 같은 일상이 주어졌다.

병사들과 더불어 매일 흙을 나르고 쌓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비록 춘천에서의 제한된 시간을 통해 마음을 다스렸다고는 해도,

이별의 잔해는 여전히 가슴 여기저기에 박혀 있었기에 차라리 힘든 일과가 더 반가웠다.

군대란 그런 것이다.

감정조차도 딱 주어진 시간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 감정에 얽매여 휩쓸리다간 많은 생명이 오갈 수 있는 곳 이므로.

적어도 부대 내 에서의 내 감정은 내 것이 아닌 거다.

작업 지시를 내리고 부대 상황실에서 일지 정리를 하고 있던 내게 부대 입구 위병초소로부터 전화가 왔다.

위병중사가 직접 전화를 했기에 무슨 일 인가 싶었다.


“통일~ 작전장교 님한테 면회가 왔습니다.”


장난스러운 녀석의 말투에 심기가 살짝 꼬인 나는 불퉁맞게 대답을 했다.


“ 무슨 면회? 나 면회 올 사람 없는데?”

“ 아, 여동생 분이 면회 오셨는데 말입니다. 그럼 그냥 가시라고 전합니까?”

“ 여동생?”


내게 여동생이라 할 만한 사람이란 사촌동생뿐이지만 그 애는 내가 어디 근무하는지 조차 알지도 못하기도 하고, 절대 면회 올만 한 애도 아닌데?

나는 잠시 부대 입구 면회실에 데려다주라고 한 후 작전과장에게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곤 면회소로 내려갔다.

작전과장은 씩 웃으며 ‘잘해보라고’ 뒤통수에 한마디 날린다.

‘뭘? 잘해볼게 대체 뭔데?’

궁금증이 났지만 어차피 십분 후면 알게 될 터.

내가 면회소에 들어서기 전에 면회소 밖에 서 있는 그녀가 보였다.

춘천행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그녀 가.


“오빠! 잘 있었어요?”

오빠? 그리 호칭을 붙일 만큼 우리가 잘 알던 사이였던가?

나는 그녀의 이름조차 알고 있지 못한데?

그녀는 손을 흔들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조금 당황한 나는 그녀를 보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 아니. 여긴 어떻게. 어,……. 근데 내 이름은 어떻게…….”

그녀가 작은 손을 내밀어 내 가슴을 쿡 가볍게 찔렀다.

“ 여기 이름 있잖아요. 이곳은 내 고향 이라니까요? 이 부대가 어디 있는지는 오빠 보다 더 이전부터 알고 있었을 걸요?”

할 말이 없어진 나는 멍청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 여기 있을 거예요? 우리 읍내 나가요!”

그녀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깡충거리며 아이 같은 걸음으로 위병소를 지나친다.

어, 어 하는 사이에 그녀는 위병소 앞 신작로를 뛰듯이 걸어가고 있다.

머쓱해진 내가 위병소를 지나 천천히 걸어가는 사이 위병중사가 ‘통~일’ 하면서 장난스레 경례를 하고, 위병초소에 서 있던 녀석들이 장난스럽게 큰 목소리로 받들어 총을 하며 경례구호를 복창한다.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녀석들에게 들킬까 싶어 서둘러 그녀를 쫓아 걸어갔다.


그녀는 혼자 신이 난 듯 길섶에 핀 개나리를 어루만지기도 하고 철쭉꽃을 따서 손에 쥐고 흔들기도 하면서 갈지자로 신작로를 뛰어다닌다.

나는 그녀의 아이 같은 행동에 슬며시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실로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짧디. 짧은 전방의 봄기운이 한창 이었다.

짧은 봄만큼 이나 짧은 그녀의 미니스커트가 나풀거렸다.

그녀는 봄소풍을 나온 유치원생처럼 팔짝대며 부대 앞 신작로를 뛰다시피 하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혀를 날름 하며 그녀가 입을 연다.


“오빠~ 뭘 그렇게 쳐다봐요. 설마 내 이쁜 다리 훔쳐본 거 아니죠? ”

정곡을 찔린 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아무 말을 못 했다.

“ 엄마? 이 오빠 농담이었는데 진짜로 그랬나 봐? 엉큼해요~ ”

치약거품을 입에 문 것처럼 하얗게 웃으며 그녀가 짐짓 짧은 치맛단을 움켜쥐는 시늉을 하며 다시금 팔짝거리며 뛴다.

나는 무슨 잘못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어정대는 걸음으로 그녀를 따라갔다.

뜻하지 않은 면회를 다녀 간 이후 일주일이 흘렀다.

전방 관측소 순회가 계획되어 있어서 겨울 이후 처음으로 관측소에 올랐다.

여전히 철책에서는 양방이 스피커를 동원하여 온갖 노래와 선전방송으로 전투를 치르고,

그러거나 말거나 산야는 군데군데 이른 봄꽃과 지난해 말라죽은 덤불들이 수북하여 무슨 사바나의 건기처럼 보였다.

그곳에 봄이면 으레 하게 되는 ‘화공작전’으로 여기저기 연기와 잔불이 피어오르면서 이따금 지뢰 터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전입 초기 처음에는 놀라기도 했었으나 매년 반복되는 일이라 이젠 새롭지도 않았다.


경계를 서고 있던 녀석들이 흘깃흘깃 나를 쳐다본다.

“왜,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냐? ”

“ 아닙니다! 작전장교님 웃으시는 거 처음 봐서 말입니다. ”

응? 내가 웃었다고?


아. 겨울의 이별로 얼어붙었던 내 마음도 나도 모르게 녹은 모양이구나.

이 짧은 봄볕에. 산과 들에 피어나는 철쭉처럼, 메마른 가지에 돋아난 개나리처럼.

그렇게 봄과 함께 그녀는 내게로 왔다.

무슨 찡하게 가슴 울리는 사랑 같은 그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마치 길가에 피어난 봄꽃처럼 맑고 밝은 모습의 그녀가 싫지 않았다.

아직은 가슴에 베어진 상처가 덜 아물었을지라도 메마르고 거친 일상에서

매주 집에 올 때마다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작은 행복이었다.

때로는 주말근무라 어쩔 수 없이 면회소에서 잠시 얼굴을 일별 할 뿐이었지만,

그녀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듯이 스스럼없이 나를 찾았고 나도 그게 기다려졌다.

근무가 없는 주말이면 그녀를 따라 동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당연하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곳에서 자란 그녀는 내가 알 수 없던 곳들을 많이 알고 있었고 그런 곳 들은 대개 그녀의 어린 날 추억들로 기억되는 곳이었다.

쉴 새 없이 그녀는 자신의 어린 날 기억들을 내게 말해 주었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때로는 내가 외박 증을 얻어 춘천에 나가곤 했다.

