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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당 Jul 09. 2021

자율성

전형적인 가을의 맑고 높은 하늘이 지속되는 참 좋은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오늘 등교 길 정문 앞에서 한 아주머니가 학원 홍보 플라스틱 부채와 전단지를 아이들에게 나눠 주는걸 내가 막으면서 다툼이 벌어졌다.

"학부모 민원도 있고 아이들에게 홍보물 나누어 주는 것은 안 됩니다."

"아침에 용돈 좀 벌려고 알바를 왔는데, 좀 부탁을 드릴게요."  

"함께 온 학부모에게 나누어 줄 수는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못주도록 하고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전교생이 학원 부채와 전단지를 가지고 각자의 교실로 입장하여 흔들고 버리게 되면 정말 수업 분위기가 엉망이 될 것이다.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전단지 나눠 주는 것을 금지시켜 달라고 학교로 민원이 몇 번 들어왔으니, 단속하는 저도 이해 좀 해주시고, 제발 철수해 주세요!"     

몇 번의 티격태격 후 겨우 되돌아가면서 또 한마디를 남긴다.

"그렇게 야박하게 굴지 마세요! 딴 학굔 다 괜찮은데!"     


모두가 잘 살자고 하는 일이며, 경제를 살리는 일이라 생각하고 묵인해주면 되겠지만, 일부 학부모의 민원도 있으니 참 어렵다.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이 힘든다는 걸 알면서도 슬퍼지는 하루다.     


아침보다 오후에 머리가 더 아파온다.

5교시 종료 후 저학년 하교 시간이 되면 교문 주위는 차츰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다. 저학년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 학원의 차와 강사들, 학습지 등의 홍보물 배부 자둘, 포교 활동하러 온 종교단체 사람들이 교문 주위를 요란하게 북적거리며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가운데 학습지와 종교단체의 학생 유치 활동이 가장 치열하고 난무하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하여 물품 공세와 사행성 등의 많은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매주 화요일 오후엔 할아버지 두 분이 청소 집게를 들고 교문 주위 쓰레기를 줍고 난 뒤, 아이들에게 초코파이와 물티슈를 주며 종교 모임에 나오도록 권유를 하는데, 이들은 비교적 모범적이라 볼 수 있다.

어떤 아주머니들은 플라스틱 피리를 불면서 아이들에게 피리를 공짜로 주는 걸 미끼로 길에서 아이들 한 명씩 잡아두고 그들의 종교적 교리를 하염없이 설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노골적인 야바위판을 벌이기도 한다. 과녁에 상품 이름을 적어놓고 다트를 던져 맞추게 하여 상품을 공짜로 주면서 선전을 하는데 아이들이 제일 선호하여 줄지어 서서 기다릴 정도이다.     

이렇게 사행심을 조장하거나 선물을 미끼로 선전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화가 나 크게 목소리를 높여 싸울 때가 많다. 끝내 경찰을 부르겠노라 하면 그들은 스스로 정리하고 떠나지만 마음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수업을 마치고 한낮의 땡볕의 하교 길에서 목이 칼칼해질 때 나누어주는 사탕과 음료수, 초코파이 맛도 꿀맛일 것이며, 물티슈도 여러 가지 청소에 필요한 것일 테니, 견물생심이라고 아이들의 마음과 호기심을 어느 정도 자극할 것이리라 생각된다.      

필요악이란 말처럼, 그들의 궁극적인 홍보 목적인 학원과 종교단체의 유익함도 있을 것이며, 홍보물 또한 이렇게 요긴하게 사용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올바르지 않은 수단과 방법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강요보다는 아이들의 자율적 선택과 판단을 하도록 올바르고 합리적인 내용을 제시해야 될 것이다. 물론 그들도 각자의 ‘생업을 위해’ 아니면 ‘아이들 위해'라고 말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아이들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우리 어른들 스스로 깨닫고 변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은 뿔피리 야바위를 미끼로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을 하는 사람들을 나쁜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표정과 말투만으로도 금방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천진무구함을 지녔으니까 말이다.     

모호하고 어렵고 복잡한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보다, 단 하나 지킬 수 있는 확실한 약속을 하는 정치인이 표를 얻듯이 아이들도 간결하고 확실한 것을 신뢰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넘치는 보호보다 아이들의 지혜와 가치를 믿고 각자의 자율적 선택에 맡겨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등교 때 건널목을 아슬아슬한 걸음으로 늦게 건너오는 아이가 있었다. 지금은 걸음도 빨라져, 혼자 등하교를 잘하고 있는데, 가끔은 엄마가 건널목까지 와서 건너는 걸 보고 되돌아갈 때가 있었다. 아이는 건너온 후 되돌아가는 엄마에게 "사랑해~ 엄마!" 하며, 오래 동안 손을 흔들며 고마움을 표하는 걸 보았다. 진정 스스로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가르침이리라.


1학년 내내 아침마다 교문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가 있어서 엄마가 교실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그 후 단짝 친구가 생긴 후에는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친구가 오면 손을 잡고 들어가는 아이였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그 아이가 줄넘기하는 걸 처음 보았는데 2단 뛰기를 빠르게 30번 넘게 하는 실력자였다. 그곳에서 줄넘기하는 아이들을 모두 모아서 2단 뛰기 오래 하기 시합을 시켰더니, 그 아이가 최고였다. 아이의 우승을 축하하며 손을 들어주고 다른 아이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그 후부터 아이는 더욱 밝아지고 친구도 많아졌으며, 나를 피하지도 않고 인사도 잘하였다. 


이어령 박사도 '모든 사람은 천재로 태어난다.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 천재성을 학교에서는 선생이 덮어버리고, 직장에서는 상사가 덮어버린다. 360명이 한 방향으로 뛰면 1등에서 360등까지 매겨지지만, 각자 뛰고 싶은 방향으로 뛰면 모두가 1등이 된다.' 고 말씀하셨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조금 모자라는 지능을 가진 주인공이지만, 어머니의 교육으로 따뜻하고 착한 마음을 유지하며 탄탄한 인생길을 힘 있게 달려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누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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