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눈부신 계절에 우리는 속초로 떠났다. 아이들의 시험이 끝났고, 연휴도 길어 속초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원래 목적지는 단양의 캠핑장이었지만, 공사로 인해 부득이 취소하게 되었고,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속초를 택한 것이다. 그렇게 속초 여행을 준비하면서 불길한 예감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속초 외옹치, 영금정, 그리고 설악산의 울산바위와 토왕성 폭포를 가기로 했다. 첫날 찾은 외옹치 해변은 속초에서도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매력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시원한 바닷바람에 긴장이 풀렸다.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 순간만큼은 불길한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어 찾은 영금정의 절벽 위에서 바라본 푸른 바다는 장관이었다. 바다를 마주하며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설렘이 공기 속에 떠다녔고, 나도 그 매혹적인 풍경에 취해 한껏 들떠서 아들과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여정은 다음 날부터 조금씩 삐걱대기 시작했다. 산을 좋아하는 남편의 권유로 설악산에 오르게 된 것이다. 둘째 날 울산바위를 오른 후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남편의 권유로 다시 토왕성 폭포에 오르기로 했다. 아침부터 비가 간간이 내렸고 여행 마지막 날이라서 한 곳만 더 가보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비룡폭포까지 걷는 길은 좋았다. 그날은 왠지 산에 오르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지만, 남편이 토왕성 폭포를 오르자고 했다. 설악산 3대 폭포 중 하나인 토왕성 폭포로 향하는 길은 900개의 계단인지라 쉽지 않았다. 드디어 토왕성 폭포에 다다랐고, 등반의 성취감에 젖은 채 산을 내려오다가 비룡폭포로 향하는 아이와 부모를 만났다. “토왕성 폭포도 가고, 울산바위도 가자”라고 말하는 아이의 호기로운 말이 재미있었다. 나는 산도 내려왔겠다 장난삼아 "토왕성 폭포도 가고 울산바위도 가고!"라고 아이를 따라 외치며 즐거워했다.
그 순간 돌을 딛다가 미끄러지며 순식간에 넘어지고 말았다. 산에서는 작은 부상조차 큰일이 될 수 있기에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강원도 어느 산에서 조난당한 어느 아줌마를 구조하기 위해 119 구급대원이 힘들게 산을 오르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큰일이구나’ 싶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어 보았다. 발목이 욱신거리긴 했지만, 다행히 뼈가 부러지지 않은 듯해 안도감이 밀려왔다.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느껴져 힘들었지만 남편 어깨를 잡고 힘들게 산을 내려왔다. 발이 퉁퉁 붓고 있었지만 감사함이 밀려왔다.
발목의 통증은 한 달간 이어졌지만, 오히려 나는 크게 다치지 않고 돌아올 수 있음을 감사하게 되었다. 이 경험은 내게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을 그저 감사히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번 여행은 내게 인생이 언제나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음을 일깨워주었다. 그 불확실함 속에서도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