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대단한 일을 하고 싶었다.
수많은 자기 계발 콘텐츠에서 말하듯, 내 시간을 써서 임금을 받는 삶으로는 노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것이 자유를 찾는 길이라 생각했고,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지금 하는 일에서 남들보다 빠르게 무언가를 해내고 더 멀리, 더 높이 가고 싶었다.
돈이 있어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고 믿었기에, 투자와 일의 확장을 자주 꿈꾸며 살았다. 많은 것을 자유롭게 하려면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것들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는 묻지 않은 채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생각만 붙들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 나는 현재의 생활을 정리하며 그간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오랜 친구들, 같이 일했던 동료들, 별것 아닌 인연이라 생각했던 사람들. 작게나마 감사함을 전하며 돌아보니 한 가지가 선명해졌다. 내가 감사를 전하고 있는 사람들은 뛰어난 발명가도, 유명한 사업가도 아니었다. 전부 내 바로 옆에 있던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지금 같은 삶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은 위대한 과학자나 사업가들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내가 이 일상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정말 지쳐 있던 날 별말 없이 건네받은 짧은 안부, 아무 대가 없이 자기 시간을 내어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람들의 얼굴이 오래 남았다.
그러면서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더 멀리, 더 높이 가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믿음이, 오히려 나를 자유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릴 적 수업시간에 배웠던 말이 떠올랐다. 사회는 더불어 사는 곳이니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자. 직업의 귀천은 없다. 아마 지금도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나는 그 말을 순진하다고 치워버렸다. 자신의 시간을 써서 노동을 하는 것은 노예의 길이라는 그럴싸한 말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나는 다른 사람도 아닌 나 스스로를 노예라 규정하며 살았다.
나를 노예로 만든 것은 나 자신이었다.
스포츠를 보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선수들이 있다. 더 큰돈과 더 화려한 무대가 기다리고 있는데도 떠나지 않는 사람들. 그런데도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끝내 지킨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낭만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가치 있고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던 나에게는 정작 그런 낭만이 없었다. 멋진 삶을 말하면서도 너무 자주 삶을 계산과 성취의 언어로만 재단하고 있었다. 얼마나 더 벌 수 있는지, 얼마나 더 인정받을 수 있는지. 그 사이에 내가 진심으로 멋지다고 느껴온 삶의 모습은 자꾸 뒷전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오랫동안 나의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 정한 채점표에 내 삶을 자꾸 맞춰보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뒤처지는 것이 두려웠고, 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숫자와 성취뿐이라고 믿었다. 틀린 답을 적지 않으려고, 남들보다 쉽게 증명될 수 있는 길을 무의식적으로 골랐다.
돌이켜보면, 내가 감사함을 느낀 사람들과 오래 동경해 온 인물들은 결국 비슷한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성과보다 사람을 먼저 두는 태도,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쉽게 놓지 않는 마음, 자기 나름의 기준을 끝내 버리지 않는 자세. 내가 소중하다고 느낀 것들은 처음부터 화려한 성공의 언어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예전의 나는 더 많은 것을 손에 쥐어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자유란 더 많이 가지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애쓰고 무엇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은지를 스스로 알고 있는 상태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에, 내가 오래 동경해 온 낭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꼭 대단한 일을 해야만 괜찮은 삶이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더 나아지기 위해 애쓰는 동안에도 나의 자유를 잃지 않고, 내 주변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대단한 일을 이루지 못해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