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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유영 Aug 05. 2023

학교는 처음이라

   우리 지역의 고등학교 배정 방식은 소위 "뺑뺑이"였다. 성적에 상관없이 가고 싶은 학교의 지망을 써 내면 그 안에서 돌려 배정되는 것이다. 1지망에 갈 수도, 8지망에 갈 수도 있었다. 잘못하면 아주 먼 곳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나는 1지망으로 쓴 학교에 가게 되었다. 


   나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학교를 두고 버스를 타야 하는 거리에 있는 학교를 1지망으로 썼다. 그 학교의 교복이 제일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같은 교회 청소년부에 있는 언니 오빠들이 그 학교에 다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튼 놀랍도록 단순한 이유로 나는 그 학교를 골랐다. 


   제일 설레는 순간은 교복점에 교복을 맞추러 갔을 때였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했던 딱 그 교복이 내 옷이 되었고, 나는 그 교복을 방 옷걸이에 고이 걸어놓은 채 혼자 뿌듯해했다. 근처 중학교 아이들이 입고 다니던 교복이 그렇게 예뻐 보일 무렵이었다. 이제 나도 교복을 입고 여느 학생들과 똑같이 학교에 간다고 생각하면 얼떨떨했지만, 개학 날이 되기 전까지는 그저 좋았다. 



    

    드디어 개학 첫날. 정갈하게 교복을 차려입고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강당에서 입학식을 마치고 배정된 반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담임 선생님을 처음 만나고, 오전 수업을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여직 정신이 없고 긴장한 상태여서, 진짜로 내가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는 현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내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 오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한 때는 점심시간 종이 울린 후였다. 같은 반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저마다 친구를 찾아 나갔다.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친구가 없으면 밥을 혼자 먹어야 하는구나. 날 먼저 챙겨줄 사람이 없고, 당연한 듯 묶여 있는 공동체가 없구나. 나는 어쩔 줄 몰라 한동안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내게 다가왔다. 


    "저.. 혹시 밥 먹을 사람 없으면 같이 먹을래?"


    자기소개할 때 우리 반 1번이던 아이였다. 입학식 때도 옆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났다. 다소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다가 이따금 팩트를 꺼내 얼굴을 두드리곤 했었다. 첫인상은 조금 차가워 보였지만, 나는 일단 혼자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그 아이와 둘이 급식실로 걸어가던 중, 뒤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저기, 나도 같이 먹어도 될까?"


    피부가 하얗고 머리를 포니테일로 높게 묶은 아이였다. 같이 걸어가던 나와 1번 친구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셋이서 처음으로 급식을 먹었다. 급식은 맛있었다. 하지만 나는 밥을 먹으며 또 하나를 깨달았다. 먹고 싶은 만큼 먹기 위해서는 빨리 먹어야겠구나. 

    어렸을 때부터 밥 먹는 속도가 느렸던 나는 밥을 한번 먹기 시작하면 30분, 길면 한 시간은 기본이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 점심시간이라는 개념이 딱히 없었기에 보통 원하는 만큼 오래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처음 만난 두 친구들은 내가 겨우 절반을 먹었을 때 이미 식판을 비우고 있었다. 학교의 점심시간은 제한되어 있었고, 빡빡한 수업들 중 그야말로 꿀 같은 시간이었다. 


    급식을 먹고 두 친구와 함께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아직 어색한 셋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또 다른 아이가 다가와 같이 놀아도 되냐 물었다. 입학식 때 성적이 좋아 신입생 대표로 선서를 한 아이였다. 나는 속으로 신기함을 느끼며 반갑게 인사했다. 이렇게 학교에 간 첫날 세 명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한동안 우리 넷은 늘 붙어 다니며 밥을 같이 먹고 쉬는 시간마다 함께 놀았다. 여자반이었던 1학년 때는 시간이 지날수록 반 아이들이 두루두루 친해졌기 때문에, 점점 함께 밥을 먹고 어울려 노는 친구들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첫날부터 같이 다니기 시작한 세 명의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생일 때나 축하 메시지를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다. 그래도 고등학교에 간 첫날,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먼저 밥을 먹자고 다가와준 친구들이라 특별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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