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판력(旣判力)
2016학년도 수능 B형에 출제된 기판력 지문은 생소한 어휘들에 대한 확실한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 주요했던 지문이다.
1 문단
변론술을 가르치는 프로타고라스(P)에게 에우아틀로스(E)가 제안하였다. “제가 처음으로 승소하면 그때 수강료를 내겠습 니다.” P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E는 모든 과정을 수강 하고 나서도 소송을 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러자 P가 E를 상대로 소송하였다. P는 주장하였다. “내가 승소하면 판결에 따라 수강료를 받게 되고, 내가 지면 자네는 계약에 따라 수강료 를 내야 하네.” E도 맞섰다. “제가 승소하면 수강료를 내지 않게 되고 제가 지더라도 계약에 따라 수강료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유명한 논리 난제인 프로타고라스와 에우아틀로스의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이 계약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P는 E에게 변론술 수업을 제공한다, 그 후 E가 처음으로 승소한다면 P에게 수강료를 지급한다.
P가 수강료를 받고자하는 목적으로 E에게 수강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P의 주장을 정리하면
P가 승소했을 경우 : 수강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에서 승소했기에 E는 P에게 수강료를 지급해야한다.
E가 승소했을 경우 : 계약에 따라 E가 승소했기에 P에게 수강료를 지급해야한다.
하지만 E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P가 승소했을 경우 : 계약에 따라 E가 승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강료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E가 승소했을 경우 : P의 수강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에서 승소했기 때문에 수강료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2 문단
지금까지도 이 사례는 풀기 어려운 논리 난제로 거론된다. 다만 법률가들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본다. 우선, 이 사례의 계약이 수강료 지급이라는 효과를, 실현되지 않은 사건에 의존하도록 하는 계약이라는 점을 살펴야 한다. 이처럼 일정한 효과의 발생이나 소멸에 제한을 덧붙이는 것을 ‘부관’ 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기한’과 ‘조건’이 있다. 효과의 발생이나 소멸이 장래에 확실히 발생할 사실에 의존하도록 하는 것을 기한이라 한다. 반면 장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사실에 의존하 도록 하는 것은 조건이다. 그리고 조건이 실현되었을 때 효과를 발생시키면 ‘정지 조건’, 소멸시키면 ‘해제 조건’이라 부른다.
이 논리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강료 지급이라는 법률 효과를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 의존하도록 하는 계약이라는 점을 살펴야한다. 이처럼 일정한 효과의 발생, 소멸에 제한을 덧붙이는 것을 '부관' 그리고 그 부관이 확실히 발생할 사건에 덧붙이는 것이면 '기한', 그 것이 아니라면 '조건'이라 한다. 이 사례에선 '조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조건이 실현되었을 때(E가 승소하였을 때) 효과가 발생되기 떄문에 '정지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3 문단
민사 소송에서 판결에 대하여 상소, 곧 항소나 상고가 그 기간 안에 제기되지 않아서 사안이 종결되든가, 그 사안에 대해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선고되든가 하면, 이제 더 이상 그 일을 다툴 길이 없어진다. 이때 판결은 확정되었다고 한다. 확정 판결에 대하여는 ‘기판력(旣判力)’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기판력이 있는 판결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같은 사안으로 소송에서 다툴 수 없다. 예를 들어, 계약서를 제시하지 못해 매매 사실을 입증 하지 못하고 패소한 판결이 확정되면, 이후에 계약서를 발견하더 라도 그 사안에 대하여는 다시 소송하지 못한다. 같은 사안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확정 판결이 존재하도록 할 수는 없는 것 이다.
이 문단에서 주요하게 봐야할 것은 판결이 어떻게 확정되는 지에 대한 것이다.
판결이 확정되는 조건은 상소 기간이 종료되거나 3심이 모두 끝나 더이상 항소나 상고를 할 수 없을 때 판결이 확정되고 '기판력'이 생긴다. '기판력'이란 이미 기(旣) 판단할 판(判) 힘 력(力)을 써서 이미 확정된 판결이 가지고 있는 힘을 뜻한다. 판결이 확정되었을 때 같은 사안에 대하여 서로 모순되는 확정 판결이 존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 후에 판결에 영향이 미칠 수 있었던 증거가 발견되어도 다시 소송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형사 소송에서는 '일사부재리'라면 민사 소송에서는 '기판력'인 것이다.
