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당 Jul 09. 2021

유쾌한 인사

퇴직 후 초등학교에서 첫 안전지킴이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교문 앞에서 등하교 교통지도를 하고 있으면 유난히 인사를 잘하는 3학년 여학생이 있었다. 하루에 몇 번을 보더라도 한 결 같이 얼굴에 미소를 지우며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라며 밝게 웃어주었다.      


등하교 시 그 아이를 못 보던 날이면 무언가 허전하고 섭섭해 두리번거리며 찾을 정도였었다. 키는 크지 않았으나 늘 많은 친구들과 왁자지껄하면서 누구에게나 변함없이 인사를 잘하는 쾌활한 아이였다.   

  

당시 나는 퇴직 후의 낯선 환경과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모든 것이 서먹하고 낯설고 힘든 시절이었기에, 그 아이의 밝은 인사는 내게 큰 기쁨이었으며, 이 일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 나가는데 큰 힘이 되었다. 오죽했으면 집에 와서도 그 아이 얼굴이 눈에 선명하게 떠올랐으며, 내일이면 만나게 될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한 번은 아침 일찍 친구들과 함께 등교를 하면서, 또 큰소리로 인사를 하기에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 오늘 일찍 오는구나?"
"예! 아저씨, 내일 아침 후문에서 하는 '등굣길 댄스공연'을 준비하려고 친구들과 연습하러 일찍 왔습니다."
"그래, 너는 인사도 잘하고, 댄스도 잘하고 어른이 되면 참 좋겠구나."

"ㅎㅎ, 저는 나중에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다음 달에 00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어 이제 못 뵐 것 같습니다." 

 "아니, 내게 그렇게 인사를 잘했는데, 전학을 가면 정말 섭섭하구나! 그곳에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꼭 아나운서 되길 바란다. 다음에 TV 보면서 확인해 볼 테다."

"예! 전학 가더라도 자주 놀러 올게요!"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고마운 인사였기에, 나이 60이 지나서 새삼 인사의 위력과 중요함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오죽했으면 직장을 준비하는 아들에게도 '인사 하나만 잘해도 사회생활은 참 쉬울 것이다'며 그 아이에 대한 나의 호감을 얘기해 주곤 했었다.    


사람과 사람의 모든 만남의 시작이 인사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며, 거기서 시작된 존중과 그리움이 이어져 새로운 관계와 질서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등하굣길 교통지도를 하면서 주변의 많은 사람과 인사할 수 있는 이렇게 좋은 기회와 기쁨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우리 초등학교, 유치원 선생님과 아이들 및 학부모, 그 외에도 이 부근을 지나는 많은 분들과도 인사를 나누게 된다. 아침 교통지도 시 건너오는 학생, 선생님들은 마주치며 인사를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출근하는 분도 파란불이 올 때까지 옆에서 자연스레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인근 아파트로 출근하는 환경미화 아주머니들, 편의점 주인, 병원의 직원, 운동하는 주민, 반대편 초ㆍ중학교에 다니는 선생님, 학생들과도 종종 인사를 나누게 된다.


반대편 초등학교에 다니던 2학년 여학생도 건널 때마다 인사를 나누다, 올해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와 나를 놀라게 한 후 더욱 친한 사이가 되었다. 한 번은 출근길 선생님이 모퉁이를 돌아오는 걸 보고 목례를 했는데, 그 중간에 서있던 아주머니가 자기에게 하는 줄 알고 덥석 고개를 숙였던 것을 계기로 그 아주머니와는 지금까지도 아침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등하교 시 복잡한 사거리에서 인사를 나누다 보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새롭게 아는 사람으로 관계가 시작되기도 하는데 내가 서있는 교문 앞 사거리가 이렇게 나만의 즐거운 사교장이 된다.     


좀처럼 인사를 받지도하지도 않는 아이들이 가끔 있다. 나의 ‘안녕, 굿모닝, 어서 와라’ 하는 인사말을 들으며 내 코 밑을 지나치면서도 고개 한번 숙이지 않는 아이도 있다. 그런 아이들에겐 더 크게 눈을 맞추며 큰소리로 인사를 하게 되며 결국 아이도 마지못해 인사에 답하곤 하는데, 이는 인사에 익숙하지 않은 오랜 습관 탓이리라.


사람의 속마음이 있는 그대로 표현된다면, 이 세상은 온통 갈등과 증오의 싸움판이 될 것이리라. 처음 교통지도를 할 때 내 마음속으로 아이들의 행동을 나누게 되었다. 인사를 잘하는 아이, 조금 소극적인 아이, 절대 나를 외면하는 아이 등이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유형에 따라 나도 대응법을 달리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것이 잘못이란 걸 알았으며, 내 마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일정해야 됨을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사실 하나를 더 깨우치게 되었다. 누구나 내가 먼저 웃으며 인사하면 그들 모두 기분이 좋아 호응하게 되며,  '안녕' 보다 '안녕하세요'로 높여주니 아이들도 더 많이 화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경어를 쓰니 더욱 부드러워 자연스럽게 들리는가 보다. 역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모양이다. 


엄마가 아이 손을 잡고 등교하면서 아이가 인사를 안 할 때에 '인사드려야지' 하며 아이 머리를 손으로 숙여 주는 훌륭한 엄마들도 많으며, 그 후부터 아이들은 스스로 인사를 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가정ㆍ학교ㆍ사회 모두의 자상한 관심과 교육일 것이지만,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지 이렇게 작은 공공질서조차 무너지는 경우가 많은 요즘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사가 타인에게 유쾌 감을 주는 도덕으로서 질서 유지의 첫출발이 될 것이므로, 가장 어릴 때의 교육이 절실할 것이다.     


얼마 전 고인이 되신 어머니도 옛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갓 시집와서 시댁 할아버지께 인사하러 가셨는데, 가기 전 아버지께서 "귀골이 강녕하신지요"라고 인사를 하라며 귀 띰을 받았었는데, '귀골'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한참 장고 끝에 "해골이 강녕하신지요"’라고 했다는 해프닝도 들었다.      

어찌 귀골 아닌 해골이라고 분명히 들었어도 불쾌한 마음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웃음 가득히 인사하는 며느리의 실언에 어찌 웃지 않을 시아버지가 어디 있을까. 길고 어려운 말 보다 미소와 웃음으로 화답하는 밝고 선한 마음이 최상의 선이 아닐까. 긴장 속에 폭소를 자아낸 그 자체가 유쾌함이고 도덕이며 예의일 것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도 끊임없는 배움의 연속이며, 나 또한 환갑이 지나고 나서야 초등 3년생에게 인사의 묘미를 배우고, 새삼 그 효력을 느끼면서 또 즐기게 되는 것이리라.     



이전 01화 안전지킴이가 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