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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울어야만 찾아오는 여유

2023.4.26 브리즈번에서

by 슈잉

2023.4.26 지금 나는 브리즈번의 한 도서관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가볍게 면접을 보고 와서 체크인까지 아직도 1시간 반이나 남았는데, 어디서 무엇을 할까 하다가 도서관행을 선택했다.


엊그제, 그러니까 지난 일요일에는 많이 울었다.

내가 브리즈번에 온 이유는 간단하다. 도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조금 더 큰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는 삶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지난 3월, 브리즈번으로 이동을 결심했고 8일 전,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브리즈번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을 때의 나는 무척이나 설레고도 떨렸는데, 정작 브리즈번에 3일을 있어보니 더 이상 설레지도 떨리지도 않았다. 호스텔에서는 대마 냄새가 시도 때도 없이 났고, 소파에서는 누군가의 체취 냄새가 났으며, 호스텔에 머무는 다른 사람들은 각자의 모국어로 그룹을 지어 놀고 있었다. 저기에서는 프랑스어가, 여기에서는 이탈리어가, 저기서는 영국 악센트의 영어가, 저 멀리에서는 스페인어가 들리는 그런 곳이었다.


브리즈번에 온 지 일주일째, 지원한 카페들에서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직접 이력서를 들고 찾아간 곳은 물론이고 인터넷으로 지원한 곳에서도, 어플을 통해 지원한 곳에서도 아무런 답이 오지 않았다. 내 이력서를 읽어보지도 않은 곳이 95%였고, 읽어보고도 아무 연락이 없는 곳이 5%였다. 나는 호주에서 일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다시 도시 생활을 시작하고 카페에서 일을 하는 것이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내 오만이었던 것이다.


그때 딱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호스텔에서 머물면서 친구가 생겼나? 아니면 퍼스에서처럼 빠르게 잡을 구했나?

내 호주 경력이 아무런 베네핏이 되지 못하는 건가?


그때의 나는 엄청나게 초조했었다. 내 워홀 비자가 약 6개월 남은 시점이기 때문에 최대한 잡을 빠르게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고용주의 입장에서 6개월도 다 채우지 못할 사람을 뽑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대한 오래 일 할 수 있음을 어필하기 위해서 나는 최대한 빠르게 잡을 구해야만 했다.


지원한 곳에서 아무런 답장이 없고 초조해진 나는 한인 잡을 다시 검색하기 시작했다. 브리즈번 내의 한인 커뮤니티에 들어가 공고들을 보니 수시로 사람을 모집하는 초밥집이 있었다. 혹은 브리즈번 주변의 농장에서도 일을 구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아, 일이 안 구해지면 초밥집이나 농장에라도 들어가야 하나?' 이 생각을 하자마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7월 말에 가족들의 호주 여행이 예정되어 있고 모든 것을 다 계획하고 결제를 해놓았기 때문에 그때까지 나는 호주에 머물러야만 한다. 그런데 초밥집 주방에서, 초밥 롤이나 만들면서 가족들이 오길 기다리는 게 의미가 있나? 농장에 들어가서 몸 다 망가져가면서 가족들을 기다리는 건 의미가 있나? 이건 호주에 사는 게 아니라 호주에서 버티는 게 아닌가?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야 할 정도로, 이 생활이 가치가 있나?


그리고 문뜩 내가 이 나라에 더 이상 기대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도시에 가도 다 비슷하게 느껴지고, 새로운 바다에 가도 전에 봤던 바다와 똑같이 보였다. 주변에 유명한 휴양지가 있지만 가봤자 어디든 비슷할 거다라는 생각과 대충 예상가는 풍경에 가보고 싶지도 않았다. 호스텔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의지도 없었고, 집을 구하고 잡을 구할 에너지도 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부모님과 전화를 하면서 이 얘기를 했다. 일을 구하고 있고, 열심히 지원을 하고 있다. 답장은 오지 않는데 빠르게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초조하다. 여기까지는 울지 않았다.


일이 구해지지 않으면 초밥집이나 농장과 같은 일을 하는 것도 하나의 옵션이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호주에 남아있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이 말을 하며 나는 그냥 울어버렸다.


사실 초밥집이나 한인식당, 농장도 하나의 옵션이었던 건 맞지만 나는 내가 정말 그 일을 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농장은 몸이 망가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이고, 초밥집이나 한인 식당은 내가 호주에서 일하는 이유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호주에 와서 한국인들과만 어울리며 한인 잡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이 될까 봐 너무 두려웠다.


굳이 그렇게까지 호주에 머물기 싫었지만, 돌아가는 것도 싫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또 어쩔 줄 모르고 울어버린 것이었다. 한바탕 울고, 부모님으로부터 응원의 메시지를 잔뜩 받고 나서야 조금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작지만 큰 도시가 나는 꽤나 마음에 든다. 시드니보다 아시안 비율이 낮은 것도, 퍼스보다 워홀러들이 많은 것도, 주변에 휴양지가 2개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그래서 적어도 3주는 머물러보기로 결심했다. 다들 구직하는 데에 2~3주 정도 걸리는 걸 봐선, 나도 그쯤까지 해보고 안되면 떠나겠다는 마인드였다. 안되면 농장에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엄청나게 버겁고 묵직한 감정이었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어떻게 이를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글에 내가 내 감정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쓰고 있다는 것만 느껴진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내 인생에 실패가 너무나도 없었다. 물론 힘든 순간은 많았지만, 내 인생엔 커다란 실패가 없다. 내가 원하던 것은 다 이루고 살았던 것이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재수 없이 원하는 대학교 원하는 과에 입학하고, 교환학생도 한 번에 합격하고 세계여행에 지금은 워홀까지 와있으니. 나는 내 인생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좌절해 본 적이 없다. 혹은 초조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이렇게 좌절을 느끼고 초조해하는 것이다. 호주에 오지 않았다면 취준 할 때나 느꼈을지도 이 감정을, 여기 이 머나먼 이곳에서..


내가 호주에 와서 정말 절실히 느낀 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에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세상엔 나의 뜻대로 안 되는 게 너무나도 많은데 그 모든 것에 다 스트레스를 받다가는 내가 먼저 이 세상을 포기하고 말 거다.


우리의 세상은 끝없는 불확실함으로 가득 차있고, 그 속에서 내가 노력을 해도 정확한 무언가를 얻기는 사실상 어렵다. 우린 계속 걱정하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며 살아가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도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을지도 모르지.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러한 감정을 느낄 날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 모든 날들 동안 이 감정을 버거워하며 울 수는 없겠지. 이 감정들에 익숙해지거나 무덤덤해지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으니, 부디 조금 더 성장한 후에는 울지 않고 이 시간을 덤덤히 견딜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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