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로 3년
이 반만 거지 같은 직장에서, 남들은 살기 좋다 하는 개싸가지의 도시에서 햇수로 3년 꽉 채워서는 2년을 살았다. 이사의 번거로움(부동산 드나들기, 집 보러 다니기 등 내향인에게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이 너무너무너무 싫은 나는 딱히 하자 없이 깨끗한 이 집에서 쭉 살았단 이야기다.
인간이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면 어떻게 되느냐. 짐이 많아진다. 매우 매우.
사실 발단은 '짐이 늘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사람은 3,6,9년 단위로 퇴사를 꿈꾼다고 했던가. 햇수로 3년. 어느덧 바꾸려고 마음먹지도 않았던 사투리도 깔끔하게 사라진 시간들. 나는 어느덧 부드러운 말씨를 쓰게 되었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너무너무 힘들어졌다.
물론 이유야 있었다. 경력직으로 이직한 후 적응도 완료되었고 연차도 애매하게 중간연차이니 늘어난 업무량, 조금씩 조금씩 애매하게 줄어드는 복지, 새 팀에서 기대했던 업무배당에 훨씬 못 미치는 그 사회적 무언가 등.
모두가 조금씩 부당하다고 생각하던 때 나는 터지고야 말았다.
엄마한테 "나 퇴사했다."라고만 던져놓고 면담을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퇴사하지는 못했다. 그냥 면담 후 나왔을 때 엄마가 "힘드니? 네 생각이 그러면 오너라."라고 보낸 답장에 화장실 가서 조용히 울었을 뿐이다. 하 시끄럽게 울걸.
모두가 힘든 이 시점에 나는 그냥 너무 지쳤다. 힘들었다. 시국도 회사도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모든 행위가 버거웠다. 퇴근시간에 맞춰서 "오늘은 어땠니."라고 묻는 부모님의 카톡은 눈물만 났다. 딸을 서른 해 키워놓고도 아직도 육아 중이시네... 하고 잠시 웃고 나면 다시 지옥 같은 출근시간이 다가왔다. 25년도 3월이 유달리 길었다.
한 번의 폭탄은 당연하게도 회사에 큰 영향은 미치지 못했다. 다행히 인복이 좋았던지 눈치 없고 싹수없는 그 새끼 후임으로 들어와서 똑같이 개싸가지 없는 어린 친구(성별은 달라도 영혼은 쌍둥이 일 수가 있다)가 "대리님 무슨 일 있대여??"하고 신나게 묻는 걸 입사 때 아주아주 애기였던 직동들이 "00씨 그런 건 모르는 척하세요."하고 싸늘하게 일괄했다고 한다. 애기였는데 다 켰다.
아무튼 그냥 꾸역꾸역 힘들었던 어느 날 금요일 3시 퇴근을 선언했다.
전날 비가 와서 맑은 하늘에 깨끗한 공기, 서늘한 바람을 창밖으로만 느끼다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좋다 퇴근해야겠다.
3시 반의 퇴근길은 봄이었다. 걸어가는 사람들도 모두 평온해 보였고 살짝 쌀쌀한 봄 날씨에 숨이 조금씩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편의점을 들러 50L 쓰레기봉투를 여러 장 샀다. 자주 가던 편의점 주인은 혹시 이사를 가느냐고 했다.
집에 쓰레기봉투를 던져놓고 주말에 사람이 늘 많다는 카페를 갔다. 평일 낮은 조용했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셨다. 가져간 책도 읽고 메모도 하고 사진도 찍고 멍하게 창밖을 보다가 원래의 퇴근시간이 되어서 일어났다.
남들 퇴근할 때까지 바깥에서 노는 기분은 짜릿하구나.
집으로 돌아와서는 머리를 질끈 묶고 쓰레기봉투에 모조리 담았다.
사실 집이 그렇게 지저분한 편은 아니었다. 짐이 많이 늘었지만 어쨌든 옷장 안에 옷은 다 들어갔고, 가지고 있던 옷걸이에서 더 사지 않고 살았으며 가구나 가전기기를 더들인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들어갈 때 짐이 워낙 적었어서 이 정도는 맥시멀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청소기는 자주 돌렸고 빨래는 나누어 주 3회 이상은 돌렸으며 주 1회는 꼭꼭 바닥을 손걸레질하고, 씻고 나오면 세미화장실청소를 하고도 2주에 한 번씩은 꼭 락스로 청소했다. 침구를 아주 자주 바꾸진 못했지만 베개커버는 매주 빨았다.
그런데도 청소를 할 때 짐이 늘어서 한번 더 손을 대야 했다.
조금만 정리를 소홀하면 이동동선에 자잘한 물건이 걸리적거렸다. 물건을 어디 올려둘 곳을 찾기 시작했다.
수납장이 가득 찬 것은 아니지만 분명 효율적으로 비워둔 곳이 지저분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선 내가 사지 않은 물건들을 버렸다. 애매하게 받아서 모아둔 스티커(난 다꾸를 하지 않는다), 험한 일 할 때 입어야지 하고 모아둔 낡은 옷, 낡은 양말, 누구 주기도 팔기도 애매한 물건들은 모두 쓰레기봉투 행으로 향했다. 죄책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저기 미국 틱톡커처럼 1회용 랩으로 해먹을 만들고, 변기에 구슬을 마구 버려서 내려버리고, 이상한 반짝이풀을 대량으로 쏟아붓고 하는 등의 적극적인 파괴행위는 꿈에도 못 꾸는 소시민인걸.
꾸역꾸역 버리면서 '지구야 미안해'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50L 쓰레기봉투 3개가 나왔다. 금요일 밤까지 1개를 내 다 버리고 토요일에 2개를 내다 버렸다.
쇼핑하면서 받은 언젠가 쓸 것 같은 에어캡도 모조리 분리수거했다.
남겨둔 비닐은 분리수거용으로 쓸만한 커다란 흰 비닐과 작은 방 쓰레기통에 씌워둘 작은 비닐봉지뿐이었다.
차곡차곡 개어서 라벨을 붙여뒀다. 이건 분리수거용으로 꼭 다 써야지.
토요일 오전까지 청소로 보내고 나니 집이 환해졌다. 50L 쓰레기봉투를 3개 가득 채운 효과는 대단했다.
이동하는데 사소한 걸리적거림이 없었다. 분명 청결하게는 살지만 정리정돈이 잘 안 되는 편이라 거실 책상은 늘 읽다만 책, 노트북, 필기구가 잡다하게 올라와 있는데도 깨끗해 보였다.
아, 나는 처음 이사 왔을 때 이렇게 살았구나. 물론 그때보다는 짐이 훨씬 많지만 그때의 기분이 느껴졌다.
기분 좋게 바깥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돌아왔는데도 집이 깨끗했다. 기분이 묘했다.
취미로 읽었던 에세이 중에 우연히 미니멀리스트였던 작가들의 책이 생각났다. 책장에서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나는 미니멀은 절대 못하지만 참고는 해야지.
일요일엔 깨끗한 집에서 일을 조금 하고 안 읽을 것 같은 책을 골라냈다.
총 7권. 가진 책 중에 택도 없는 숫자지만 우선 중고 팔기를 신청했다. 책도 조금씩 줄여나가야지.
뭐 청소했다고 대단히 살만해졌습니다~ 사회적 갈등도 해결☆
이런 건 아니다. 그냥 단지 청소를 조금 해봤을 뿐이다. 앞으로도 정리를 조금씩 더 해야 할 것이고 미련에 못 버린 쓸데없는 물건도 가득하다.
그냥 내일 출근이 얼마 전이 기분만큼 싫지는 않아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