그러면 또 그녀는 그녀가 잘 알고 있는 춘천의 곳곳을 내 손을 이끌고 돌아다니곤 했다.

내가 그녀의 밝음에 서서히 젖어들면서도 한발 더 깊이 다가서지 못한 이유는 있었다.


군 간부로서의 한계.

지난 짧디. 짧은 연애를 통해 자각하게 된 나의 한계 때문이랄까.

이곳에서의 군무기간이 곧 끝날 것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의무적으로 돌아오는 간부교육.

그렇게 되면 나는 머나먼 남쪽 광주로 가서 일 년 가까이 교육을 받을 것이었다.

물리적으로도 상당한 거리이기도 하고,

위수지역 밖에서 군인 신분으로 다시 위수 지역을 드나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현재의 임지, 그리고 춘천. 두 군데다 후방에서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는 위수지역이었으니까.

그러다 보면 그녀와의 연애 아닌 연애가 유지될 수 있을지 미리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외박 증을 얻어 춘천에서 토요일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예외 없이 그녀는 터미널로 마중을 왔고, 이른 여름으로 날이 더워지던 때였다.

그녀와 나는 춘천의 중앙로를 거닐고, 커피를 마시고, 호반으로 산책을 나가고 그랬었다.

호반 주변에서 식사를 하고 술 한 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몇 잔 술에 볼이 발그레 해 진 그녀가 턱을 괴고 식탁 건너편에서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늘 재잘대던 입술을 꼭 다문 채로.

나는 감자기 조용해진 그녀가 의아했지만 달리 물어보진 않았다.

그녀가 문득 결심한 사람처럼 입을 연다.


“ 근데 오빠. 나 물어볼 게 있어요.”

“ 뭔데요?”

“ 오빠. 나 좋아해요?”


나는 그녀의 느닷없는 질문에 잠시 머리가 멍청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건가. 물론 좋아는 하는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나와서 만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녀가 그것을 묻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 그녀는 내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것 인가.

사랑의 고백 같은 것으로 내 맘을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사실 그런 것에 익숙하진 못하다.

그리고 내 입으로 뱉어낸 말에 대한 책임. 그런 것이 내겐 가볍지 않다.

나는 잠시 말없이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피, 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다가 잠시 음식점 밖 거리를 바라본다.

이윽고 그녀가 다시 입술을 깨물다가 입을 연다.


“근데, 오빠는 왜 나한테 키스 한번 안 해요? 그리고 나하고 자고 싶지 않아요? 보통 남자들은 애인 생기면 다 그러고 싶어 한다던데.”


처음부터 그랬지만 이 돌발적인 아가씨는 나를 이따금 당황스럽게 한다.

나는 그녀의 난데없는 불평 아닌 불평에 할 말을 잠시 잃었다.

귀에서 웽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그녀는 말을 던지다시피 해놓고는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변해서 고개를 외면하고 있다.

나는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이 아가씨의 토라진 마음과 본인 스스로도 민망하고 난처한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지 골몰했다.

한참을 그리 헤매다가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이랬다.

“ 저기 그럼……. 오늘 오빠랑 같이 잘래?”


그녀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말을 꺼내고도 당황한 나 역시 얼굴이 벌겋게 상기가 되었다.

귀에서 한바탕 총을 쏜 것처럼 웽 소리가 또 났다.

갑자기 그녀가 식탁 위에 놓인 내 손등을 찰싹 때렸다.

그리고 다시 창밖으로 얼굴을 돌린 그녀의 눈가에 조그만 이슬이 맺혀있다.

이건 또 뭔가.

나는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 것 인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다.

우리는 어색하고 머쓱한 모양새로 계산을 치르고 조용히 거리로 나섰다.

춘천이 중소도시라곤 해도 역시나 군사지역에 가까운 도시라, 대부분의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아직 한낮의 온기가 남은 도시의 거리는 축축하면서도 따스했고 기온차로 인해 스멀스멀 안개들이 차오르고 있었다.

점점 짙어져 가는 안개 사이로 가로등들이 비죽이 밝혀 있어서 나는 뜬금없이 런던이라는 도시를 그린 소설들에 나오던 가스등이 아마 저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녀가 어느새 내 팔짱을 끼고 달라붙다시피 걷고 있었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녀의 가슴이 내 팔꿈치에 물컹하니 느껴져서 나는 어둠 속에서도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것은 단지 술기운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목적지도 없이 걷다 보니 내가 예약을 해 놓은 여관 앞이었다.

점점 주변의 길들을 지워가는 밤안개 속에서 여관은 특유의 음울한 유혹 같은 기운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있는 그녀를 슬며시 돌아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비록 아무 말은 없었을지라도 내 팔을 붙잡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고 살짝 떨리는 것 같은 느낌.

나도 아무 말 없이 여관 문을 열고 계단을 올랐다.

그녀는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깡충거리는 걸음 한번 없이 묵묵히 내 팔짱에 매달려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병촌의 여관들은 으레 그러하듯 춘천이라는 곳은 도시였음에도 분위기가 그리 다르진 않다.

곰팡내 혹은 들큼한 방향제 냄새가 가득한 방.

약간의 축축함 같은 느낌.

그리고 민망할 정도로 방에서 소리가 다 들리는 화장실.

탄력은 없이 뽀득 거리는 침대 시트 아래에 깔린 비닐 커버.

들어와서 앉을 곳 이라곤 침대 말곤 없었다.

그리고 생수병 두 개. 커피믹스와 현미녹차 두 팩. 엉성한 커피포트 하나와 모서리 깨어진 잔 두 개. 그 옆에 얌전히 놓인 콘돔 한 박스. 일회용 칫솔 두 세트와 면도기.

평소 그냥 들어와 잠을 잘 때는 의식하지 않던 것들이 생생하게 현실감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방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말 한마디를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생소한 방안 풍경들을 흘깃흘깃 곁눈으로 보고 있음을 나는 알았다.

아예 등커버도 없는 형광등은 이 모든 광경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어서 나는 조금 당황하여 천정 등을 껐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취침 등이 들어온다.

그리고 여관의 취침등 이란 으레 그렇듯 푸줏간 등처럼 진한 핑크색 조명이다.


난감하다.

의도치 않게 방안은 묘하게 야한 분위기의 색으로 물들었다.

취침등이 켜지자 그녀가 움찔하는 게 느껴진다.

나는 작은 소리로 ‘그냥 불을 켤까’라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멀리 밖에서 드문 차 한 대가 지나가는 소리가 울려온다.

밤이 깊어가는 모양이다.


