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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거리의 매력, 역사와 볼거리

연재) 늦어도 괜찮아. 50대, 파리 유학생이 되다

by Selly 정

샹젤리제, 천국의 정원을 걷다

매주 월요일 오후, 발걸음은 저절로 샹젬리제를 향한다. 지하철 6번 종점에서 내리는 순간, 파리 개선문이 웅장하게 시야를 가득 채운다. 저 멀리 개선문 너머로 펼쳐진 거리, 그곳이 바로 '천국의 정원'이라 불리는 샹젤리제다.

45분간의 피아노 레슨을 위해, 개선문에서 음악학교까지 이어진 산책로를 걷는다. 천천히 10분쯤 걸으며 거리를 음미한다. 오른쪽으로 살며시 몸을 돌리면 학교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짧은 여정이 주는 설렘이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파리라는 도시가 선사하는 특별한 무대 위를 거니는 기분이다.


명품들이 수놓은 거리

샤를 드골 에뜨왈역 주변은 눈부시게 화려하다.

루이비통 매장 앞을 지나친다. 갈색 모노그램 패턴이 새겨진 쇼윈도가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몇 걸음 더 가면 샤넬 매장이 나타난다. 검은색과 흰색의 절제된 우아함이 창가에서 은은하게 빛난다. 디올 매장 앞에선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우아하면서도 현대적인 실루엣이 마네킹에 걸쳐져 있다.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구찌는 형형색색의 패턴으로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프라다는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세련됨을 뽐낸다. 에르메스 매장 앞에선 잠시 멈춰 선다. 오렌지색 쇼핑백을 든 사람들의 얼굴엔 만족감이 가득하다. 티파니 매장에선 그 유명한 블루 박스가, 쇼윈도 속 다이아몬드들이 무지개빛을 흩뿌린다.

명품 브랜드들 사이사이로 라파예트 갤러리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같은 익숙한 프랜차이즈는 여행자들에게 안도감을 준다. 자라의 트렌디한 옷들, 세포라의 화려한 화장품 코너까지. 고급스러움과 대중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거리다.

관광버스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쏟아낸다. 저마다 다른 언어로 감탄사를 터뜨리는 이들의 표정엔 똑같은 경이로움이 어려 있다. 전 세계가 이곳으로 모여든다. 샹젤리제는 그렇게 세계를 품는다.


크리스마스가 빚어낸 환상

크리스마스 시즌이 성큼 다가오면, 거리는 마법에 걸린 듯 변신한다.

레슨을 마치고 나서는 시각, 7시 40분. 어스름이 내려앉은 하늘 아래, 거리는 오색찬란한 빛의 향연을 펼친다. 루이비통 매장은 황금빛 리본으로 감싸인 선물 상자처럼 빛나고, 샤넬은 은은한 샴페인 골드 조명으로 우아함을 뽐낸다. 디올은 로즈 골드빛 눈송이 장식으로 로맨틱함을 더하고, 티파니는 그 상징적인 블루 컬러 조명으로 겨울밤을 물들인다.

반짝이는 전구들이 거리를 수놓고, 화려한 광고판들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관광객들은 그 찬란함 앞에서 멈춘다. 어깨가 부딪히는 와중에도 정신없이 셔터를 누른다. 찰칵찰칵, 카메라 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운다.

"헬로우!"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웨이터들의 환한 미소가 배고픈 이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날엔, 눈인사만 건네고 발길을 돌린다. 대신 근처 불랑제리로 향한다. 갓 구운 바게트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바삭한 크루아상 하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사들고 벤치에 앉는다.

추운 겨울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가도 괜찮다. 화려한 거리를 바라보며, 옆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이 순간이면 충분하다. 빵을 한 입 베어 물면 버터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행복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 온다.

손을 꼭 잡고 걷는 연인들의 속삭임, 아이 손을 잡은 가족들의 웃음소리, 혼자 걷는 이의 사색 어린 눈빛까지. 이 모든 게 어우러져 샹젤리제라는 거대한 교향곡을 연주한다.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면, 궁전처럼 화려한 천장을 자랑하는 스타벅스로 피신한다.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 그 김이 안경을 뿌옇게 만드는 순간의 행복이란.

문득 궁금해진다. 이 거리가 언제부터 파리의 심장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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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정원, 그 찬란한 역사

샹젤리제(Champs-Élysées). 그리스 신화 속 엘리시움, 영웅들이 죽어서 가는 낙원에서 유래한 이름. '천국의 정원'이라는 뜻처럼, 이곳은 정말 지상의 낙원을 닮았다.

17세기 중반, 이곳은 그저 평범한 길에 불과했다.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며 파리는 이 거리를 정성껏 가꾸어갔다. 길을 넓히고, 가로수를 심고, 조금씩, 천천히, 아름다움을 더해갔다.

나폴레옹 시대에 이르러 샹젤리제는 마침내 빛을 발했다. 정치와 사회의 중심지로, 프랑스의 자랑으로 우뚝 섰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세계적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이곳에 깃발을 꽂았다. 각 매장은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거리는 매년 3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품는다. 전 세계인의 꿈과 동경이 모이는 곳. 2000년대 들어서도 샹젤리제는 진화를 멈추지 않았다. 보행자 전용 구역을 넓히고,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거리 조경을 개선했다.

개선문에서 시작해 콩코르드 광장까지 이어지는 이 길을 걸으면, 프랑스 역사와 문화가 발끝에서 속삭인다.


빛으로 수놓은 밤

샹젤리제의 진짜 얼굴은 해 질 녘에 드러난다.

개선문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보는 야경이란. 불빛의 물결이 거리를 타고 흐른다. 파리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든다. 에펠탑은 매시 정각마다 반짝이고, 12개 대로가 별처럼 뻗어 나간다.

콩코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가 조명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분수에서 뿜어지는 물줄기가 무지개빛을 만든다. 세느 강변에 서면, 거리 조명이 강물에 반사되어 두 배로 아름다워진다. 유람선이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잔물결에 빛이 흩어진다.

하지만 샹젤리제 거리를 직접 걷는 게 가장 좋다. 상점과 카페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불빛, 사람들의 웃음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소리. 모든 게 어우러져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

라 뒤레의 마카롱은 입안에서 살살 녹고, 레 두 마고와 카페 드 플로르는 과거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공간 그대로다. 카페 샹젤리제의 테라스에 앉아 거리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카페 마리니에서 개선문을 바라보며 커피를 홀짝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샹젤리제를 걷다 보면 깨닫는다. 이곳은 단순한 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꿈과 낭만이 살아 숨 쉬는 곳,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라는 것을.

매주 월요일, 피아노 수업을 향해 걷는 이 길 위에서, 50대 중반 유학생은 생각한다. 늦어도 괜찮다고. 지금이 바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샹젤리제의 불빛처럼, 우리 인생도 저마다의 타이밍에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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