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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Dec 23. 2023

고비

회사 모니터 앞에서 몸에 쌓인 피로감을 풀고 싶어 한 3초간 눈을 감고 목을 까딱까딱 양옆으로 경직된 근육을 풀었다. 그러고는 손으로 얼굴에 마른세수를 두어 차례하고 따뜻해진 그 손에 얼굴을 묻었다. 

하나 또 고비를 넘겼다. 2주간 준비한 과제 설명회를 앞두고, 자료와 발표 시나리오 모두 '확정'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마무리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퇴근할 시간이 훌쩍 지났다. 자주 있는 일이다. 출근해서 일하다 주변을 돌아보면 어느새 저녁이다. 생각해 보니 오늘 동료 두 명이 내 자리에 찾아왔었다. 동료들은 '어휴 제 또 저러고 있네.'라는 표정으로 걱정스레 요즘 괜찮냐고 물었다. 그것조차 퇴근길에 겨우 기억났다.


심지어 동료 B는 사무실이 가깝지도 않은데, 근처 회의 온 김에 일부러 나를 보러 내 자리 근처로 와준 거였다. 커피나 한잔 하자며 말을 걸었다. 일이 많아서 못 나갈 것 같다고 쭈뼛대고 있으니 옆자리 후배 K가 가서 좀 쉬고 오란다. 신기하게도 나는 남이 시키면 하라는 대로 잘한다. 이번에도 시킨 대로 쭐레쭐레 B를 따라 나갔다. 바쁜 와중에 하는 커피타임에는 모름지기 커피를 주문하고 나올 때까지 잠깐의 여유를 즐겨야 한다. 커피가 나오자마자 다시 네모난 컴퓨터 앞에 앉으러 가야 하니까. 그런데 그 찰나에도 나는 B에게 '내일 사람들 앞에서 과제 설명회 해야 하는데 너무 떨린다, 안 하고 싶다, 빨리 그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둥 푸념만 늘어놓기 바빴다. B는 내가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그런 이야기 들으러 온 게 아닌데' 하는 의아한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애써 화제를 돌리려 노력했지만, 자꾸 일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저 나랑 이야기하고 싶고, 얼굴 보러 온 B인데. 분명 마음으로는 고마운데, 입으로는 엉뚱한 이야기만 쏟아냈다.

"음료 나왔습니다."

커피는 맥도날드에서 시키자마자 나오는 햄버거처럼 빨리 나왔다. 일 이야기는 이제 끝났고, 이제야 사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이날따라 음료를 빨리 만든 카페 점원이 원망스러웠다. 그 원망마저 몇 초나 했을까. 아직 다하지 못한 일들이 생각났고, 그렇게 B와는 헤어졌다. 자리로 돌아와 화장실을 가고 싶거나, 목마르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네모난 모니터 앞에서 네모난 자판을 두드렸다.

손가락은 자판을 두드리는 중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왠지 모를 쓴맛이 감돌았다. B와 나는 서로 취미나 자기 계발을 향한 도전기를 나누면서 인생의 즐거움을 향한 발걸음을 응원한다.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마음이 편하고, 만나고 나면 늘 위로받는다. 그런 그녀와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는데, 그까짓 일에 홀려서 이렇게 날려버리다니. 깊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헤어졌던 B의 표정마저도 집에 와서야 생각났다.


어릴 때부터 한번 집중을 시작하면 주변을 잘 돌아보지 못하고 마음을 연결한 그 무언가에 잘 빠져든다. 일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물론 그 마음을 연결하기가 목걸이 양쪽 끝 고리를 연결하려고 양손이 목뒤에서 몸부림치듯 쉽지 않지만 말이다.

요새 하는 과제가 내 마음에 들었다. 아뿔싸, 맘에 들어버리다니. 그래서인지 자꾸 일에 내 자신이 매몰된다. 한번 들어가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자료에 더 정제된 어구를 쓰려고, 또는 더 정갈하게 그림을 넣으려고 마우스로 1mm씩 미세하게 움직여서 프레젠테이션(일명 ppt) 화면에 이리저리 선과 도형의 위치를 조절한다. 문제는 나도 모르게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연예인들 화보 촬영할 때, 헤어아티스트들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위치를 맞춰주는 것처럼 끝없이 계속해서 자료를 어루만진다. 그 1mm 선이 빗겨졌다고 간혹 선배들이 한마디씩 했던 게 트라우마로 남은 걸까.