봄 냇가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가 있어

어쩌면 그 도시는 늘 봄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지

길고 긴 강원도의 겨우살이를 견뎌내고

비로소 찾아오는 짧은 봄이 그리워서

누군가 봄 냇가라고 이름을 붙인 게다

땅만큼 물이 많은 봄 냇가에는

봄이 오면 늘 안개가 머무르곤 하지

사람들은 기나 긴 겨울을 벗어나는 미로를

뿌연 안갯속에서 찾아가야만 해

그렇게 한 치 앞 가늠 안 될 안개를 헤쳐가야

문득 물결 일렁이는 냇가에 닿는 것을

그곳에서는 사랑도 안개처럼 그렇지

분명한 길이 보이지도 않고

때로는 길을 아예 잃어버리기도 해서

꼭 붙잡고 가지 않으면 서로를 잃게 돼

잃고 싶지 않으면 두 손 꼭 마주 잡고

한걸음 걸어야 해

안개 그득한 춘천의 밤은

늘 축축한 연인의 손길처럼

차갑게 식은 내 뺨을 어루만지네


춘천을 떠나 다시 전방으로 돌아오는 길은 하루 차이였음에도 봄볕이 완연하였다.

전선의 봄은 늘 잔설과 함께 다가왔다가 순식간에 신록으로 뒤덮이는 법이다.

나는 창밖을 스쳐 지나는 풍경들이 유달리 살갑게 느껴졌다.

버스터미널에서 그녀는 깡충거리며 어린 소녀처럼 손을 흔들어 댔다.

나 역시 그녀에게 마주 손을 흔들었고 버스가 터미널을 벗어나기까지 그녀는 버스 옆자리 다른 승객들이 킥킥거릴 만큼 격렬하게 손을 흔들었다.

이른 여름이 성큼 다가 온 춘천의 볕은 눈부시게 밝았다.

먼지 한 점 없는 공기에 이른 아침부터 깔려있던 안개가 걷히고 나니 그야말로 눈이 시려서 뜨지 못할 만큼 맑은 햇볕이 온 거리와 호반 가득 내리쬐고 있었다.

한 시간여를 달려 다시 부대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의 따스하고 촉촉했던 입술과 낮게 떨리던 속눈썹들이 손길에 느껴졌다.

부대에 복귀 한 그 주에 대대 주임 인사계가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자고 초대했다.

그와는 이미 함께 근무해 본 일이 있어서 친근한 관계이기도 했다.

나이로야 한참 큰 형님 뻘이 되는 사이이지만 계급 상으로는 엄연히 내가 상관 인 관계.


그렇지만 부대 내 장교와 하사관의 관계란 공생의 관계이기도 하고, 경험에 있어서나 전문성에 있어서나 그들이 훨씬 실제적인 부분들을 차지하고 있어서 진정한 군대의 주인은 하사관 이란 말이 있을 정도 다.

장교는 그저 거쳐 가는 인물 일 뿐.

그 부대의 전통과 색을 지켜가는 건 분명 하사관 들이다.

그래서 나는 그와도 공적인 관계 이외에도 친근하게 지내기도 하고, 가족과 부대행사로 만난 일도 있어서 나름 좋은 선후배 사이 같은 그런 관계이기도 했다.

하사관 들은 대개 관사가 아닌 읍내 주택에 거주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주임 인사계도 그러했다.

한 손에 아이들 선물로 케이크를 사들고 찾은 주임인사계의 집 현관에는 잔치가 있는지 신발들이 제법 많았다.

주임인사계와 그 부인이 나서서 반겨주었고 나는 인사를 하곤 선물을 건네었다.

그리고 이미 차려져 있던 밥상으로 안내를 하는데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밥그릇 세 개가 가지런히 놓였고 제법 푸짐하게 반찬들이 차려져 있었다.

나는 혹시 주임인사계 생일 인가 싶어서 조금 당황했다.

사전에 언질이라도 줄 것이지…….

조금 어색하게 앉은 내게 별 행사 아니라며 주임인사계는 서둘러 식사를 권했다.

둘이 마주 앉아 한참 식사를 하던 와중에 누군가가 주임인사계 옆 비어있던 밥공기 앞에 앉았다.

향수 냄새가 슬쩍 나서 나는 밥상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아가씨가 배시시 웃으며 그 자리에 앉아 있고,

주임인사계는 조금 당황스러워하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고 사모님은 주방에서 특별히 할 것 도 없는 손을 비벼가며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어리둥절해져서 주임인사계에게 물었다.


“ 어. 누구신지?”


주임인사계가 이내 허둥대며 털어놓은 전말은 이랬다.

지난번 부대행사 때 사모님이 나를 좋게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사모에겐 아직 시집 안 간 은행에 다니는 여동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주임인사계를 통해 내게 연결을 해달라고 말을 했었지만, 인사계는 사적인 관계 외에도 부대 내 에서는 공적 관계가 있다 보니 차마 내게 말을 꺼내지 못했고 미루다가,

사모의 등쌀에 느닷없는 저녁식사 요청을 하게 되었고 동시에 지방으로부터 동생을 불렀다고 한다. 이른바 맞선 비슷한 자리를 내 생각을 묻지도 않고 조성을 하게 된 것이었다.

순간 나는 당황하였으며 일편 불쾌하기도 하고, 사전에 내게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던 인사계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인사계는 내 굳은 표정을 보고 당황한 듯 횡설수설하면서 아니 뭐 집사람이 그렇고, 처제가 굉장히 성실하고, 착하고, 두루두루 선남선녀 아니겠냐는 식으로 말을 둘러댄다.

모래를 씹는 것 같은 식사자리가 끝나고 나는 망부석처럼 자리에 앉아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인사계 역시 좌불안석처럼 보였고.

사모가 도저히 안 되겠던지 나와 동생을 일으켜 세워 젊은 사람끼리 읍내에서 커피라도 마시라며 등 떠밀다시피 하여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읍내에 있는 인사계의 집이라 읍에 있는 커피숍 까지는 먼 거리는 아니었다.

나는 어두워진 시골길을 걸으며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방금 먹은 밥이 곧 체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뒤 따라오던 여인이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저기……. 이 중위님, 담배가 몸에 많이 해롭데요. 군인이시니 담배를 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는 일순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말없이 커피숍 앞으로 빠르게 걸음을 걸었다.

커피숍에 앉아 마주 본 그녀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매우 ‘단아’했다.

딱히 흠잡을 데 없어 보이는 용모. 그리고 낮게 말하는 차분한 음성.

아마도 직업적인 탓도 있었으리라.

아무 말 없이 커피만 마시고 있는 내게 그녀는 차분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했다.

은행에서 오래 일한 편이라 간부급이며, 집안에 군 고위 장성도 있고 필요하다면 보직이나 임지를 원하는 곳으로 발령받게 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고.

