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코스프레 할 필요 없다.

by 언더독

나는 왜 매일매일 글을 쓰는가.


브런치에서 주말 공휴일 따지지 않고 매일 글을 쓰는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누가 시켜서 쓰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쓰는 것도 아니다. 피곤하지 않아서 쓰는 것도 아니다. 돈이 되어서 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당장에 대단한 구독자를 보유한 것도 아니다.


내가 매일 글을 쓰는 이유는 속세에 얽혀 복잡해졌던 스스로를 다잡는 것에 있다. 신이 내게 주신 능력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함도 있다. 미덕을 실천하여 내면의 평정을 찾기 위함도 있다.


스스로를 다잡고 내면의 평정을 찾는 일은 나를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당장에 나는 내놓으라 할만큼의 성공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함에는 신이 내게 주신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신이 주신 그 능력이 '존엄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멋져보이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나는 그냥 물러서지를 않는다. 아무리 상황이 악조건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부질없는 짓이라 할지라도, 파멸과 패배가 뻔히 보이는,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이라 할지라도 나는 싸운다. 그것이 용기이자 내 혈통에 대한 의무임을 알기 때문이다.


존엄함은 그러한 행동에서 일어난다. 존엄함은 내가 어떻니 저떻니 그저 말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동을 보고 남이 자발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나는 세상의 다수가 이러한 면을 대부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세울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어떠한 위기에 물러서지 않는 호전적인 성향이 분명히 있고, 내가 추구하는 것에 있어 변태같은 집착을 보이는 경향이 짙다. 비교를 해보니 그러했다.


고로 믿게 된 것이다. 어쩌면 신이 내게 내려준 능력은 어떠한 실력이나 적성이 아닌 불굴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되던지 말던지 매일 글을 쓰는 모습을 보라. 나는 그냥 이렇다.


나와 같은 세대들은 시대를 꺼내들 수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가 일자리를 쥐고 있는 탓에, 젊은이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는 둥. 화폐가치가 떡락해서 의미없는 월급쟁이 생활을 하고 있다는 둥. 기득권의 노예층 통제를 목적으로 한, 각 종 프로파겐다로 세뇌된 남녀들로 인해 연애와 결혼마저도 어려워 졌다는 둥.


이것들이 사실이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사실이다.


내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다른 시대에는 또다른 어려움들이 산재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탓해봐야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4-50년 전을 생각해보자. 나처럼 글 쓰는 작가는 정보부에 끌려가 고문받다가 병신이 되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시위대를 향해서 최루탄과 실탄이 발사되던 시절이었다. 비폭력 시위하던 스님들도 총알받이 되던 때였다. 정경유착따위는 귀여운 것이었다.


70년 전을 생각해보자. 625 전쟁 중이었다.


100년 전을 생각해보자. 일제 시대였다.


200년 전을 생각해보자. 삼정 문란(전세, 군역, 환곡 문란)으로 조선 팔도에서 농민 봉기가 일었다.


피해자 코스프레는 할 이유도 효용도 없는 스스로를 좀먹는 행위이다.


실패와 성공은 어차피 하늘이 점해주는 것이다.


우리 2030은 강인함 그리고 명예를 아는 인간상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명예란 것은 그러거나 말거나 인간의 의무를 다하는 것에서 온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초보] 미국 주식 투자 청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