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 밤 김어준 공장장의 인터뷰를 보면서 깊은 충격과 동시에 해방감을 느꼈다.
정준희 교수가 “당신도 알고 있습니까? 당신의 영향력이 얼마나 거대한지,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사실 전 그런 걸 생각해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습니다.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인지, 영향력이 있는지와 상관없이 그냥 내가 좋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해야한다 또는 이렇게 하면 안된다 이런 말들을 하더라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이 짧은 대답은 내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충만한 수용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존재감을 추구한다.
타인보다 돋보이고, 무대의 중심에 서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어 한다. 사회는 어려서부터 경쟁을 통해 자리와 명성을 얻으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한다.
하지만 나는 점점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존재감보다 더 근원적이고 중요한 것은 바로 존재함이다.
존재함이란, 내가 무엇을 성취했는지와 상관없이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로 충분하다”는 인식이다.
누군가의 박수와 비교가 없어도, 나는 나로서 존중받을 수 있다는 태도다. 그것은 내가 존재함으로써 이미 충분하고 온전하다는 고백이다. 조건 없는 자기 수용, 무언가를 해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전제를 벗어던진 자리. 그 지점이다.
김어준 공장장의 말 속에서 나는 바로 그 ‘존재함’을 목도했다.
그는 영향력이나 성과의 무게를 의식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내가 좋고 나의 내면이 이끄는 대로 산다”라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성취와 평가, 트로피와 상장을 모두 넘어서는 자유로움이다.
그의 답변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존재감이 아니라 존재함으로 서 있는 사람.
비교와 경쟁의 바깥에서, 자기 자신을 조건 없이 긍정하는 사람.
우리는 어쩌면 늘 “존재감 있는 삶”을 꿈꾸느라 더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존재함을 먼저 발견하지 못한 존재감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불안하다.
그러나 존재함을 기반으로 한 존재감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확장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존재함에 의미를 둘 때, 우리는 이미 충분하다.
그리고 그 충분함이 결국 세상에 스며들어, 진정한 존재감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