실은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언니가 함께 와서 방문 틈으로 나를 선 보셨다고.

아버지 어머니는 맘에 들어하신 것 같다고.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몹시 짜증과 화가 치밀었지만, 인사계의 입장을 고려해서 가능한 차분한 어조로 말을 꺼내려 애썼다.

“ 저 죄송한데. 저는 지금 사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앞뒤 없는 내 첫마디가 예의가 없긴 하였으나, 그녀 또한 사전에 내게 양해를 구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에 개의치 않았다.

인사계 입장을 고려한 내 의도와는 달리 나도 모르게 내 말투는 딱딱하게 나온 것 같았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이내 아무런 일 없다는 듯 은행원스러운 말투로 재차 입을 열었다.


“ 아니, 뭐 그거야 총각인데 그러실 수 있죠.

그런데 잘은 모르지만 결혼 이런 걸 생각하신 건 아니지 않을까요?

전 결혼을 생각하고 이곳까지 온 거구요. 이 중위님은 군 생활을 장기적으로 하실 거라고 들었어요.

저는 이 중위님 군 생활에 도움이 될 것 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결혼은, 특히 직업군인의 결혼은 혼자만의 의지로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나요?

저는 형부도 그렇지만 집안 분들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고, 군인가족 으로써의 생활을 잘할 자신도 있고요.”


나는 젊은 혈기 때문에라도 그녀의 ‘집안 내력’에 짜증이 왈칵 솟았다.

마치 무슨 종마 고르듯 몰래 나를 지켜보았다는 그녀의 부모님에게도 그랬고 내 의사나 상황과는 전혀 무관하게 혼자 이미 준비된 군인의 아내처럼 구는 그녀가 못마땅했다.

더 이상 예의 같은 게 무색해진 나는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 뭐 저를 초면에 그렇게 좋게 봐주셨다면 감사하긴 합니다.

그래도 저를 잘 모르시기도 하고, 아직 나는 결혼에 대한 마음의 준비 같은 게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사귀는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닌 듯합니다.

제가 굳이 부탁했던 일도 아니고. 여기까지 오시게 돼서 죄송하긴 하지만 없었던 걸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커피숍에서 나와 그녀를 어찌 보내야 하나 망설여졌다.

아무리 감정이 상했어도 이곳은 전방부대의 읍내. 그리고 어두운 밤.

주임인사계의 집이 보이는 길목까지 그녀를 배웅해주고 나서 나는 사무적으로 거수경례를 했다. 잘 들어가시라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집 방향으로 걷는 듯하더니 돌아서서 한마디를 하고 다시 걸어갔다.


“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중위 님 ”


아 이런.

뜬금없던 그날의 맞선 이후로 나는 인사계를 만나도 서먹하기만 했다.

서로가 그날 저녁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으며, 더 이상 아무런 변화는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그런데 그 주말, 매주 빠짐없이 면회를 오던 그녀로부터 연락이 뚝 끊겼다.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하여 그녀의 직장, 병원으로 전화를 해 보았지만 주말 외박을 나갔다는 말만 듣고 아무 전언 같은 건 없었다.

나는 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무 연락 없이 면회를 오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더구나 그녀의 집이 부대 근처 동네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어딘지는 몰랐다.

문득 나 자신이 그녀에게 꽤나 무심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묻지 않았고, 그녀 또한 굳이 말하진 않았기에 그녀의 직장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고,

통화를 이어가던 관계이다 보니 달리 연락할 길은 요원했다.

게다가 그녀 자신 이외에 알고 지낸 지인 같은 것 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그녀가 꽤나 적극적으로 다가왔었기에 그녀가 내게 연락을 하고 찾아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라는 건 제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다.

그 주말은 내겐 길고도 오랜 기다림이었다.


한창 볕이 긴 여름이었다.

제법 더위가 몰려온 BOQ 안에서 나는 위병소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 무엇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이럴 때 기다리는 것 외에 무엇도 할 수 없는 내 입장 이란 게 거추장스러워졌다.


공교롭게도 월요일 출근을 하자마자 인사장교가 호출을 했다.

장교 보수교육 전출 명령이 내려왔다고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올 것이 온 것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하필 지금 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출 일자는 가을 초입.

그리고 곧 부대의 유격훈련 일정이 이 주일간 잡혀 있었다.

나는 그녀의 직장으로 전화를 여러 차례 했지만 계속 업무 중 이라거나, 부재중이라는 소식뿐이었다.

일반 민간인이 부대로 전화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BOQ에 일반전화를 놓는 것 또한 불가하였기에 그녀가 내게 연락을 하는 것은 편지 이외에는 불가능했다.

하물며 내가 그녀에게 연락할 수 있는 수단도 드문드문 고르지 않게 이어지는 편지와 내가 외부 공중전화로 그녀의 직장에 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전방지역 초소에서 적과의 총격전이 발생하여 전 부대원이 외출외박 금지와 비상대기태세가 발령된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찾아오곤 하던 것들이 이젠 막연한 기다림이 되어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 들 이라곤 고작 이따금 읍내로 나가 공중전화를 붙들거나 편지로 무슨 일이 있는지, 연락이 안 된다는 말을 늘어놓는 것뿐이었다.

편지란 감정을 충실하게 전달할 수 도 있긴 하지만, 그 당시의 생각들은 일주일 가까운 집배시간을 통해서 어느 정도 희석이 되곤 한다.

당시의 절박감 혹은 그리움은 시간이 흐르면 그저 한 구절 시어처럼 아름답게 채색이 되어 버리듯.

그렇게 그녀로부터의 연락이 느닷없이 단절된 여름 끝 무렵을 이 주간 동안 이어진 유격훈련과 행군으로 산속에서 오롯이 보냈다.

그리고 하룻밤 낮을 꼬박 새워 걸어온 부대에는 그녀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편지 받고 전화 왔더라는 소식도 들었어요.

처음 오빠를 찾아 면회 갈 때는 장난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았지요.

어릴 때부터 민간인 보다 군인을 더 많이 보고 자란 탓에 낯설지도 궁금한 것도 아니었고요.

단지 뭔가 상처 입은 사람처럼 보여서 위로해 주고 싶었달 까요.

그러다 몇 번 만남이 지속되면서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어딘지 내게 더 다가오려 보이지 않아 보여서 갑갑도 했고요.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건지 의아하기도 하고요.

그랬었어요…….

신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시간을 두고 싶었지요.

우연히 내가 오빠를 사귄다는 걸 알고 있던 동네친구로부터 오빠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말을 들었죠.

뭐 내가 늘 그곳 가까이 있는 게 아니란 자격지심에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뭔가 속은 기분에 한참 우울 했네요.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섣부르게 생각한 건가 란 생각도 해요.

