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출근 준비하는 분주함 속에서 혹은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출근길 위에서 그는 이어폰을 꽂고 마음속으로 문장을 중얼거린다. 벌써 일 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그의 습관은 ‘긍정 확언’ 따라 말하기. 잔잔한 피아노 음악을 배경으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나에게는 무한한 힘이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평화롭습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같은 문장이 달팽이관을 지나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들어와 자리 잡았다. 그의 하루는 말의 축복 속에서 시작됐고, 그 시작은 그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자신감이 차올랐고, 평온한 하루가 늘어났다.
말에는 힘이 있다.
‘네가 좋아. 잘 될 거야. 나는 널 믿어’ 같은 긍정적인 말은 근육을 강화하고, ‘네가 싫어. 나는 못 해. 실패하면 어쩌지’ 같은 부정적인 말은 근육의 힘을 뺀다. 육체적·물리적인 영향뿐 아니라 심리에도, 사고체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데이비드 호킨스는 《의식혁명》이라는 저서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을 갉아먹는 말을 하지 않는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부정적인 말을 사용하여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굳이 성공한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생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내가 하는 말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기자를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하던 때, 그때 내 주변엔 온갖 부정적인 말이 가득했다. 모든 게 두려웠고 걱정거리였다. 입사원서를 이곳저곳 넣었지만, 매번 탈락했다는 메일만 돌아왔다. 주변에서는 이미 졸업한 데다가 한 번 퇴직한 경험까지 있으니 회사에서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직원으로 뽑아봐야 곧 결혼할 것이고, 그럼 출산한다고 휴직에 들어갈 테니 회사에서 더더욱 원치 않을 것이라는,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그 무렵의 여성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도 잔뜩 들었다.
나는 그런 말에 설득당했다. 다수의 말이었고, 매번 반복되었던 데다가 마음 한편에서는 두려움과 함께 혹시나 이직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신도 있었으니, 그 마음은 자신감이든 희망이든 보이는 대로 갈아먹었다.
그 무렵, 위로받고 기분 전환도 하기 위해 친구를 자주 만났다. 친구를 만날 때마다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며 신세 한탄했고, 나의 우울한 감정과 부정적인 생각을 전달했다. 친구의 표정이 어두웠던 걸 뒤늦게 깨달았다. 친구가 말했다.
“우리 당분간 만나지 말자. 내 생각엔 네가 취업하고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 서로 각자의 인생을 더 책임감 있게 살다가 다시 만나자.”
친구가 힘들다는데 하소연도 못 들어주나. 그때는 친구가 그런 말을 꺼낸 의도보다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서 서운하다고만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내 바닥이 드러난 것 같은 수치스러움에 그러겠노라 했다.
“웃는 사람에게는 웃는 친구들이 많았다. 마찬가지로 웃지 않는 친구들에게는 웃지 않는 친구들이 많았다. 행복한 사람 주변에는 행복한 사람들이 몰려 있고, 불행한 사람들 옆에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최인철 교수의 저서 《프레임》에 나온 문장을 그 후 한참이 지나 만났다. 그리곤 친구에겐 내가 프레임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꾸 삶을 괴롭게 만들고 자존감을 떨어트리고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프레임. 친구는 나를 만날 때마다 부정하고 불평불만하는 생각을 하나둘씩 얻어갔을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이면을 보지 못하는 나를 보며 자신의 어두운 상황이 더 부각되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친구는 더더욱 괴로워졌을 것이다. 그래서 참다 참다 그런 말을 꺼내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을 죄어오는 부정적인 프레임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쩌면 그렇게 해서 이미 프레임에 사로잡힌 나를 깨닫게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말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인생을 망쳐버렸다며 한탄했던 내가, 프레임의 희생자인 줄 알았던 내가, 프레임의 가해자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그 무렵 나는 ‘생각의 힘’을 간과하고 있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머릿속에 간직되어 있다고 신경 쓰지 않았던 생각들이 내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친구와 연락을 끊은 지 몇 년이 지난 후였다. 그때도 역시 일 때문에 힘들었고, 못마땅한 상황에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있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까. 왜 하는 일마다 꼬이기만 할까.’
이런 생각들로 나 자신을 괴롭히다가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의문이 들었다. 나만 이런 건 아닌 건 같은데 왜 누군가는 여전히 행복하고, 나는 이렇게 불행한 걸까. 그동안 내가 괴롭고 불행했던 원인은 이면을 보지 못하고 부정적인 것들만 받아들였던 나의 태도에 있었다. 일이 쌓이고 야근이 이어질 때, ‘이 기회에 새로운 일을 하며 한 단계 성장하는 거야, 이 일을 끝내면 수고했다고 격려해줘야지’ 했던 게 아니라 나에게만 일을 모는 것 같은 회사를 원망했다. 실제론 모두가 일이 많았음에도 피해의식에 빠져 사실을 왜곡했으며, 왜곡되고 편향된 말에 영향받고, 감정을 복사하면서 다시 부정적인 생각을 반복하고 행동을 이어나갔다.
나는 말을 하고 생각을 만들어내지만, 내가 만들어낸 말과 생각은 다시 나를 만들고 내게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내 행동 방향이고, 나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매사에 ‘귀찮아, 하기 싫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성취의 경험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질 높은 성장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이 물음들의 답은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이 주춤하게 만들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거나 끈질기게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런 생각에 사로 잡힌 사람은 도전하고 나아가길 선택하는 삶이 아니라 안주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생각의 틀, 프레임에 싸여 나는 어떤 인간이 되는 걸까. 《같은 말이라도 마음 다치지 않게》를 쓰면서 나를 괴롭혔던 말들의 프레임을 깼고, 그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내게는 그런 프레임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프레임을 인식하고 리프레임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되도록 나에게 힘을 주는, 같은 상황이라도 유리하게 해석하게 만드는 그런 프레임으로의 전환. 인간의 뇌가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내게 유리한 프레임을 의식적으로 만들고 바꿔가야 한다.
오늘 내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이, 그리고 가장 많이 한 말이 미래의 나를 만든다. 속담처럼, 오늘 내가 뿌린 말의 씨앗이 미래의 어느 순간 발아하여 자라날 것이다. 생각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결과가 찾아온다는 당연한 진리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 그렇다면 이 진리를 내게 유리한 방법으로 이용해보는 거다.
빅터 프랭클은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는 있지만, 한 가지 자유는 빼앗아 갈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태도를 선택할 자유. 인간을 어떤 상황에 처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상황을 해석하고 대응하는 방법까지 강제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자유를 삶의 흉기로 사용하고 있을까, 삶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을까. 내게 주어진 자유가 삶의 무기가 될 수 있도록 나의 말과 생각을 점검해야겠다. 그리고 앞으로 나의 사전은 내게 도움이 되는 단어를, 내게 힘이 되는 문장들로 채워보는 거다.
오늘 버린 말: 힘들어, 지쳤어, 네가 싫어
오늘 채운 말: 괜찮아, 할 수 있어, 잘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