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엉뚱한 대화가 오갔기 때문이다. “난 여자 친구가 안 생길 것 같아.”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있었다. 차림새로 보아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듯했다. “넌 여자 친구 생겼다며? 아버지, 어머니도 아시니?” 하고 뒤에 앉은 친구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귀여워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여자 친구가 가장 중요한 일이라니, 그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사랑스러웠다.
그 순간 초등학생이던 우리 아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 난 그 어떤 미녀라도 결혼 같은 건 안 할 거야." 그 말에 우리 부부는 크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의보다 "그 어떤 미녀"라는 표현을 썼다는 사실이 귀여웠기 때문이다. 이제 막 사춘기로 접어든 아이들의 세상은 귀엽고 순수해서 어쩐지 웃음이 난다.
요즘 버스를 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 또래의 학생들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운다. 엄마 갱년기보다 더 뜨거운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두 아들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이제 단답형으로 답하기 일쑤인 두 아이의 속마음이 궁금해서, 또래 아이들의 대화를 염탐하며 그들의 세상을 엿본다.
어느 날, 같은 버스에서 중학교 3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너는 어느 고등학교에 갈 거야?”라는 물음에 친구가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학생이 “성적도 안 되는데 남녀 공학에 가서 여학생이나 실컷 구경할까?” 하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성적이 안 좋으면 좌절할 법도 한데, 여학생 구경이라는 발상으로 넘기다니 순수한 발상에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매일 6시간 이상 학교에서 공부하고, 또 학원까지 가야 하는 K-학생의 꽉 찬 하루가 안쓰러운 요즘이다. 우리 두 아들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기에, 또래 아이들을 보면 괜히 가슴이 뭉클해진다. 무거운 가방을 멘 채 서 있는 학생들을 보면 “의자에 앉으렴, 오늘 하루는 어땠니?” 하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힘든 일은 없는지 슬쩍 말을 걸어 보고 싶지만, 그저 엄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힐끗 바라보는 것이 전부이다.
오늘도 나는 학생들의 조곤조곤한 말소리에 귀를 한껏 기울이며 아이들의 세상을 염탐하고 있다. 그 아이들이 품고 있을 마음과 안부가 문득 궁금해진다. 어쩌면 그 마음은 사춘기 속에 갇힌 우리 아이들을 향한 나만의 작은 응원일지도 모르겠다. 매일 물을 주며 식물을 돌보듯, 아이들이 지친 일상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발견하기를 바라며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