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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당 Jul 09. 2021

시행착오의 즐거움

지난해 가을에 시작한 초등학교 안전지킴이로 근무한지도 벌써 9개월이 되어간다.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는 오랜 전통으로 많은 학생 수와 축구부가 활약하고 있어서  넓은 운동장과 우거진 숲으로 도심 속 크고 신선한 캠퍼스를 갖고 있다. 아침 일찍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운동장을 걷는 주민들 소리로 고요함에서 깨어나 왁자지껄한 아이들 소리로 하루가 시작된다.


6월 말 장마가 시작되어 매일 비가 내리니 야생화 꽃밭에 물을 주지 않아 편안하다. 아침에는 폭우 속에 교통 지도하느라 신발 안으로 빗물이 들어가 양말이 젖었다. 오후 들어 비는 오락가락하다 그쳤으나 후덥지근하고 불쾌지수가 높아진다.


오늘의 마지막 고학년 교통지도를 끝내고 지킴이실로 돌아와 조금 쉬려고 하는데 2학년생 꼬마 아이 두 명이 찾아왔다.

"아저씨, 느티나무에 신발이 매달려 있는데, 좀 내려주세요"

"응, 신발이 왜 거기에 올라갔는데"

"신발 멀리차기 놀이하다 나뭇가지에 걸려 버렸어요. 우리 선생님이 지킴이 아저씨께 부탁해 보라고 했어요."

"그래 알았다. 같이 가보자."     

대답은 시원스레 하였지만, 워낙 손재주가 부족하고, 몸과 머리를 써야 하는 실용적 일에는 자질이 없는지라 이런 부탁이 오면 머리부터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물론, 몇 개월 동안 연못에 빠진 신발을 찾아 건져준 일, 배수구 빠진 천 원 지폐를 철사로 찍어 올린 일, 난간에 걸린 신발을 사다리로 내려준 일 등으로 조금 노하우가 쌓였지만~ㅎ     


아이 둘을 앞세워 걸어가면서 처리 방법을  골똘히 생각해본다. 사다리, 장대가 어디에 있는지, 높이가 닿을 런지 걱정이 앞선다. 학교 뒤편으로 돌아 연못 옆으로 가니 가장 크고 그늘이 짙은 느티나무 아래 여선생님과 아이들 십여 명이 보인다. 

내가 다가가니 환호를 지르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이들이 가르치는 손가락 끝을 쳐다보니 느티나무 약 10m 높이에 파란 신발 하나가 가지에 걸려 있다. 

신발이 가지 끝 터 머리에 매달려 있어 조금만 흔들려도 쉽게 떨어질 것 같아 보였다. 무얼 하나 던져 신발을 맞추어만 주면 땅으로 바로 낙하할 것이다.   

  

어렸을 때 나무 위 새나 열매 등을 목표물로 돌팔매질을 잘 한 경험이 생각났다. 그 바탕으로 직장인 야구에서도 멋진 실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맞을까 위험해 돌은 던질 수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들이 갖고 있는 우산이 눈에 띄어서 그중 여물게 보이는 것 하나를 빌렸다. 


신발을 조준해 우산을 힘 있게 던졌다. 빗나가 맞지 않았다. 옆 가지의 초록 이파리만 몇 장 떨어진다. 아이들은 숨을 죽이며 보고 있다. 이번에는 우산 끝을 잡고, 나무 위 신발을 향해 우산을 좌회전시키며 세게 던졌다.

"아 그럼, 그렇지"

탁 소리를 내며 날아간 우산은 신발을 명중시켰다. 그런데 신발은 떨어지지 않고, 웬걸 우산이 함께 나뭇가지에 걸려 버린 거 같다. 구부러진 우산 손잡이가 나무 가지에 끼여 신발과 나란히 사이좋게 매달려 있다.

"아이코, 맙소사" 설상가상이다.

우산을 빌려준 아이와 여선생님의 표정이 차츰 어두워진다.


안전 지킴이로서 체통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신뢰감을 줄 수 있는 특단의 무언가를 해야겠다. 

느티나무 아래로 다가가 밑둥치를 쳐다보니 넓고 굵은 가지가 비스듬히 뻗어서 올라가기 쉽게 보였다. 

망설임 없이 일단 나무를 타고 올라다. 의외로 오르기가 쉬울 하다. 

오래된 아름드리나무라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한평생 나무에 잘 올라가 본 적이 없는데도 이렇게 나무를 잘 타는 스스로에 놀랐다. 순식간에 땅 위 아이들이 작게 보인다. 약 10m쯤 올라온 거 같다. 

밑에 아이들이 박수와 함성을 보내 준다.     

옆으로 손을 뻗으니 신발과 우산이 매달려 있는 큰 가지가 손에 잡힌다. 큰 가지를 두어 번 세차게 흔드니 신발이 툭하고 떨어졌다.

아이들과 여선생님이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그러나 우산은 아무리 흔들어도 Y자 가지에 손잡이가 꽉 끼여 쉽게 빠지지 않는다. 후덥지근하여 땀이 비 오듯 한다. 옷에 땀이 흥건할 때까지 수십 번을 계속 흔들어도 우산은 요지부동이다.


너무 힘주어 흔들다 보니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이러다가 이 높이에서 가지가 꺾어져 내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안전 지킴이의 체면 손상뿐 아니라 많이 다칠 것 같다.     

밑에서 여선생님도 걱정이 되는지 "남는 우산 하나를 아이에게 주면 되니 그냥 내려오세요"라고 외친다.

아쉬웠지만, 올라갔던 자세를 역으로 다시 나무둥치를 잡고 원숭이처럼 내려왔다.


내려와 쳐다보니 매달린 우산이 바람에 많이 흔들리고 있다. 나중에 혹시 아이들 머리 위에 떨어져 다칠 수도 있으니 이대로 갈 수가 없다.     

공구 실에 가서 알루미늄 접이 사다리를 무겁게 들고 왔으나 높이에 미치지 않아 도로 갖다 놓았다. 긴 장대가 좋을 것 같아 학교 안을 샅샅이 돌아 다 보니 철로 만들어진 무거운 장대가 있어 가져 왔다. 무거운 철장대 뒤쪽을 여선생님이 함께 들고서 마치 밤송이를 털듯이 나무 가지를 여러 번 내리쳤다. 툭 하고 우산이 떨어졌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고 땀으로 뒤범벅이지만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였다. 늘 하는 교통봉사보다 기분이 짜릿하다. 스스로 아직은 쓸모 있는 존재라는 자부심도 생겨난다. 

나 자신 이렇게 나무를 잘 타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우산 던질 필요도 없이, 곧장 나무로 올라가 더 빨리 해결하였을 텐데! 

본의 아니게, 아이들과 여선생님을 귀찮게 하였지만, 다양한 문제 해결 방법을 모두 보여 주었던 것도 아이들에게 작은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아이들 민원이 많이 들어오길 기대해 본다. 보잘것없는 옛 경험을 총동원하여 다양한 시범으로 많은 착오를 저질러 주겠다.     

나의 뒤늦은 학습과 아이들의 즐거움을 위해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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