하지만 오빠의 편지글 어디에고 그 이야기는 없었고, 난 생각했어요.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이렇게 내가 마음앓이 같은 걸 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라면 또 그대로, 내가 앞으로 서로 보기 어려운 시간들이 있을 때 믿음 신뢰 같은 것 없이 오빠를 기다리고 생각하는 게 맞는 건지.

매인 몸 이란 거 알지만 그토록 궁금하다면 춘천에 무작정이라도 찾아올 순 없었던 건지.

내가 너무 빨리 너무 쉽게 오빠와 가까워진 게 문제였던 건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서운함과 억울함이 커서 만나고 싶지 않아요.

내게 맘 쓰지 말고 근무 잘하세요.....


그녀로부터의 이별편지 다음 날, 인사계의 처제로부터 편지가 왔다.

나는 굳이 그 편지를 열고 싶지 않아 반송을 했다.

전출명령서는 체납고지서처럼 지체 없이 내게 송달이 되었고 나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그 가을의 초입에 묵묵히 부대를 떠나왔다.

달리 변명도 무엇도 하진 않았다.

적어도 그녀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은 사실이었으니.

비록 그것이 내 의도와는 무관한 일이라곤 해도 나 역시 그녀에 대해 어떤 장래를 꿈꾸는 무엇도 비치거나 보여준 일이 없으며 나의 미래 또한 불투명 그 자체였으니.

어쩌면, 보통의 사회생활이었다면 붙들고 사정을 하거나 스스로에 대한 변호를 하거나 뭐라도 했을지 모르지만, 나 또한 보이지 않는 끈에 매인 몸 인 데다가 안 보이는 벽이 가로막힌 입장이기도 하였으니까.

더플 백을 어깨에 메고 오른 시외버스 창밖으로 갈색으로 변해가는 산야가 보였다.


그때부터였을까.

가을의 낙엽이란 늘 내겐 나무가 녹슬어 간다고 느끼게 된 것 은.

길게 가로누운 가을볕이 굽이진 산자락 사이로 듬성듬성 놓인 밭뙈기 위로 비쳤다.

초추의 양광. 병든 햇살처럼 창백한 볕조각들이 노쇠해 가는 산야를 덮은 정경을 바라보며 여름초입에 보았던 푸르름은 어디에고 자취가 없고 내 마음도 그렇게 점점 녹슬었다.

분명 사회적인 나이가 아주 많이 든 것 도 아니건만 모든 연애가 결혼과 직결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현실적인 입장들이 버겁게 느껴졌다.

문득 내 청춘이 이 초라한 가을볕처럼,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일상의 굴레 속으로 빠져 들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삼 년여 동안 몹시도 춥거나 갈증에 시달리거나 하며 보낸 산과 들.

그동안의 짧디 짧은 두 번의 연애와 두 번의 이별.

딱히 치열하지도 못했고 치열할 수 도 없었던 내 젊은 한 시절의 파편 들.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나는 남으로 달려 내려갔다.

잘 있으시오. 삭막한 산하 여. 행복하시오. 내 사랑.

푸른 수의


곧 죽어 넘어갈 것 같은 사랑을 해 보았느냐

난 그러하지 못하였다네

가슴 에이는 이별도 등에 짊어진 군장에 넣고

거친 산악을 굳은 발로 짓쳐 넘어갈 뿐

가슴 시린 그리움이 눈밭에 엎드린 육신 같으랴

버려진 보고픔이 간절할 때면 로프를 타지

아이 패스 마운틴

아이 러브 링크 로프

이별의 눈물 같은 건 수통에 넣고

날카로운 슬픔 따위 칼바위에 베어내지

갑갑한 생각이 솟아오면 표적을 보라

솟아나는 아픔을 정조준 사격

그녀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점프를 해

푸른 창공을 박차고 한걸음 또 한걸음

정 못 견딜 양 이면 능선을 뛰어라

숨이 넘어갈 듯 뛰다 보면

조국의 산하가 너를 부르잖아

내 조국 내 겨레

네 몸 바쳐 지킬 나의 영토 여



광주에서의 교육기간은 무척이나 나른했다.

늘 총성과 포성, 우레 같은 전차 소리에 익숙하던 내게 비록 군복을 입고 있을지라도 군인보다는 민간인이 많은 곳에서의 생활,

그리고 대학생처럼 자취방 생활을 하며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하는 일과들은 생소하다 못해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하루 나절 이면 갈 수 있는 곳에서 벌어지던 모든 긴장들이 이곳에서는 과거지사에 불과했다.

일 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백 명 가까운 동기들과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고 그러다 보니 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

전선은 멀고 먼 옛날 얘기였다.

본격적으로 학생 코스프레를 하기로 한 것 인지 몇몇 녀석들은 주말마다 단체 미팅에 빠져있고, 일찌감치 장가를 가 버린 녀석들은 알량한 급여로 처자식 먹여 살리기에 바빴다.

셈이 빠르거나 자신의 앞날에 계획이 분명하던 녀석들은 모처럼 후방에서 근무한다는 이점을 최대한 살려 자신의 반려를 물색하려고 분주했다.

그 기간 동안 최대한 결혼을 서둘러야 한다고.

느긋하던 세월은 쏜살 같이 빨라서 어어 하는 사이 일 년이 지나 버리고 수료를 하게 될 때쯤, 각자의 후속 근무지 발령이 내려왔다.

모두가 조금은 기대 조금은 불안감을 가지고 자신이 몇 년간 앞으로 몸담을 곳이 어딘지 궁금해했다.

발표가 난 후 누군가는 절망하고 누군가는 환호했으며 누군가는 반응도 없었다.


나는 세 번째 부류였다.

지난번 중부전선에 이어 이번에는 동부전선이었다.

어차피 누군가 도시에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면 상관없었다.

그것이 아주 머나먼 산골짜기 임지라고 해도.

정식으로 근무하기 이전에 각자의 임지에서 생활할 숙소를 해결해야 했기에 일주일 이란 시간이 주어졌다.

발령 근무지로 가서 관사를 구하든 자취방을 구하든 BOQ를 가든 해야 할 터였다.

기혼자가 아닌 이상 동부전선에서 관사를 구하긴 하늘의 별 따기라고도 듣고, BOQ는 더더욱 어려울 거라고 했다.

서부 나 중부 전선에 포진한 부대들에 비해 더 열악한 환경 이라면서.

나 역시 새로 발령받은 임지를 향해 떠났다.

선배들로부터 물어물어 찾아가는 곳.

그리고 그 중간 기착지는 춘천이었다.

나는 문득 일 년 전 이별편지를 전한 그녀와,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났다.

