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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남키즈 강남교사 Sep 17. 2022

벽 속의 떡볶이집



대치동 학원가 주변에는 바르다 김선생, KFC, 크리스피 도넛, 맘스터치 등 수업이 없는 시간에 짬을 내어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점이 많다. 주로 학교가 끝난 학생들이 학원에 가기 전에 들러 식사를 하는 식당들이다. 나 역시 학생일 때에는 그 식당들을 자주 이용해서 배를 채우곤 했다.



직장인이 된 지금은 굳이 바쁘게 배를 채워야 할 일이 없어 그 식당들을 거의 방문하진 않지만, 이따금 길을 걷다가 그 식당들을 보면 저 유리창 안에 앉아 있던 시절이 아련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면 괜히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내가 예전에 즐겨 먹었던 메뉴를 주문해보기도 한다.



그런 내가 지금까지도 꾸준히 찾는 가게가 있다. 바로 '벽 속의 떡볶이집' 이다. 벽 속의 떡볶이집은 사실 가게 이름은 아니고, 진짜 가게 이름은 '오뎅매니아' 이다.



'오뎅매니아'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3~4층짜리 건물 1층에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났다. 원래는 아무것도 없는 민 벽이었는데 갑자기 벽이 뚫리더니 가게가 팡- 하고 생긴 것이다. 이 가게가 처음 생겼을 때 얼마나 당황하고 놀랐던지 "어떻게 이미 지어진 건물의 벽을 뚫고 가게를 낼 수 있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이 오뎅매니아는 처음부터 분식집을 했던 것은 아니다. 벽을 뚫고 가장 먼저 만들어진 가게는 만둣집이었다. 내 주먹보다 큼직한 김치 만두과 고기만두를 파는 이 만둣집에서는 항상 찜기에서 올라오는 수증기와 함께 맛있는 만두 냄새가 퍼져 나와 나의 발걸음을 붙잡곤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만둣집은 금방 문을 닫았다. 그리고 생겨난 집은 닭강정 집이었다. 한창 전국적으로 닭강정이 유행할 때였다. 매콤한 양념 닭강정과 짭조름한 양념 닭강정 두 메뉴를 판매했는데, 조금 지나니 치킨까지 판매를 했다. 페리나카나 BHC 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치킨을 판매했기에 우리 가족들은 주말이면 이 닭강정 가게에 주문을 해서 먹곤 했다. (내 기억에 한 마리에 만원 정도 했다.)



그러다가 닭강정 가게도 문을 닫고 새롭게 문을 연 것이 바로 오뎅매니아였다.




오뎅매니아는 특이하게도 가래떡을 큼직큼직하게 썰어 판매를 하는데 떡볶이 안에 어묵도 없고 양파도 없고 정말 떡밖에 없다. 간간히 파가 들어있긴 하지만 정말 들은 게 없다. 게다가 양념도 고추장 양념이 주로 들어가서 집에서 만들어 먹는 떡볶이 맛이 난다. 반대로 말하면 먹을 때 부담스럽지 않고 속이 편하다. 들어간 것이 별로 없으니 오히려 이상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것이 확실해서 더 안심하고 사 먹게 된다.





게다가 이 가게에는 매운 오뎅을 판다. 나는 매운 오뎅을 정말 좋아한다. 지금은 없지만 청실 상가에 분식집이 있었을 무렵, 초등학교를 하교하고 매일같이 가서 500원짜리 매운 오뎅을 사 먹었었다. 그런데 그 가게가 사라진 이후에 매운 오뎅을 먹을 곳이 없어 상심하고 있었는데 오뎅 매니아에서 매운 오뎅이 부활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 임용고시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날이 추운 겨울날 퇴근을 할 때마다 이곳을 들러 떡볶이와 매운 오뎅을 먹곤 했다. 길가에 그저 흔하게 있는 떡볶이집이지만 나에게는 나의 20대를 함께한 추억의 가게인 셈이다.



떡볶이집에 남아있는 20대의 추억에는 사장님 부부의 얼굴이 함께 담겨 있다. 워낙 여러 번 만나서 그런지 길에서 마주치면 반갑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남자 사장님이 안 나오시더니 그 자리에 젊은 청년이 들어왔다. 아마도 사장님 내외분의 아들인 것 같다.



여자 사장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떡볶이를 만들고 있는 젊은 청년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20대가 끝나가고 있듯이 두 사장님의 떡볶이 가게도 끝나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일이 년 사이에 젊은 아들 사장님이 새롭게 가게를 맡으면서 여자 사장님도 못 보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속의 떡볶이집'은 추억 떡볶이집이 아니라 조금은 낯설고 어색한 떡볶이집이 것 같다. 그렇게 되기 전에 자주 방문해서 '추억'을 많이 주문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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