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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당 Jul 09. 2021

2/3 등교

오랜만에 아이들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교문 앞이 떠들 썩 한 아침이다. 코로나 이후 학생들이 원격수업에서 1/3 등교를 번갈아 하다, 2/3 등교를 하게 되니 활력이 넘쳐난다. 따라서 내 마음도 분주해지지만, 아이들이 반가울 뿐이다. '오랜만이네. 빨리 건너 와라. 곧 빨간불이다. 길에서 휴대폰 보면 안 돼요.' 오랜만에 낯익은 고학년 생들과 눈을 맞추기 바쁘다.     


그동안 1, 2학년 아이들 위주로 늘 등교를 하였지만, 입학 후부터 마스크를 쓴 탓에 얼굴도 잘 모르고, 이야기도 많이 한 적이 없어 아쉬웠는데, 고학년 생들이 많이 오니 옛 친구를 만난 듯이 기쁘다. 오솔길에서 아이들과 하이 파이브를 하는 교장선생님의 목소리와 표정도 쾌청하다. 출근하는 여선생님들의 밝은 미소와 경쾌한 발걸음도 싱그럽게 느껴진다.    

 

바쁜 와중에 건너편에 여중생 교복을 입은 학생이 길을 건너오더니, 내 앞에 인사를 하며 마스크를 내린다. "안녕하세요." 

"그래, 오랜만이다." 학교 다닐 때 학생회 임원을 했는데, 벌써 중 2가 되었단다. 4학년 때 내 명찰을 흔들며 이름을 몇 번 불러보더니, 자기 이름도 기억하라며 알려준 학생인데, 이사를 하게 되어 앞으로도 이 길로 중학교를 가게 되니 아침마다 가끔 뵙겠단다.   

  

조금 후 반대편 남자 중학교로 가는 덩치 큰 중 2년생이 아침부터 브라보콘을 먹으며 내 옆으로 온다. 

"밥 안 먹었니?" 

"예 그래서 두 개째 먹고 있어요." 그리고 뒤에 친구들을 돌아보더니 

"야 너희들 모르나, 인사해라. 우리 학교 다닐 때 경비 아이가?" (자기는 작은 소리로 내게 안 들릴듯하지만 주변에 쩡쩡 울린다.) 길을 건너가면서도 크게 "수고하세요" 하며 간다.

(아마도 '지킴이 선생님'이라 부르도록 들었을 텐데~, 아무렴 어때, 아는 척 인사해주는 것도 감지덕지다.)     


내 옆으로 키 큰 6학년 여학생이 지나 가는데 못 알아볼 뻔했다. 내 키를 훨씬 넘어 어른 키가 다 되었다.

"어 벌써 6학년이지?" 

"예 ㅎㅎ" 

반대편 초등학교 2학년 다닐 때부터 나와 인사를 나누다가 우리 학교 3학년에 전학을 와 더욱 정도 들어서 만나면 한 두 마디 얘기도 자주 나눈 사이였는데, 요즘은 쑥스러운지 못 본 척 지나치다가 눈이 마주치면 함박웃음을 지우며 해맑게 웃어준다.     


또 4학년 남자아이는 길을 건너와서 내게 인사하려고 한참을 주춤하고 서 있다. 1학년 입학 직후 공부하기가 싫어져 한 시간만 수업하고 집으로 가버려서 교내 곳곳을 한참 찾았던 기억이 난다. 2학년 때부터 축구에 몰입하더니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에서 3학년 형들과 늘 시합을 하였다. 가끔 심판을 봐주기도 했는데 지금은 축구부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성실한 아이로 성장했다.    


(이 아이의 여동생은 2학년인데 말수는 적어도 인사는 잘하였다. 오래전에 작은 유리함 속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잡종의 벌레와  빵조각이나 풀잎 등을 함께 넣어 등하교 시에 들고 다녔다. 

"야 이거 처음 보는데 무슨 벌레냐?"

"쥐며느리예요."

무당벌레,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를 키우는 아이는 간혹 보았지만 이건 처음 보았다. 겉으로도 지저분한 벌레 같아 보였기에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집에 바퀴벌레가 많은데, 잡아서 네게 주면 되겠니?" 하였더니, 아이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면서 

"예! 정말 고마워요!" 하면서 엄청 반갑게 대답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바퀴벌레를 전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다. 예전에 그렇게 많았던 우리 아파트 바퀴벌레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요즘 보이질 않으니 말이다. 