일 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그 시간.

그녀는 많이 아팠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생겼을까.

나는 그때 많이 아팠던가.

묘하게도 임지에서의 슬프거나 아픈 기억들은 그 임지를 떠나는 순간 그곳에 묻어버리게 된다.

기쁘거나 즐거웠던 기억들도 모두.

춘천을 향한 먼 고속버스 길에서 나는 봉인되었던 아픔들이 스멀스멀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북으로.

올라가면 갈 수 록 이른 가을임에도 전방이 가까워짐에 따라 익숙했었던 거칠고 메마른 산야들이 우뚝우뚝 다가왔다.

나를 잊지 말아요

그대 나를 잊었나요

단지 젊은 날 한순간의 기억으로

가을 잎새 하나 고이 주워 책갈피에 담듯

그렇게 나를 담아 두었나요

어느 겨울밤 먼지 묵은 책을 꺼내다

문득 갈피 속 지난가을의 흔적

고갯짓 한번 갸웃하고 넘어가는

그 허허로운 추억의 파편

그대를 위해 손을 내밀지 못한

내 가난한 마음 알고 있었나요

가시밭 길 함께 걷자 할 수 없어

그냥 웃으며 마음으로 흘린 눈물

그대 알고 있었나요

내 기억의 작은 배낭 속

그대의 말 한마디 고운 숨결

꽁꽁 싸매어 넣어지고 가는 걸


버스가 도착한 춘천고속버스 터미널은 일 년여 전 모습 그대로였다.

가을 초입에 들어서서 그런지 여전히 볕은 길게 드리워져있고 터미널 주변에는 갈색 가로수 낙엽들이 유치원 아이들처럼 떼를 지어 이리저리 수선대며 몰려다녔다.

다시 임지로 가기 위해 갈아 탈 버스노선을 찾아 이리저리 걸어가던 중간.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일 년여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터미널 한구석에 서 있었다.

베이지색 하프코트. 단발에 가까운 앙증맞은 헤어스타일.

그리고 거의 화장을 하지 않아 소녀처럼 보이는 복숭아빛 뺨.

난 걸음을 멈추고 서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일 년 전으로 고스란히 역행을 한 것 같았다.

나는 그 일대에서는 보기 드문 정복을 입고 있어서 군인들이 버글거리는 터미널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였다.

게다가 정복에 거추장스럽게 붙어 있는 휘장들 때문에 기울어진 가을볕에 내 의도와는 무관한 번쩍임 을 사방으로 반사하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서 있었지만 그 난해한 반짝임이 그녀의 눈길을 끈 것일까.

무리 지어 다니는 군인무리들을 바라보던 그녀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아온 것은.

잠시 그녀는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흔치 않은 정복 차림에 아마도 저 괴뢰군 같은 복장의 아저씬 뭘까라고 생각이라도 한 걸까.

그녀는 한참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그리곤 하품이라도 하는 듯 입이 벌어졌다.

그녀가 나를 향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녀가 나를 향해 걸어오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아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뭐라 말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말없이 그냥 있어야 하는 건지.

분명 주변 풍경들은 일 년 전으로 역행한 것 같은데 그녀와 나의 사이에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강처럼 놓인 듯했다.

그녀는 천천히 걸어와서 내 앞 한걸음 앞에 섰다.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갈색 눈망울에 물기가 점점 차오르는 게 보였다.

난 어찌할 줄을 몰라서 그냥 멀거니 서서 생각했다.

그나마 한 손에 브리프케이스 라도 들고 있어서 손을 어찌할지 고민 안 해 좋구나.라고.

갑자기 종아리에 둔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시선을 아래로 내려 보니 그녀의 한 발이 내 다리를 걷어차고 돌아가는 게 보였다.

주변에 몰려다니던 군인들이 킥킥대며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터미널 다방에서 인스턴트커피를 앞에 마주하고 그녀와 나는 앉아 있었다.

일 년 전에는 마주 보는 게 아니라 내 곁에 앉아서 함께 다른 곳을 바라보곤 하였는데.

일 년이라는 시간이 다시금 우리를 마주 보고 앉게끔 만든 건가.

한참 동안 말을 않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 그때……. 그분 하곤 잘 되었어요?”


난 그녀가 말한 ‘그분’이 누구였는지 의아해하다가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내 대답은 이랬다.


“ 난, 그 사람 이름도 몰라요. 물어보지도 않았거든요.”


그녀의 눈이 놀란 듯 커졌다가 다시 눈꼬리가 치켜 올랐다가 다시 눈물이 고였다.

그래. 이랬었지. 그녀는 감정을 전혀 숨길 줄 몰랐어. 지나칠 만큼 직설적으로 다 나타났었지.


“근데……. 그럼 왜 내게 편지로라도 해명을 하지 않았어요?”


그녀의 이어진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그랬을까. 사실이 아니었고, 적어도 그녀가 오해 한 그런 사실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그녀의 이별편지를 끝으로 난 아무것도 안 했을까.

어쩌면, 작은 오해에 연락을 두절해 버린 그녀에 대한 감정이었을지도.

그러나 더 큰 이유는 그게 다는 아니었다.


“ 난…….” 목이 메었다.

“ 그 당시 바로 전출명령이 내려왔었어요.

지금까지 광주에서 교육을 받았지.

당신과 그 긴 기간을 이토록 먼 거리에서 무언가를 유지할 만큼의 자신이 없기도 했고…….

당신 또한 그러하리라 생각했어요. 일전에 얼핏 말했던 잠시 사귄 아가씨가 그걸 이유로 그만둬 버렸거든.”


그녀의 얼굴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 확 떠올랐다.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님 이 아니면 못 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갔네

님 은 먼 곳에

영원히 먼 곳에 망설이다가

님 은 먼 곳에

- 유호 작사. 신중현 작


임지 부대로 가서 사전 인사를 하고, 자취방을 계약하고 돌아오는 길은 이미 어둠이 가득했다.

다시 춘천 터미널에서 광주행 막차를 타고 내려가는 길은 멀고도 길었다.

창밖 풍경들이 점점 짙어가는 어둠에 묻히고 이내 차창은 검은색 거울 같이 변했다.

흐릿한 버스 조명으로 차창에 내 얼굴이 떠올라있었다.

짧은 머리에 광대뼈가 두드러지게 메마른 얼굴.

어깨 위에 번쩍이는 촌스러운 계급장.

시간에 쫓겨 저녁도 마다하고 올라탄 버스에는 승객이라곤 거의 없었다.

버스기사는 빨리 돌아가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급했던지 경주용 차처럼 버스를 몰아갔다.

