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친구들과 실없는 tv프로그램 얘기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제 그거 봤냐? 진짜 웃겼지" 그 웃음은 단순히 재미있는 장면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다. 같은 시간, 같은 채널 앞에 모인 수백만 명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일종의 의례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알고리즘이 정교하게 계산해낸 '나만을 위한' 콘텐츠를 소비한다. 완벽하게 개인화된 이 세계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완전히 개인화된 콘텐츠가 개인 간의 단절을 초래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인간은 왜 타인과 연결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연결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물음이 존재한다.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같은 종족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그다지 큰 공통점이 없다. 서로 다른 가정에서 태어나고, 다른 경험을 하며, 다른 생각을 품고 산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가며 비슷한 것들을 함께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콘텐츠다.
콘텐츠는 하나의 문화다.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개인들은 더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콘텐츠 그 자체는 대화를 위한 기폭제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그 콘텐츠를 매개로 시작되는 대화,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형성되는 공감대다. 월요일 아침 사무실에서 주말에 본 드라마 이야기로 시작되는 대화, 친구들과 최신 음악에 대해 나누는 의견, 온 가족이 저녁 식탁에 모여 함께 본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웃고 떠드는 순간들. 이것들이 모여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더 알아가고, 우리라는 감각을 키워왔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몇 개 안 되는 지상파 채널만 존재하던 시절, 학교에 가면 대부분의 친구들이 비슷한 콘텐츠를 소비했다. 모두가 하나의 콘텐츠에 대해 웃고 떠들 수 있었다. 단순한 오락의 공유가 아니라,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는 확인이었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결속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대화이고, 그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바로 공유된 콘텐츠였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각자의 취향이 더욱 분화되어 서로가 서로만의 것들을 향유하고 있다.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는 더욱 친해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인간관계가 좁아지고 깊어진다는 현상이다. 알고리즘은 나의 선호를 정확히 파악하고,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만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그 정확성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서,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화면을 스크롤한다.
이것이 반드시 나쁜 것일까? 취향을 공유하는 소수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에도 분명 가치가 있다. 피상적인 대화보다는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몇 명의 사람들과의 깊은 교류가 더 의미 있을 수 있다. 개인화된 콘텐츠는 우리가 정말로 관심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고, 그것을 통해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전 세계적으로 연결될 수 있게 해준다. 지리적 경계를 넘어선 이런 연결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점이 있다. 인간은 확증편향을 가진 동물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교류하게 된다면, 더욱 외부의 의견에는 관심이 사라지고, 더욱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빠지게 될 것이다. 과거에도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인간에게는 AI가 없었다. 결국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필요했고, 대화라는 것을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했다. 때로는 의견이 다른 사람과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관점을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의 인간에게는 AI가 있다. 더는 대화를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AI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주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반응해준다. 그리고 AI는 사용자의 확증편향을 더욱 강화시키는 알고리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추천 시스템은 내가 이미 동의하는 의견, 이미 좋아하는 스타일, 이미 편안하게 느끼는 세계관만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내 생각에 도전하는 콘텐츠, 불편하지만 생각해볼 만한 관점, 익숙하지 않지만 새로운 경험은 점점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는 단순히 취향의 문제를 넘어선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까지 영향을 받는다. 같은 사회에 살면서도 완전히 다른 정보 생태계에 거주하게 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기반이 점점 줄어든다. 대화는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입장을 확인하는 의식이 되어버린다. 공통분모가 사라진 개인주의적인 사회에서, 타인과의 대화를 할 필요는 더욱 사라지게 되고, 결국 대화하지 않음은 결속의 약화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개인화된 콘텐츠 자체를 제한해야 할까? 과거로 돌아가 모두가 같은 채널을 보던 시절로 회귀해야 할까? 그것은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기술의 발전은 되돌릴 수 없고, 개인화가 가져다주는 이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결국 뻔한 말이지만, 개인의 노력이 더욱 강조되는 시대다.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고 주변을 조금 더 살펴보는 것, 알고리즘이 권하는 것 너머를 의도적으로 탐색하는 것,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과도 대화를 시도하는 것. 이런 작은 노력들이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같은 콘텐츠를 공유하지 않더라도, 같은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조금 더 따뜻한 애정을 쏟아준다면, 이러한 시대이더라도 서로를 아껴줄 수 있지 않을까.
완전히 개인화된 콘텐츠는 개인 간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필연은 아니다. 기술이 만들어낸 거리를 인간성으로 좁혀나갈 수 있다. 알고리즘이 지운 공통분모를, 우리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이자, 여전히 가능한 희망이다. 화면 너머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과 나는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알고리즘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인간다운 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