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단편소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읽고
이 책은 아시아의 K-픽션 시리즈로 김애란의 단편 소설이다. 김애란은 2002년 제1회 대산 대학 문학상에 단편 소설 「노크하지 않는 집」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이효석 문학상, 신동엽 문학상, 김유정 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칼자국」, 「두근두근 내 인생」, 「바깥은 여름」 등이 있으며 「두근두근 내 인생」은 동명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내가 김애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칼자국」을 필사하면서부터다. 엄마가 해 주던 음식을 어떻게 칼자국으로 비유할 수 있었는지, 그 섬세한 문장에 감탄하며 필사를 하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우연히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라는 작품을 알게 되었다. 책을 먼저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넷플릭스를 뒤적이다가 한 작품에 눈이 갔고 그 영화를 보면서 이 작품이 김애란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2023년 독립 영화다. 남편을 잃은 한 여자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대학 동창인 현석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홀로 남겨진 나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 한마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이 말은 스마트폰 음성 인식 프로그램인 시리가 명지의 거듭되는 질문에 답한 것이다. 남편을 잃고 헛헛했던 명지는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시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고통이란 무엇인가요?”, “당신도 영혼이 있나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 거듭되는 질문에 명지처럼 방향을 잃은 시리가 묻는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영화에서는 추억과 현실을 오가는 명지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하고 죽은 아이의 친구가 등장하기도 한다. 수평선처럼 명지의 일상과 소년의 일상이 겹쳤는데 소설에서는 그 장면이 없었다. 한 번도 담그지 않았던 김치를 담그던 날, 명지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현장 학습을 하러 간다고 아침도 거르고 뛰어나갔던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얼떨결에 장례식을 치른 명지는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영화에서는 폴란드의 바르샤바로 잠시 떠났다고 하는데 책에는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로 떠났다고 나온다. 장면과 대화까지 똑같은 부분도 있지만 다른 부분이 있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먼저 읽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명지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동창생인 현석을 만난다. 자고 나면 안개뿐인 그곳에서 서로가 알고 있는 남편 도경을 이야기하면서 명지는 남편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이라는 건 준비된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명지처럼 죽음을 부정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영화를 보며, 책을 읽으며 나는 그 죽음이란 단어에 가슴이 먹먹했다.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지 못한 채 유령처럼 살아가던 명지는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시리에게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진다. 결국 명지는 도경의 죽음을 눈치챈 현석에게 문자를 남기고 도망치듯 귀국하게 된다. 그리고 아파트 우편함에 들어 있는 한 통의 편지에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영화만 봤다면, 책만 읽었다면 어느 하나는 제대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졌을까? 영화든 책이든 그것은 죽음에 맞닿아 있었다.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한다. 명지는 남편이 구하려다가 함께 세상을 떠난 학생의 누나에게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누나는 몸이 마비되어 장례식에 갈 수도 없었고 미안한 마음을 전할 수도 없었다.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은 서로 통하는 것일까?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명지는 식사를 잘 챙겨서 먹으라는 지은의 말에 그만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비로소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남편은 제자를 살리려고 손을 뻗었을 뿐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명지는 남편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영화를 소개하는 글에는 홀로 남겨진 나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다정한 말 한마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라고 되어 있다. 우리에겐 세월호 사건이 있었고 이태원 참사가 있었다. 남겨진 자의 슬픔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에서 나는 김애란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봤다. 그래서 책을 찾아 읽었는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나 아닌 누군가를 걱정하며 슬픔의 공유를 느끼게 되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죽음에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남겨진 자의 슬픔을 잔잔하게 그려 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우리를 슬픔의 공유로 이끌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