나는 의자에 짐짝처럼 구겨 앉은 채 창밖에 어스름하게 떠오른 내 그로테스크한 환영을 바라보며 일 년여 만에 다시 만난 그녀가 내게 했던 말 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자신은 나를 오해해서 그렇다곤 하지만 그렇게 소식이 두절되면 적어도 쫓아 내려오리라 생각했었다.

그도 아니라면 최소한 자신이 소문처럼 들었던 그 얘기라도 먼저 꺼내어 자초지종을 말할 줄 알았다.

그렇게 편지 한 통에 더 이상 아무 답 없이 교육을 내려가리란 생각은 못했었다.

그건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한 마음이 적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말을 걸었던 게 자신이기에, 쉽게 생각하고 더 이상 진전을 바란 것도 아닌 거라 생각했다.

춘천에서의 하룻밤. 자신을 두고 침대 밑에서 잠들려 애쓰는 걸 보곤 고맙고 신뢰를 가졌었다.

하지만 결과가 그렇게 된 걸 보니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저런 생각 끝에 이 사람은 나와 미래를 생각하고 싶진 않구나. 란 마음이 들고, 게다가 나중에 보니 전출을 가 버린 상태라 더 마음을 두지 않으려고 했다.

동네 언니들에게 들은 말들이 떠오르더라.

전방지역 살면서 굳이 직업군인하고 연애하려면 장교도 사병도 안 되고 하사관들을 사귀어라.

사병들은 전역하면 그뿐 돌아오지 않는다. 직업은 아니니까.

장교는 직업 이라곤 하지만 이삼 년 있다가 떠도는 부평초 같은 인생이다.

그들과 연애관계를 유지하기도 어렵지만 잘 된 다해도 전후방으로 함께 떠돌 각오 해야 한다.

반면에 하사관은 그 지역에 거의 정착을 하기 때문에 낫다.

그걸 생각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한 번의 편지에 뒤도 안 돌아볼 줄 몰랐다.


그녀의 기나긴 말을 다 들으면서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단순했다. ‘어쩌라고’

나도 그녀의 말에 대답을 했다.

처음 그 편지에 변명 아닌 변명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글로 전달될 감정은 아니니 얼굴 보고 말하고 싶었었다.

계속 전화도 편지도 응답이 없어서 무엇도 하지 못했다.

무작정 가보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내려간 사이 혹여 올까 봐 그것도 못했다.

그러다 이 주간 야외 훈련. 이어진 전출명령.

선택하거나 그럴 입장은 못되었다.

편지로 작별을 고할까 했지만, 솔직히 내가 교육 후 어디로 갈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공연한 미련을 두긴 싫었다.

그것으로 못내 미련을 남기고 매일을 끝없는 기다림과 고뇌로 보내기엔, 내게 주어진 임무가 너무 크다.

적어도 직업으로 군 생활을 한다는 건, 가족이 두 번째 순위 일 수밖에 없다.

그걸 강요하고 이해해 달라 하기엔 당신의 나이가 너무 젊다.

직업군인의 가족은 일 년에 절반도 남편을 보지 못한다.

난 그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사랑하는 사람을 끌고 간다라는 게 딜레마 였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기나 긴 이유. 기나 긴 변명. 기나 긴 이해.

그래도 결국은 모두 현실적인 이유들로 돌아간다.

평범한 젊은 남녀의 연애가 아니라, 소위 푸른 수의에 몸담고 있는 군인과 사람과의 연애인 것.

그것이 그녀와 내가 마주한 현실이고, 모든 직업군인이 가진 딜레마였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


너는 그렇게 너를 변명하지

나는 또 그렇게 나를 변명하곤 해

그러다 지치면 서로 입을 닫는 거지

너는 네 감정을 내게 말하곤 하지

나는 내 이성을 네게 말하곤 해

그렇게 우린 다른 생각을 다르게 말하고

서로 이해를 하지 못한 채 돌아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워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왔잖아


새로운 임지는 하늘이 온전히 보이지 않았다.

늘 어느 곳에 가도 치솟은 산 사이의 계곡뿐이라 정상의 관측소라도 오르지 않는 한 늘 바라보이는 하늘은 가로 혹은 세로로만 보였다.

전입 첫겨울은 혹독했다.

중부전선의 추위와는 또 다른, 늘 습기 가득한 계곡 속의 추위 같은 그런 것이었다.

늘 신발은 젖어있고 한번 도로에 눌어붙은 눈은 겨우내 단 한 번도 풀림이 없는 얼음판으로 변했다.

동부전선의 밤은 중부전선의 밤 보다 훨씬 길었다.

치솟은 산자락의 그늘이 서둘러 어둠을 부르고 늘 해가 중천에 이르러야 마지못하여 산그늘 밑으로 물러갔다.

중부전선 하고도 최전방에 근무했던 지라 민간이이라곤 거의 없던 환경들이 익숙하건만 처음 임지에 버스를 타고 도착할 때 드문드문 보이던 반쯤 허물어진 민가들의 벽에 집보다 높이 쌓여있던 장작더미들이 그들의 겨우살이라고 들었을 땐 70년대로 돌아간 느낌 이었었다.

인근의 민간인들마저도 군대의 일부처럼 뒤섞여 녹아들어 간 전방 오지.

그곳의 군인 가족들은 출신이 어디든 예외 없는 오지의 원주민이 되어갔다.

냉기 감도는 자취방에 느지막이 들어가면 사랑을 생각했다.


내가 사랑을 한다면. 그 사랑과 함께 살아가기로 한다면.

그 사랑을 이끌고 늘 눈과 얼음이 일상인 이런 곳에서 살아갈 나날들을 생각했다.

물론 꽃피는 봄이 오겠지. 울창한 여름도 올 것이다.

거기서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살아가지겠지. 텃밭도 가꾸며 부대 앞을 서성이기도 하면서.

그것이 내가 내 사랑에게 줄 수 있는 미래라는 것 인지.

사랑한다면 그곳이 외딴섬 등대지기 라 할지라도 따라갈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 인지도 안다.

나는 그렇게 현실을 속이고 달콤한 사랑으로 그 모든 걸 모른 척 지나가야 하는 것 인가.

다들 그렇게 살고 있듯이.

그러다 아이들이 조금 자라면 더 이상 전학을 전전 하다못해 못 견디게 되면 어느 도시에 정착을 하겠지.

그리고 나는 먼 전방 어딘가에서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찾아가는 손님이 될 것이다.

그런 건가.

그게 내 사랑의 완성인 걸까.


그렇게 서서히 타오르던 사랑도 직업군인의 보편적인 일상으로 가게 되는 걸까.

창밖엔 엄혹한 삭풍이 몰아치는데 나는 매일 밤 내가 살아갈 사랑의 길이 어디일지 방황을 하고 있었다.