일하는 동안 전혀 내 존재를 생각하지 않는다. 거대한 회사의 한낱 부속품이 되기를 자처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늘 생각한다. '이렇게 일하는 게 맞는 건가? 아닌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일은 화장실만큼은 제때 가야지.'하고 소소하게 다짐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출근하면 다시 까먹는다. 일전에 심리상담 선생님과 이야기했을 때, 어린 시절 부모님이 방치하듯 키워서 스스로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 같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좋은 건가.


'잘 하고 싶은 나'와 '숨고 싶은 나'가 늘 공존한다. '잘하고 싶은 나'는 어떤 과제를 해낸 그 찰나의 짜릿함을 기억해서 맛있는 밥상을 차리고 싶어 한다. 그리고 성공적인 레시피를 모아서 코스요리로 만들 듯이, 5년 후 혹은 10년 후 이 경험을 모아 더 큰 과제를 해낼 수 있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레시피를 만드는 건 피곤하고, 오지게 힘들다. 그 반면에, '숨고 싶은 나'는 대충 집에 있는 반찬으로 김에 계란후라이만 먹어도 그럭저럭 괜찮기에 쉽게 요리를, 다시 말해 힘들이지 않고 과제를 끝내고 싶어 한다. 아쉬운 대로 먹어도 배는 부르지 않나. 그렇지만 남는 게 없다. 계란후라이만으로 코스요리는 못 만든다. '앞서가고 싶은 나'와 '머무르고 싶은 나'. 그사이 적절한 강도로 살기를 시도하지만, 그 시도는 늘 난해하다. 지금의 나는 종종 '앞서가고 싶은 나'에 잠식되어, 기쁘고도 힘든 시간을 견디길 택한다.


보고나 발표하기 전에는 내가 주고 싶은 메시지를 잘 전달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거대한 프레스 기계가 나를 누르는 것 같다. 그 때문에 도망치고 싶고, 멈추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 세계의 시간이 지금, 이 순간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은 늘 흐르는 속도대로 흐르고, 결국 일이 있는 그날은 오고야 만다. 이제 시간을 잡고 싶은 마음을 접고, 달리 마음을 먹는다.

'까짓거, 이번에도 해봐야지.'

설명회 발표 1분 전까지 심장이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파닥대고, 겨드랑이와 손발에는 식은땀처럼 땀이 난다. 마지막까지 잡을 수 없는 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못 붙잡았다. 이제 별수 없다. 입을 떼야 한다.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께 설명을 진행할 OOO입니다.. 다들 잘 아시는 영역이지만 공감대를 형성하......"

그 후로는 잘 기억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제스처를 섞으며 잘 준비한 것처럼 혹은 여유 있는 척 연기한다. 입으로는 말하면서 신경세포는 전두엽 깊은 곳까지 파헤친다. 체감속도는 0.3초 정도. 뇌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최대한 다양한 표현을 끌어올려서 말을 이어 나간다. 머릿속이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재밌는 건 막상 보고 하는 동안에는 떨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 생각을 전달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다 보면 긴장하고 있던 것도 잊는다. 사람들은 종종 나를 무대 체질이라고도 한다. 일주일간 밥 먹을 때나, 샤워할 때나, 옷 입을 때나 틈만 나면 머릿속으로 계속 홀로 리허설하느라 내내 긴장해서 내 손과 발은 땀범벅이었던 것도 그 사람들은 알고 하는 소리일까.


과제 설명회를 나름 긍정적으로 마무리했다. 비난한 사람은 없었으니까. 드디어 쉬어도 된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서 만족스럽다. 나 자신이 세워놓은 그럴듯한 기준에 통과한 듯하다. 이 감정 하나 느끼려고 그 고생을 한 건가. 그럼, 이 느낌은 뭘까. 일 하나를 처리하고 마지막에 오는, 가슴이 가득 찬 기분. 작은 일에는 그만큼 작게 차오른다. 큰일을 끝내면 더 크게 차오르는 감정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 젠장. 더 큰 시련, 더 큰 행복. 작용반작용 법칙인가. 헌데 둘의 크기가 다르다. 시련은 1부터 100까지인데, 왜 행복은 1부터 10까지인 느낌이지?

며칠 전부터 아이가 목감기에 걸렸다. 아니 그렇게 신랑한테  들었다. 신경이 회사 일에 팔려있어서 아이가 열은 있는지 열 체크도 못하고, 따뜻한 물 한 모금 먹이지 못했다. 

나의 신경은 온통 회사 일에 쏠려 있어서 아이가 열이 있는지 확인도 못했고, 아이에게 따뜻한 물 한모금 먹이지도 못했다. 기쁨과 동시에 자책이 섞인 허무함이 밀려온다. 성공한 척하는 커리어우먼과 번아웃인 듯한 사람, 그 사이 어딘가 경계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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