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한 달에 한번 회의를 진행했다. 다른 팀도 초대해, 운영 중인 서비스의 이슈를 공유한다. 특정 팀에 의견을 묻거나, 진행을 요청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큰 욕심은 없었다. 자료만 공유하고 회의를 진행하고 싶지 않았지만,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볍게 현 상황을 공유한다는 마음으로 진행한다.
지난달도 마음은 같았다. 그런데 반응이 좋았다. 팀장도 몇 번을 크게 칭찬했다. 칭찬을 자주 하는 분이 아니기에 놀랐다. 꽤 마음에 들었던지, 다른 팀원들도 이번 달 회의에 초대했다. 도움이 될 거니 한 번 들어보라는 의도였다.
사람들의 칭찬이 기억나고, 기대가 느껴지니 부담스러웠다. 지난달보다 더 꼼꼼하게 준비했지만, 준비가 완벽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상태였다. 지난달보다는 준비한 보고서 양도 많고, 준비한 시간도 길었다. 하지만 끝나고 난 뒤 영 개운치가 않았다.
남에게 잘 보이고픈 마음이 너무 커서 그래요. 칭찬받고 싶다는 그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처럼 훌륭한 성인도 오해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부처님처럼 인격이 원만한 분도 당시에는 굉장한 오해와 비난에 시달렸는데 실제로 썩 훌륭하지도 원만하지도 않은 질문자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 칭찬만 듣고 살겠어요. 과욕을 부리기 때문에 피곤한 거예요.
- 책 '야단법석' 중
왜 이번 회의가 만족스럽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면, 지난번 회의를 마치고 스스로 만족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갑작스러운 팀장의 칭찬이 당황스러웠다. 그럼에도 그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 아마 이번 회의에서도 나는 칭찬을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논의할 주제가 이유긴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불렀고, 이번엔 팀원들까지 추가되었다. 내가 이렇게 잘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동안 내가 만족했던 발표들을 떠올려 봤다. 공통적으로 그 발표의 중심이 내가 아닌 청중에게 있었다. 청중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고, 도움이 될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그러면 말과 행동 모든 것이 준비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웠다.
다음 달에는 칭찬받고 싶은 마음을 인정하고, 잘 다독이고 회의에 들어가야겠다.
'그래 나는 칭찬을 받고 싶어. 이 회의를 잘 진행해서 일 잘하는 사람이고 싶어 인정해. 그런데 모든 대화에서 내가 중심이면 오히려 나는 빛나지 않아. 내가 이 회의에서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