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부부,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는 33개의 지혜(원고가 완성된 상태임)

by 윤혁경

[프롤로그]

'이 웬수야!'가 '내 사랑'이 되기까지

♣ "이 웬수야! 제발 내 말 좀 들어 줘!"

혹시 이 말이 입에 붙으셨나요? '안 주인', '바깥 주인' 하던 시절은 옛말이고, 요즘은 "이 인간", "저 인간" 하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서로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면, 반품도 폐기도 안 되는 '웬수'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죠. 쌓이는 상처는 깊어지고,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결국 파국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매년 10만 쌍이 넘는 부부가 이혼하고, 황혼이혼 비율도 2014년 8.9%에서 2024년 16.6%로 껑충 뛰었습니다. 이혼 사유 1위가 '성격 차이'라는데,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 '성격 차이'라는 게 사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를 돌려 말하는 건 아닐까?


♣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나요?

사랑은 참 묘한 감정이에요. 처음엔 죽고 못 살 것 같아 결혼을 택했는데, 시간이 흐르면 오히려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존재가 되기도 하니까요. 왜 이런 아이러니가 생길까요?

어떤 연구에 따르면, 뜨거운 사랑의 유통기한은 평균 18개월에서 3년 사이라고 해요. 처음엔 페닐에틸아민,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 같은 달콤한 호르몬이 펑펑 나오지만, 시간이 흐르면 '설렘'이 '안정감'과 '애착'으로 바뀌어야 하죠. 그런데 여기서 삐끗하면 사랑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사랑이 식고 나면, 가장 가까웠던 배우자가 오히려 가장 아프게 찌르는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친구나 직장 동료와는 갈등이 생기면 피하거나 거리를 둘 수 있지만, 매일 얼굴 봐야 하는 배우자와는 그럴 수 없잖아요? 결국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정서적 단절'이고, 이 단절이 가정을 위기로 몰고 갑니다.


♣ '성격 차이'는 사실 오해였어요

"우린 성격이 안 맞아서 그래." 이런 말, 많이들 하시죠? 하지만 성격은 단순히 타고나는 것만이 아닙니다. 자라온 환경, 살아온 시대 분위기, 지역 문화, 가정 분위기 등 수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한 사람의 성격을 만들어요.


상대방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왜 그런 말투를 쓰는지, 감정 표현 방식이 왜 그런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왜 저렇게밖에 못 할까?" 하는 실망만 반복하게 됩니다. 결국 '이해 부족'이 '성격 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거죠.

"말 안 해도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라는 기대는 부부에게 가장 위험한 착각입니다. 우리는 상대를 잘 모르면 오해하고, 그 오해는 감정을 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언젠가 비수처럼 돌아오기 마련이에요. 부부 싸움의 이유는 잊어버려도, 그때 받은 상처의 감정은 오래 남으니까요.

"그 말투만 고치면 괜찮을 텐데" 하는 생각도 조심해야 합니다. 말투는 오랜 시간 쌓인 성격과 습관의 표현이라 하루아침에 바꾸기 어려워요. 억지로 고치려 들면 강요가 되어 오히려 반발심만 키우고 관계에 금이 갈 수 있습니다.


♣ 요즘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가 아니에요

예전엔 부부싸움을 '칼로 물 베기'라고 했지만, 요즘은 좀 달라요. '얼음 깨기'에 가깝죠.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를 와장창 깨뜨리기도 하고, 한번 금이 간 믿음은 회복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싸움에서 이긴다고 상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이기려 했는지 되돌아보면 씁쓸하기만 합니다.


♣ 이해는 감정의 해독제입니다

우리는 종종 배우자의 행동이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 사람의 과거, 자라온 환경, 표현 방식, 마음속 상처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왜 그렇게 민감해?"라고 묻는 당신의 배우자는, 어쩌면 상처가 많은 환경에서 자라 방어적으로 반응하게 된 것일 수도 있고요. "왜 말을 돌려서 해?"라고 답답해하는 당신의 배우자는, 감정을 억누르며 자란 탓에 직설적인 표현이 어려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갈등을 잠재우는 가장 강력한 '감정 소화제'이자 '정서 해독제'입니다. 그 사람을 '웬수'로 볼지, 아니면 '나와는 다르게 자랐지만 소중한 내 사람'으로 바라볼지는 오롯이 나의 선택에 달려있어요.

결혼한 지 45년이 지난 지금, 이제서야 이 모든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그때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도 있지만, 다행히 아직 늦지 않았어요.

백세 시대, 앞으로도 10년, 20년은 더 함께 살아가야 하잖아요? 매일을 서로 존중하고 아껴주며, 배우자라는 이름이 기쁨과 위로가 되는 삶을 꿈꾸며 오늘도 노력합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남은 삶을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요.


제1장. 너무 다른 우리 부부, 다름을 이해하는 지혜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를까?" 배우자와 지내면서 한 번쯤 해봤을 생각이죠. 오래 함께했는데도 가끔 배우자의 모습이 낯설어 답답할 때도 있고요. 보통 '성격 차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우리가 살아온 시대, 자란 지역의 분위기, 그리고 각자의 집안 문화 같은 깊은 뿌리가 숨어있습니다.


