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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별 Nov 16. 2024

그리움이 시작되는 자리


가을에는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가 생각이 난다. 낙엽이 무수히 지는 계절이면 낙엽 태우는 냄새와 함께 아궁이가 떠오른다. 그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에는 외갓집의 아궁이가 있었다. 어두움이 마을을 감싸면 개 짖는 소리가 조용한 마을의 정적을 깼다. 

    

저녁이면 외할아버지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다. 잘 마른 볏짚과 콩 가지를 아궁이에 넣고 불을 붙이면 금방 따듯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위에 마른 장작을 하나씩 차곡차곡 넣으면 아궁이 속은 벌건 불꽃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타닥타닥’ 아궁이에서 콩깍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 소리가 좋았다. 부지깽이를 들고 아궁이 앞에 앉아서 하릴없이 불을 헤쳐보기도 하고 때로는 구운 콩을 주워 먹기도 하고 고구마도 구워 먹었다.     

소 외양간 옆에는 볏짚을 자르는 작두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작두 발판을 밟고 할머니는 볏짚을 작두 칼날 쪽에 넣었다. 두 사람이 박자가 잘 맞아야 속도가 붙어서 볏짚이 잘 잘렸다. 나는 작두를 볼 때마다 서슬 퍼런 작두 칼날이 무서워서 고개를 돌렸다. ‘쿵덕쿵덕’ 작두는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하는데 가끔 ‘쿵덕’ 소리가 어긋나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버럭 화를 내셨다. 할머니는 별 대꾸를 하지 않으셨다.     

아궁이 위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있었다. 가마솥에 물을 넣고 등겨 가루를 넣고 볏짚을 넣는다. 소여물을 끓이는 것이다. 소에게 마른 볏짚을 주기도 하지만 소여물을 끓여서 먹였다. 그럴 때면 소가 ‘음메’하고 울었고 소의 코에서 뜨거운 콧김이 났다. 한소끔 식힌 소여물을 덜어 여물통에 넣어주면 소가 눈을 꿈벅거리며 여물을 먹었다. ‘질겅질겅’ 아주 천천히 소여물을 씹어먹는 소의 모습이 느린 필름처럼 돌아갔다. 어디선가 ‘소쩍소쩍’하는 소쩍새 우는 소리가 들리고 깊어진 밤하늘에 별들이 꽃처럼 피었다.     


어스름이 내려앉는 저녁, 따스한 불길이 치솟는 아궁이 앞에 앉아서 불을 쬐던 그때가 그립다. 아궁이에서는 마른 콩깍지가 ‘타닥타닥’ 터지는 소리를 내고, 구수한 나무 타는 냄새가 나기도 했던 그 시절이 생각나는 가을이다. 오늘처럼 바스락거리는 플라타너스 잎들이 무수하게 떨어지는 늦가을이거나 바싹 마른 잎들을 태우는 냄새가 날 때마다 그 시절이 소환된다. 그리움을 안고 산다는 건 그래서 좋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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