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늘 다르게 시작된다. 한때는 규칙적인 아침 루틴이 있었다. 30분의 독서와 10분의 필사, 정리된 책상 위로 흘러 들어오는 햇빛, 그리고 한 시간의 산책이었다. 그때의 아침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고, 고요함 속에서 하루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살짝 흐트러졌다. 완성된 그림에 물감이 떨어져서 예측할 수 없는 무늬의 결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아침이면 나의 손은 다시 분주해진다. 부엌에서 식구들의 아침을 준비하며, 구피에게 먹이를 주고, 창가에 놓인 식물들에게 분무기로 물을 뿌린다. 작은 잎사귀에 맺히는 물방울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순간, 짧지만 완벽한 평화가 찾아온다. 내가 그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듯 하지만 식물들이 나를 더 반기는 아침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설거지를 마친 뒤,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한다. 내가 나갈 준비를 할 때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나를 재촉한다. 올해는 탁상달력이 빼곡하다. 매일의 시간들이 수업과 강연으로 꽉 차 있다. 오전과 오후, 때로는 저녁까지 이어지는 배움의 여정 속에서 나의 하루는 쏜살같이 흘러간다.
밤이 되면 조용히 침대에 누워, 다시 책을 펼친다. 하루의 끝에 만나는 책은 긴 여운을 남긴다. 20분에서 30분 동안 책을 읽는 시간이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마치 어둠 속에서 촛불 하나를 바라보는 듯한 고요함이 나를 감싼다. 그렇게 하루의 소음을 잠재우며 눈을 감는다.
바쁜 일상이지만 책과의 인연은 놓지 않았다. 가방 속에 책 한 권을 넣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글쓰기 수업에 들어가면 책을 읽고, 문장을 새기고, 그 문장을 다시 나의 언어로 적어 내려간다. 잔잔한 음악처럼 그 시간이 나를 감싸고 지나간다. 나는 내면에 새겨진 시간의 문양을 하나씩 더듬으며 글을 쓴다.
올해는 에세이 20편 쓰기가 목표였다. 이제 몇 편 남지 않았다. 종이 위에 흩어졌던 단어들을 모아 A4 한 장에 담아내는 이 과정이, 내게는 작은 성취의 순간들이다. 책 읽기도 80권을 목표로 삼아서 어느덧 59권을 읽었다. 마치 긴 여행을 떠나듯이 그렇게 한 권 한 권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있는 순간이 행복하다.
미술관도 10곳을 모두 다녀왔다. 그곳에서 만난 그림들은 캔버스 위에서 소리 없이 말을 걸어왔다. 올 한 해 동안 나의 목표는 하나하나 이뤄지고 있다. 국가자격증 1개도 따냈으니, 일상의 조각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도서관에서 마을설화그림책도 한 권 출간했으니 올해 내 목표는 거의 달성되어 가고 있다.
나의 아침은 여전히 바쁘다. 일상 속의 완벽한 루틴은 없지만 예측할 수 없는 나날들이 빛나는 순간들을 만들어 준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잔잔한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지금 매일 흩어졌던 보석같은 조각들을 모아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오늘도 그렇게 나만의 하루 결이 채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