4 문단
확정 판결 이후에 법률상의 새로운 사정이 생겼을 때는, 그것을 근거로 하여 다시 소송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 경우에는 전과 다른 사안의 소송이라 하여 이전 판결의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계약서는 판결 이전에 작성된 것이어서 그 발견이 새로운 사정이라고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집을 비워 달라고 하는 소송에서 임대차 기간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임대인이 패소한 판결이 확정된 후 시일이 흘러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임대인은 집을 비워 달라는 소송을 다시 할 수 있다. 계약상의 기한이 지남으 로써 임차인의 권리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계약 기간의 만료 등으로 계약자들 간의 권리 관계가 달라지는 등의 변화가 일어난다면 새로 소송을 할 수 있다. 이는 같은 사안에 대하여 서로 모순되는 확정 판결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는 기판력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같은 사안이 아닌 서로 다른 새로운 사안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서로 다른 두 소송 간에는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다.
5 문단
이렇게 살펴본 바를 바탕으로 P와 E 사이의 분쟁을 해결 하는 소송이 어떻게 전개될지 따져 보자. 이 사건에 대한 소송 에서는 조건이 성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원이 E에게 승소 판결을 내리면 된다. 그런데 이 판결 확정 이후에 P는 다시 소송을 할 수 있다. 조건이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 번째 소송에서는 결국 P가 승소한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E가 다시 수강료에 관한 소송을 할 만한 사유가 없다. 이 분쟁은 두 차례의 판결을 거쳐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논리 난제를 기판력의 개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일단 P가 E에게 건 수강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은 수강료를 지급하는 계약 상의 조건인 승소가 아직 성취되지 않았기에 법원은 E에게 승소 판결을 내린다. 이 판결을 통해 계약 상의 조건인 E의 승소가 성취가 되어 두 계약자 간의 권리 관계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로서 P는 다시 E에게 수강료 지급에 관한 소송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권리 관계의 변화로 두 사안은 서로 다른 새로운 사안으로 인식되어 두 사안 간에 기판력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P는 E에게 두 번의 소송을 통해 수강료를 지급받을 수 있다.
문제 27 윗글을 바탕으로 의 사례를 검토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갑은 을을 상대로 자신에게 빌려 간 금전을 갚아 달라는 소송을 하는데, 계약서와 같은 증거 자료는 제출하지 못했다. 그 결과 (가) 또는 (나)의 경우가 생겼다고 하자.
(가) 갑은 금전을 빌려 주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여 패소하였다. 이 판결은 확정되었다.
(나) 법원은 을이 금전을 빌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갚기로 한 날은 2015년 11월 30일이라 인정하여, 아직 그날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확정되었다.
① (가)의 경우, 갑은 더 이상 상급 법원에 상소하여 다툴 수 있는 방법이 남아 있지 않다.
옳다. 판결이 확정되어 기판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② (가)의 경우, 갑은 빌려 준 금전에 대한 계약서를 발견하더 라도 그것을 근거로 하여 금전을 갚아 달라고 소송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옳다. 계약서는 소송 이전에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안이라 볼 수 없으며, 따라서 기판력이 작용한다.
③ (나)의 경우, 을은 2015년 11월 30일이 되기 전에는 갑에게 금전을 갚지 않아도 된다.
옳다. 계약 상 갚기로 한 날이 아직 오지 않았음으로 금전을 갚지 않아도 된다.
④ (나)의 경우, 2015년 11월 30일이 지나면 갑이 을을 상대로 금전을 갚아 달라는 소송을 다시 하더라도 기판력에 저촉되지 않는다.
옳다. 계약 기간이 지나는 등의 권리 관계의 변화가 있다면 새로운 사안으로 인식되기 떄문에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다.
⑤ (나)의 경우, 이미 지나간 2015년 2월 15일이 갚기로 한 날 임을 밝혀 주는 계약서가 발견되면 갑은 같은 해 11월 30일 이 되기 전에 그것을 근거로 금전을 갚아 달라는 소송을 할 수 있다.
옳지 않다. 패소한 판결이 확정되어 기판력이 생긴다면, 후에 소송 전에 작성한 계약서가 발견되어도 소송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