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가격은 누가 정하나요?
“웅마.”
딸이다. 평소와는 다르게 나를 부른다. 시계를 보니 화요일 오전 8시 32분. 학교 수업 중일 시간이다.
곧이어 메시지가 도착한다.
“나 청바지 새로 사는 거 워떠?”
사진도 함께 왔다. 정가 42,800원짜리 청바지가 오늘까지 2만 원 할인된단다. 가격은 22,800원. 귀여운 이모티콘과 “빨리빨리”라는 재촉이 줄줄이 이어진다. 작정하고 덤비는 톡이다.
나는 단호하게 답한다.
“No~”
딸은 순간의 기지가 좋다. 나는 한 가지 결정을 하기까지 여러 생각을 하느라 늘 시간이 걸린다. 반면 딸은 다르다. 일단 마음이 가면 지르고 본다. 결정 속도가 번개 같다. 나는 늘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결국 고민 끝에 거절을 한다.
거절이 잦으면 아이 마음에 상처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딸은 의외로 잘 털어낸다.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만큼, 거절도 빠르게 잊는다. 그저 마구 던져보다 걸리면 땡큐, 아니면 말고. 얼마 전 나는 이 단순하지만 현명한 전략을 눈치챘다. 딸은 어쩐지 나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것 같다. 엄마 사랑을 잘 요리하는 재능도 타고났다.
딸에게는 이미 청바지가 여러 벌 있다. 입학 당시 학교에 교복이 없어서 청바지와 야구점퍼가 지정 생활복이었다. 수학여행, 수련회, 체육대회 같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청바지를 사야 했다. 그러다 2학년 때 교복이 생겼고, 딸은 “교복 입으면 공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라며 입고 싶다고 했다. 새 마음을 응원해주고 싶어 교복도 사줬다.
이번엔 청바지다. 그런데 사야 할 이유는 ‘2만 원 할인쿠폰, 오늘까지’라는 점뿐이다. 그동안 필요 없던 청바지가 갑자기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 다 할인쿠폰의 마법이다.
이럴 때는 거절이 쉽다.
정리해보면, 청바지를 꼭 사야 할 이유가 없다. 단지 가격이 싸서 끌릴 뿐이다. 이런 소비는 조심해야 한다. 어제 샀는데 오늘 더 싸게 팔면 속이 쓰린 건 덤이다.
필요할 때 쿠폰이 생기면 좋은 거래지만, 쿠폰 때문에 사는 건 주객이 전도된 선택이다.
마음이 흔들리긴 했다. 22,800원, 큰돈도 아니고 아이가 좋아할 텐데…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는 딸에게 ‘자기를 지키는 소비’를 알려주고 싶다.
할인 쿠폰은 판매자가 정한 판촉 전략일 뿐이다. 가격은 우리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
그 가격을 받아들이는 것, 거기서부터 진짜 소비자의 선택이 시작된다.
딸이 사려는 청바지, 이유가 딸 자신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필요해서 샀어.” 이 한마디가 중심이었으면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거절한 뒤 마음이 무거웠다.
딸이 얼마나 속상할까.
그러던 중 다시 톡이 온다.
“옴마~ 수행평가 책 필요해~”
이번엔 책이다. 문제집이다. 이건 허락해줘야지.
청바지 대신 5,600원짜리 문제집을 사주며 딸의 마음을 달래본다.
예나 지금이나 엄마에게 가장 잘 통하는 속임수는 ‘문제집’이다.
결국, 딸아이는 자기가 만든 할인쿠폰으로 내 마음을 홀랑 가져간다.
아,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