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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六)아(我) 일기

시어머니 되어가기 1

    4월 중순이라기엔 아직 차가운 깊은 봄밤, 밤도둑처럼 찾아온 갱년기 때문에 역시나 쉬이 잠들지 못했다. 따뜻하게 덥힌 우유 한 잔을 들고 식탁 앞에 앉았다. 

    식탁 한쪽에 놓인, 노란 수선화가 그려진 청첩장이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이 놓고 간 청첩장.

  「저희 두 사람이 사랑의 이름으로 지켜나갈 수 있게 앞날을 축복해 주시…」

   잠은 더 멀리 달아나버렸다.

   

    “시어머니가 이리 젊어서 어째?”

    “며느리랑 같이 다니면 큰 언니라고 하겠어.”


    청첩장을 건네받은 지인들이 하는 말이다.     


    큰아들은 늘 아슬아슬한 아이였다. 잘 놀다가도 어디 한 군데 꼭 다쳐서 들어왔다. 철 따라 유행하는 크고 작은 병을 달고 살았다. 특히 녀석의 아홉 살 때 일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가을 소풍을 다녀온 다음 날부터 3일 넘게 고열에 시달렸다. 동네 소아과에서 진료를 포기했다. 나는 아이를 둘러업고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죽을힘을 다해서.

    ‘마이코플라즈마’ 감염으로 인한 급성 간염이라고 했다.

   

    "간수치가 오천 오백입니다."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의사는 병원에서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수치라고 했다. 20kg 가냘픈 몸에 사정없이 링거줄이 박혔다. 어느 날인가 아이가 고통을 견디다 못해 그 링거줄 하나를 끊어버렸다. 순식간에 병실을 피바다로 변했고 아이의 팔다리는 병원 침대에 묶였다. 밥 한 수저를 못 넘겨 축 늘어져 있는 아이를 십 분마다 흔들어 깨워 말을 걸어야 했다. 


    "간성혼수가 오면 죽을 수 있습니다."


    회진할 때마다 의사가 신신당부했기 때문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간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고통을 넘어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아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애간장이 다 끊어지고 하루하루가 불지옥을 걷는 시간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것이 멈춘 2020년. 그러나 아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해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아들은 첫 월급을 받은 날에, ‘엄마, 아빠 고맙습니다’라는 문자와 함께 용돈을 보내왔다. 그렇게 세 번쯤 더 용돈이 오고 간 어느 날. 


    “엄마… 나… 결혼할래?”

    “너! 사고 쳤어?”


    너무 황당해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녀석은 작은 눈을 깜빡였다. 학창 시절 같은 과, 여학생과 사귀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빨리, 아니 너무 빨리 꺼낸 결혼 이야기에 괜히 화가 났다. 대학원도 가고, 경력도 쌓고, 더 욕심을 부린다면 유학도 가고… 아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아들의 미래를 그려온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며칠 후, 그날도 저녁을 거른 채 소파에 누워 한숨만 내쉬었다. 


    “이제 가지치기합시다. 우리는 우리대로 살고 녀석은 알아서 잘 살겠지.” 


    남편의 선문답 같은 한 마디가 날아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내 꼴이 보였다. ‘세상 쿨한’ 엄마인 줄 알았는데 실은 ‘한 사람’으로 세상에 우뚝 서려는 아들을 인정할 준비가 안 된 못난 엄마였음을…     

    지방에서 근무하는 아들이 주말에 올라왔다. 그에게 맥주 한 잔을 내밀었다.


    “왜 결혼을 하려는 건데?” 

    “더 이상 혼전순결을 지킬 수 없어서요.”

    “푸-!”


    아들의 얼굴에 맥주를 내뿜고 말았다. 조선 시대도 아니고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맥주를 뒤집어쓴 아들을 가만히 바라보니, 그는 이제 품속의 아이가 아니었다. 살면서 처음 맞닥뜨린 아들 앞에서 난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렇게 어엿한 스물다섯의 청년이라니, 그렇게 건강하고 진실된 어른의 얼굴이라니! 너무나 낯설었지만 기막히게 감동적이었다. 


    아들의 신박한 결혼 이유로 터진 웃음 덕분인지, 결혼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경제관념이 남다른 아들과 며느리는 예단, 예물 등의 겉치레는 모두 생략했다. 신혼집 구하기, 살림 장만까지 양가 어른들은 끼어들 틈도 없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준비한다.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하다. 이런 마음을 친구들에게 터놓으면 ‘시어머니 말 한마디에 결혼이 깨질 수도 있다’며 도리어 난리를 친다. 

    이런저런 충고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 역시 초보 예비 시어머니 자리가 영 어색해 말 한마디도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 꼰대‘ 소리 들을 각오로 딱 한 마디만 하고 싶다.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는, 딱 그만큼 거리를 가졌으면 좋겠어. 너무 가까우면 서로를 제대로 볼 수 없더라고. 또 너무 멀리 있으면 내 편이 아닌 남같이 느껴질 거야. 언제든지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거리에서, 서로를 인정해주고 지켜줄 수 있길 바랄게.

육(六)아(我) 일기 육(六)


육(六)아(我)일기

갱년기를 등에 업고 질풍노도의 중년 시대를 지나가는 중이다

이제 곧 들어설 육십이라는 노년 시대를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 

언젠간 지나갈 푸르른 중년의 나를 기록한다. 


아(我) 일기

육(六)아(我)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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