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야기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때로는 다정한 보호자로, 때로는 강압적인 권위자로 느껴진다. 아버지는 외면적으로 아이의 대변인이다. ‘누구의 자식이냐’가 어릴적 아이의 평가기준이 된다. 아이가 곤경에 처했을 때 아버지의 능력이 그 위기의 무게를 좌우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가치관을 아이에게 심으려고 억압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가 성장할수록 아버지는 내면적으로 극복해야 할 큰 산처럼 자리잡는다.
톨스토이는 말한다. 아버지는 자녀의 도덕적 나침반이며, 백명의 교사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아버지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자녀에 대한 사랑 앞에서는 영웅이 되고, 모험가, 이야기꾼, 심지어 가수로 변신할 수 있다. 이처럼 아버지는 아이 앞에서 스스로를 새롭게 창조하는 존재이다. 아버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 모든 불완전함과 무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 감춰진 순수한 헌신을 깨닫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성공법칙을 아들이 이어가기를 바란다.
넷플릭스 창업가 마크 랜돌프(Marc Randolph)는 어린 시절, 조금 남다른 세상을 보며 자랐다. 마크의 아버지 스티븐 랜돌프(Stephen Randolph)는 핵연구자이자 금융전문가였다. 아버지는 퇴근 후 매일 미니어처 증기기관차를 만드는데 열중했다. 아버지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시하여 같은 일을 반복하였다. 아들에게 말했다. “너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으면 네 사업을 해라. 네 삶의 주인이 되어라.” 아버지는 아들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다.
마크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나침반 삼아 사업을 친구와 함께 구상했다. 빌린 비디오를 늦게 반납하여 연체료를 지불하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우편으로 DVD를 빌려주는 사업을 계획했다. 당시 경쟁사는 9,000개의 대여점을 운영하는 ‘블록버스터’였기에 모두가 사업에 실패할 것이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마크는 ‘너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으면 네 사업을 해라. 네 삶의 주인이 되어라.’라는 아버지의 교훈을 실천하기 위해 1997년 39살이 되던 해 ‘넷플릭스’를 창업했다.
초기에는 우편으로 DVD를 배달했지만 ‘디지털 콘텐츠인 DVD는 디지털로 소비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2006년 OTT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는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 후 ‘오징어게임’과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다양한 서비스 패키지 개발을 통해 경쟁사와 차별화를 추구하였다. 2024년 가입자 3억 명의 세계 최대의 미디어그룹으로 성장했다.
아버지는 마크가 21살이 되던 해 8가지 성공법칙을 글로 정리해 아들에게 전했다. 마크는 아직도 욕실 거울 앞에 붙여 놓고 매일 읽는다: 요구받은 일보다 최소한 10%를 더해라 / 모르는 것을 절대 사실처럼 말하지 마라 / 언제나 예의를 갖추고 남을 배려하라 / 비난이나 불평하지 마라 / 결정을 두려워하지 마라 / 가능하다면 숫자로 표현하라 / 마음을 열어두되 의심하라 / 신속하게 행동하라.
마크는 말한다. 누구든 꿈을 현실로 바꾸려면 그냥 시작해야 한다. 그게 가장 간단하면서 강력한 첫걸음이다. 아이디어가 좋은지 아닌지 알아낼 유일한 방법은 그냥 해보는 것이다. 신통치 않아 보여도 반복해서 도전해보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훈은 매일 반복해야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아버지는 자신이 깨달은 성공법칙을 아들이 매일 실천하기를 원했다. 마크는 실천했고 꿈을 이루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스스로 갈 길을 개척하기를 원한다.
동원그룹의 창업자 김재철 회장은 전형적인 수재였다. 고등학교 다닐 때 성적이 우수했으나 선생님의 권유로 더 큰 꿈을 펼치기 위해 수산대학교에 진학했다. 1958년 23세의 나이에 참치어장으로 알려진 사모아로 향하는 원양어선에 몸을 맡겼다. 낮에는 나이 많은 선원들이 시키는 일을 해냈고, 밤에는 영어공부와 어족연구를 지속했다. 1년 후 귀국하여 정식사원이 되었다. 두번째 출항 때 일등 항해사가 되었고 세번째 출항시 선장이 되었다.