♣ 다름은 틀린 게 아니라, 당연한 거예요!

우리는 가끔 배우자가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저 사람이 잘못됐다'고 단정 짓곤 합니다. 하지만 부부 사이에서 '다름'은 절대 '틀림'이 아니에요. 세상에 단둘뿐인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뤘으니, 다른 게 너무나도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고 해도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집에서, 다른 부모님 밑에서 자랐을 거예요. 지역 정서는 물론, 어릴 적 친구 관계, 학교, 겪었던 일들… 이 모든 게 다르죠. 심지어 같은 형제자매라도 부모님의 양육 방식이나 집안에서의 역할에 따라 성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도 합니다. 맏이는 맏이대로, 막내는 막내대로 가정 안에서 강요된 학습에 따라 말과 행동, 생각과 성격이 결정되는 것이죠. 그러니 환경과 여건, 조건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지붕 아래 살게 되었으니, 생각이나 행동,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 막내딸네 손자들을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아이 셋인데 성격이 다 달라서 정말 같은 형제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큰 손자는 뭐든 조심스러워요. 자기 생각도 잘 말하지 못하고, 자신이 없는 일은 아예 시작도 안 하죠. 몰래 혼자 연습해서 자신감이 생기면 그때야 행동으로 옮기는 아이랍니다.

그보다 4살 어린 손녀는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이 전혀 없어요.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먼저 가서 인사도 잘하고, 심지어 외국인을 만나도 서툰 영어 단어 몇 개로 말을 거는, 정말 발랄한 아이죠.

손녀보다 4살 더 어린 막내 손자는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에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 보인답니다.


한집에서 태어나 한 가족으로 자랐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나중에 알고 보니 첫째가 태어날 때는 딸 부부의 갈등이 최고조였던 결혼 초였다고 해요. 아이 몰래 싸운다고 해도 아이는 모든 것을 알아챕니다. 엄마 아빠의 다툼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첫 아이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엄마 아빠에게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부족했던 거예요. 그러니 존재감이 없는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둘째가 태어날 즈음에는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경제 사정도 나아져 부부 싸움도 줄었대요. 아이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상태에서 자랄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아이와의 자유로운 대화, 사랑받는 스킨십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쉬웠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막내가 태어날 쯤에는 부부의 모든 문제가 거의 해소되고, 심리적으로도 훨씬 안정된 상태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덕분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막내 손자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 없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궁금한 것도 거침없이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해진 거겠죠.


이처럼 배우자의 독특한 반응이나 고집처럼 보이는 행동들이 사실은 그 사람의 삶의 궤적 속에서 형성된, 어쩌면 생존을 위한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관계 이해의 첫걸음이에요. 이걸 인정하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답니다.


♣ 시대의 흔적, 우리 안에 스며들어요

우리 세대는 정말 격동의 시대를 살아왔잖아요. 한반도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죠. 배우자의 행동이나 생각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을 때, 그 사람의 '시대적 배경'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생각지도 못했던 답을 찾을 수도 있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아버님 세대인 남편이 유독 권위적이거나, 감정 표현에 서툴다면 어떨까요? 그건 그분들이 자란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엄격한 사회 분위기, 그리고 아들을 '집안의 기둥'으로 여기며 감정보다는 이성을 강조했던 가부장적 문화의 영향일 수 있습니다. 아내는 가끔 저에게 사랑을 확인받으려고 하는데, 저는 "꼭 말로 해야 아느냐"곤 하지요. 어색할 뿐더러 '사랑타령'하는 것은 경상도 사나이가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 '가족의 생계는 무조건 남자의 책임'이라는 사회적 압박 속에서 자란 이들에게 감성적인 대화나 애정 표현은 익숙지 않거나, 심지어 '나약함'으로 비칠 수도 있었죠.

반대로, 아내는 자기희생과 헌신이 너무나도 컸던 사람으로 자기주장을 잘 내세우지 못한 편이에요. '현모양처'와 '순종'을 미덕으로 여겼던 시대 분위기, 그리고 집안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일 수 있답니다.

아내는 두 딸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한 사람입니다. 아침마다 학교까지 차를 태워 주었고, 학원이 끝날 때까지 밤늦게까지 기다린 그런 엄마였답니다. 남편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 장모님으로부터의 교육 탓일 겁니다. "절대 반품을 받지 않을 테니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잘 고쳐서 사용하게!" 그리고 아내에게 "시집 귀신으로 살 각오를 하고, 무조건 남편을 최고로 섬기고 살아, 돌아오는 것은 꿈도 꾸지 마!"를 당부하는 장모님의 영향을 받은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또, IMF 같은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억척스럽게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기억이 있다면, '안정'과 '절약'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생활 방식이 몸에 밸 수도 있고요.