그 끝없는 망상 언저리에는 늘, 춘천. 그녀가 있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선배들은 말을 하곤 했다.

내가 짐작하고 상상하는 미래를 그들에게 물어볼 때면 늘.

다들 그런 줄 왜 모르겠나. 그렇지만 그게 또 군인이 살아갈 길이기에 알면서도 가는 거야.

다는 아니래도 대충 그렇게 살 것을 알면서 또 군인에게 시집을 오는 거지.

그러면서 다투기도 하고 적응도 하면서 그렇게 사는 거야. ‘사랑’ 하나 믿고 말이지.

수없이 절망하고 번뇌하는 군인 가족들을 곁에서 보아 온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 들.

‘사랑’으로 시작했다곤 하지만 결국 부딪쳐보면 만만치 않은 현실 들.

연애 때는 아쉽고 애달픈 로맨틱 일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현실로 들어가면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직업군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하며 그 가족들이 당연히 짊어져야 할 현실.

내가 그것을 견디고 나의 연인에게 함께 가자고 해야 할 현실.

그게 내겐 치열한 연애를 할 수 없는 일종의 경계 같았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


어쩌면 너의 말이 맞는지도 몰라

난 지금 너를 위로하고 있는 거야

내 생각 내 마음 그대로를

네게 말하려고 하는 것뿐인데

넌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의 말을 가로 채 버린 거야

나에겐 더 이상 듣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남아있지 않다면서

이젠 기대하지 않아

너의 곁엔 다른 얼굴 다른 모습뿐야

다시는 나도 돌아가지 않아

너를 위해 더 이상 나 슬퍼지긴 싫어

# 김창환



메마른 가을볕이 밭두렁에 길게 누웠다.

깊은 산 속이라 논 이라곤 보이지 않는 메마른 땅은 여름도 건조하였다.

타지 보다 한 달여 이르게 찾아온 가을은 벌써 퇴장을 준비하는 듯 추수가 끝난 밭두렁 이곳저곳에 살얼음이 아침볕에 반짝인다.

지난 일 년여 높은 산 깊은 골이라는 군가의 가사를 몸서리치게 느끼면서도 삭막하지 만은 않았던 것은 그녀의 덕분 일 것이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우연히도 그녀를 춘천에서 마주치고 나서, 나도 부대 앞 자취를 시작하면서 집에 전화기를 놓게 되었다.

그렇게 전화를 통해 그녀와 나의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었다.

늘 통화는 길고 멀었다.

늘 비슷비슷한 일상을 길게 나눌 거리는 없었을지라도 우리는 할 말이 참 많았다.

잃어버린 일 년을 보상이라도 하듯 우리는 기억도 하지 못할 수많은 이야기들을 했었다.

빛나는 시냇물이 흘러 흘러 봄이 오는 시냇물에 닿기가 그리 어렵진 않으련만.

그녀와 내가 닿는 일이란 참으로 멀고도 험하기만 했다.

늘 귓가에 소근 거리는 대화에는 쏴아 하는 시냇물 소리 같은 잡음이 끼어들곤 했다.

그런 긴 대화를 끝낸 밤 이면 꿈속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어딘가를 내달리곤 하였다.

그리고 그 꿈의 끝은 늘 혼자 버스를 타고 돌아오거나 배웅을 하는 결말로 깨어나곤 했다.

이른 가을이 다시 깊어 가던 어느 날.

나는 춘천의 한 모퉁이에 서서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면도로 바닥은 마치 노란색 주단을 갈아 놓은 듯 은행잎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바람이 한번 스쳐 지날 때마다 노란색 일렁임이 좌르르 몰려가고 몰려오고 한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고, 기울기 시작한 가을볕은 시나브로 길 건너 건물들 뒤로 내려앉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려 퇴근을 서두르며 천천히 몰려나오는 병원직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정문 건너편에 서있는 나를 힐긋 거리며 지나갔다.

아무리 군인이 많은 지역이라 해도 민간병원 앞에 군인이 있는 일이 흔하진 않을 거니.

잠시 후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깃 올린 베이지색 코트에 빨간 베레모를 쓴 그녀의 모습은 어린 소녀처럼 보였다.

그녀 역시도 정문 앞에서 흘깃 나를 바라보곤 더 할 수 없이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가 내게로 깡충거리며 뛰어 왔다.


“ 오빠~ 어쩐 일이에요? 소식도 없이. 오늘……. 평일 이잖아? 휴가 나왔어요?”


뛸 듯이 기뻐하며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묻는 그녀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깡충거리며 아이처럼 뛴다.

나는 그냥 빙긋 웃으며 그녀의 손을 힘주어 잡아 주었다.


“ 음. 나 말이야. 전역 지원서 냈어. 곧 자유로워질 거야. 나 하고 정식으로 사귀어 주겠어?”


순간 그녀의 얼굴이 멈칫 굳어 버린다.

그리고 울 듯 한 얼굴이 되었다가 웃을 듯한 얼굴이 되었다가 했다.


“ 어. 왜……. 나랑 상의도 없이……. 직업군인으로 오래 하고 싶어 했잖아요……. 나 때문에?”


그녀가 내게 묻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다.


“ 응. 그랬지. 나라에 충성하고 군인으로서 자부심도 있어.

그런데 말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하고 멀리멀리 떨어져서 그러고 싶진 않았어.

그렇게 충성하고 그렇게 제각각 살아서 별을 달고 진급한들 행복할 거 같지 않네.

난…….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그녀의 눈망울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곤 내 품에 뛰어들어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한다.

나는 이 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

푸른 옷에 실려 가던 내 청춘을 내려놓은 날.

그리고 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무작정 달려온 오늘을.

언젠가 먼 훗날 후회 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지금, 그대를 선택하였기에 행복하다.

희망사항


그대가 나를 행복하게 해 주리라 기대한 건 아니었어

내가 그대를 행복하게 해 주리라 결심은 하였었지만

어떻게 해야 그대가 행복할 수 있을지는 몰랐었네

내겐 단지 그대가 곁에만 있음이 행복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 그대 곁에 머물러주면 행복할 줄 알았었어

때로는 비바람 불고 눈도 나리겠지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때로는 슬프기도 할 거야

그래도 그대와 함께 걷는다면 다 견딜 수 있지

넘어지고 무릎이 깨어지는 날도 있을 거야

그것도 그대와 함께 라면 참아 견딜 수 있을 거야

살아갈 길은 여러 갈래이고 선택은 온전한 내 몫

어떤 길을 택했을 때 내게 좋았을 거란 생각은 않아

그저 그대와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이라면 어떤 길인들

수십 년 후에 후회할 기억이 될지라도 지금 후회 않아

내가 선택한 길은 네게로 가는 길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