1969년에는 회사설립에 필요한 자본은 물론 어획한 참치를 구매해주겠다는 일본 거래처의 권유로 동원산업을 창업했다. 사장이 된 이후에도 김재철은 직접 원양어선을 타며 끊임없이 참치잡는 방법을 연구하고 가공시설을 만들어 승승장구했다. 더 많은 공부를 위해 1981년 하버드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했다. 그때 회사의 구조를 1차산업 참치잡이, 2차산업 통조림제조, 3차산업 금융투자로 키우겠다는 큰 그림을 그렸다. 귀국 후 금융기업인 한신증권을 인수하고, 1982년에는 국내 최초 참치통조림을 선보였다.
김재철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다. 김재철은 자식교육에 혹독했다. 장남이 대학을 졸업했을 때 신분을 감추고 5개월간 원양어선에 태워 갑판청소 등 모두가 기피하는 일을 하게했다. 증권사에서는 영업점 대리부터 업무를 시작하여 금융시장의 바닥을 알게 했다. 장남은 아버지가 인수한 한신증권을 한국투자금융으로 전환시키고 2003년 독자경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20년후 매출규모를 1조 7천억원에서 11조 4천억원으로 10배 성장시켰다.
차남은 대학 졸업후 창원의 참치캔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공장에서는 참치캔 포장, 창고 야적 등 강도 높은 노동을 견뎌야 했다. 이후 청량리 도매시장에서 ‘양반김’을 팔게 했다. 현장 경험은 동원이 세계 최대의 통조림회사 스타키스트(Starkist)를 인수하여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 나침반이 되었다. 차남의 경영전략은 아버지의 경영전략과 같은 조용한 M&A를 통한 사업확장이다. 기존 시장의 룰을 새로 쓰는 게임체인저가 되기 위해 미래유망산업인 AI, 2차전지, 물류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김재철은 아들에게 말한다. 겸손해라. 공부해라. 그리고 희생하라. 그걸 할 수 있다면 사업을 하고 그렇지 않다면 편안하게 사는 길을 택하라. 가슴 뛰는 일에 찾아 끊임없이 도전해라. 파도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파도에 맞서는 것이다. 자식이 자신의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만들 수 있도록 훈련했다. 아버지의 사랑은 따뜻한 손길만이 아니다. 때로는 차가운 파도 속에 밀어 넣는 훈련이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간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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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등대와 같다.
류운천의 아버지는 시골에서 목수 일을 하며 4남매를 키우셨다. 평생 고생을 많이 하셨기에 자신의 직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앞마당에 딸린 텃밭 가꾸는 일 조차시키시지 않았다. 아들은 어려서 잔병이 많아 건강하지 못했고 공부에도 크게 흥미가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공부를 더하여 더 넓은 세상에 나가보자는 친구의 권유를 받고 갑자기 밤낮없이 코피흘리며 노력한 덕분에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시골에 내려올 때마다 장터로 데리고 나가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아들’이라고 자랑했다. 돈벌이가 넉넉지 않았지만, 아들에게 용돈만큼은 꼬박꼬박 챙겨주셨다. 아들이 서울 생활에서 기죽지 않기를 바랐고, 더 많이 공부하여 날품을 팔지않고 양복입고 출근하는 회사원이 되기를 바랐다. 아들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 양복 정장을 입고 인사드리러 갔을 때 아버지는 거친 손으로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아버지는 먼 곳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바다의 등대와 같다. 등대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자식이 길을 잃지 않도록 빛을 비춰줄 뿐이다. 아버지가 되어본 사람은 안다. 아버지가 얼마나 고달프고 고독한 사람인지를. 아버지는 말 대신 눈빛으로 사랑을 전하는 등대와 같다. 세월이 흐른 후 우리는 깨닫는다. 아버지는 언제나 등대처럼 변함없이 거기에 계셨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