디지털 기기 사용법 하나만 봐도 세대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잖아요. 요즘 음식점에 가도 커피 한 잔을 시켜도 키오스크를 이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 참으로 힘들어하는 세대입니다. 아내는 저보다 더 힘들어합니다. 저는 조금씩 익숙해지려고 노력하지만 어렵긴 마찬가지랍니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것에 능숙한 우리 자녀들과 달리, 아날로그만 고집하는 세대가 된 것이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것 같아 어떤 면에선 비참하기도 합니다. 핸드폰의 복잡한 기능, 노트북의 활용 방법에 대해선 고등학생인 손자의 도움을 받지만,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배우자가 온라인 뱅킹을 버거워하거나, 카톡 이모티콘 사용이 어색하다고 해서 '답답하다'고만 생각할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방식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배우자의 나이테에 새겨진 시대의 흔적을 이해하는 건, 그 사람의 행동이 단순한 습관이나 고집이 아니라, 오랜 시간 형성된 하나의 생존 방식이자 세계관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줘요. 이건 곧 '왜 저럴까?'라는 비난 섞인 질문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이해의 시선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겁니다.


♣ 지역 정서, 그 미묘한 차이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정서도 개인의 성격과 가치관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요.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사투리가 다르고, 음식 맛이 다르듯이, 사람들의 생각이나 관계 맺는 방식에도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유교적 전통이 강한 지역에서 자란 배우자는 어른 공경이나 체면을 중시하고,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에둘러 표현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어요. 반면, 좀 더 개방적이고 활동적인 분위기의 지역에서 자란 배우자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소통 방식을 선호할 수 있죠. 한쪽에서는 '예의 없다'고 느낄 수 있는 표현이, 다른 쪽에서는 '솔직하고 시원하다'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거예요.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를 치르는 방식에서도 지역 정서는 큰 영향을 미친답니다. "우리 집은 원래 이렇게 해왔어!"라고 외치는 배우자의 주장은 단순히 고집이 아니라, 그가 나고 자란 지역 공동체의 관습과 정서가 깊이 배어 있는 것일 수 있어요. 이런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방식만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갈등은 필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겠죠.

배우자의 말이나 행동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자란 지역의 문화나 사회적 분위기를 한 번쯤 고려해 보세요. 같은 한국 땅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공유하는 공기 속에는 미묘하게 다른 정서적 코드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답니다. 그리고 그 코드를 읽어낼 때 비로소 배우자의 행동이 납득되기 시작할 거예요.

♣ 가정 문화, 가장 깊은 뿌리

부부의 다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가정 문화'예요. 우리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고 인격 형성의 기초를 다지는 곳이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죠. 배우자의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셨는지, 그 가정에서는 어떻게 대화했고, 갈등은 어떻게 해결했으며, 사랑은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따라 지금의 배우자가 형성된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배우자의 집이 대화가 많고 자유로운 분위기였다면, 그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도 비교적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요. 반대로, 말수가 적고 서로의 일에 크게 간섭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다면, 그 사람은 침묵을 편안하게 느끼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며, 때로는 무심하게 보일 수도 있죠.


갈등 해결 방식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가정은 문제가 생기면 즉시 마주 앉아 토론하고 해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요. 이런 환경에서 자란 배우자는 갈등이 발생했을 때 배우자가 침묵하거나 회피하는 것을 '무시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어요. 반대로, 갈등을 피하고 최대한 부딪히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가정에서 자란 배우자는 대립적인 상황 자체를 불편해하며, 배우자가 '싸우자'고 덤빈다고 느낄 수도 있답니다.

애정 표현 방식도 가정 문화에 따라 크게 달라져요. 포옹이나 스킨십,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이 익숙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배우자의 무뚝뚝함에 서운함을 느낄 수 있어요. 반대로, 말보다는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익숙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배우자의 끊임없는 스킨십이나 애정 표현 요구를 부담스럽게 여길 수도 있죠.


결국 배우자의 말과 행동은 그가 보고 듣고 배우며 자란 가정의 '규칙'이자 '언어'인 경우가 많아요. 당신의 배우자가 어떤 가정 문화 속에서 성장했는지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배우자의 심리와 행동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아, 저 사람은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답니다.

배우자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을 용납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관계를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당신은 배우자의 다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나요?

[배우자와의 '다름' 이해를 위한 자기 점검 체크리스트 (3가지) ]

1. '다름'을 '틀림'이 아닌 '당연함'으로 받아들이기

배우자의 다른 점을 발견했을 때, 비난하거나 바꾸려 하기보다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나요?

배우자와 내가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배우자를 바라보나요?

2. 배우자의 '삶의 궤적'을 이해하려 노력하기

배우자가 자란 시대적 배경(사회 분위기, 주요 사건 등)과 지역 문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배우자의 가정 분위기, 부모님과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가정에서 사랑과 갈등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나요?


3.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소통하기

배우자의 의견이 나와 다를 때, 그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나요?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배우자에게 '나의 배경'과 연결하여 설명하려고 노력하나요? (예: "나는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 이렇게 느끼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