바퀴벌레가 어떤 병균을 옮기는지 모르지만, 곤충과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위해서는 조심해서 키우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야 이로운 곤충과 동물도 먹이가 생겨 잘 살아갈 것이며, 결국 우리 지구의 자연환경이 균형을 이루고 우리도 안전할 테니까 말이다.)


잠시 생각에 빠졌었는데, 누군가 내 등 뒤에서 '왁' 하며 소리를 질러 깜짝 놀라 쳐다보니, 4학년 여학생이 반갑다는 표시로 나를 놀래게 했단다. 교내 어디서라도 나를 만날 때면 한 손을 높이 쳐들며 크게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하는 유쾌한 아이다. 나 또한 손을 높이 쳐들어 큰소리로 "그래~ 안녕" 하면서 아주 친근한 동지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학생들이 다 들어간 후 교문이 설렁해지고 교통지도가 막바지쯤이면 마지막으로 4학년 남자아이가 모퉁이를 돌아 건너편에 척하고 나타난다. 마침내 교통지도를 끝낼 시간이 되었음을 확실히 알게 된다. 이 아이의 늦은 출현은 1학년부터였으며, 최강의 지각생 고수로 자리해 지금은 시계 초바늘보다 정확히 나타난다. 

진정한 고수란 아무리 늦어도 교문 안으로 직행하지 않고, 여유 있고 당당하게 00 문구로 가서 필요한 것을 쇼핑할 수 있는 느긋함과 배짱을 지녀야 할 것이다.ㅎㅎ   

  

학교 앞 교차로는 항상 어른들의 모범이 필요한 곳이다. 출퇴근 시간으로 바쁘지만 간혹 신호를 무시하고 무단 횡단하는 어른들이 있는데, 무심결에 초록 불인 줄 알고 따라 건너는 아이들의 사고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갓 입학한 1학년 아이들 중에는 빨간불에 잽싸게 건너는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들도 종종 있다. 이럴 때는 담임선생님께 알려주거나 내가 주의를 주면서 다음부터 절대 하지 않도록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받아두기도 한다. 

신호등을 지키는 것이 법을 지키는 준법이라는 생각을 갖고서, 어른들이 모범적으로 질서를 지켜주어야 할 것이다.


자동차로 데려주는 학부모도 1차선 길의 한가운데에 아이를 위험하게 내려주는 분도 있다. 

"다음부터 안전하게 차를 보도 옆에 붙여서 아이를 내려주세요." 하면 

"주변에 차가 없잖아요, 내 아이인데,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요." 한다. 더 이상 할 말을 잃지만, 도로 한복판에서 차문을 열고 내리는 이 행동이 아이에게 얼마나 오랫동안 습관화될까 우려스럽다.      


초등학교는 역시 아이들이 북적거리니까  제 맛이다. 오늘 점심시간은 아이들의 아우성이 더욱 크게 들릴 것이다. 나도 어느덧 소음에 길들여져 조용한 곳 보다 더 점심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체질로 바뀌어 버렸다. 조리사 아주머니들의 "학생들 옵니다!"라는 말이 마치 쳐들어오는 적군을 대하듯 식당은 곧 소음의 장터가 될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장난치는 소리가 복합되어 밥과 반찬이 어디로 넘어갔는지 몰랐으나, 지금은 나만의 노래 리듬으로 맞춰져 오히려 유쾌한 식도락이 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우리 초등학교는 축구부가 있어 넓은 인조 잔디 운동장과 나무와 숲이 많아 오솔길도 있는 멋짓 캠퍼스이다. 5월에 보리수, 7월엔 무화과도 열린다. 나무에 물 주고 잡초를 뽑을 때도 있지만, 보리수 열매를 따 먹는 재미도 솔 솔하다. 새 콤 텁텁한 보리수 열매를 나는 이곳에서 처음 맛보았다. 내가 아무리 많이 따먹어도 세 그루에서 충분히 열매를 맺기에, 아이들이 보는 교육용으로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는 아침에 지저귀는 새소리와 운동장을 걸으며 이야기하는 주민들의 소리로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외부인 교내 출입이 금지되어 아침은 고요하기만 하다. 

어쩌다 유모차에 의지해 내 눈치를 보며 운동장을 몇 바퀴 도는 할머니도 계시지만, 마음은 참 답답하실 것이다. 이 할머니는 학교에 출입금지 임을 알면서도 내가 운동하도록 해주었다면서 그 고마움으로 지킴이실에 사과를 두 개 두고 가셨는데, 하루빨리 예전처럼 마음껏 운동할 날들이 빨리 왔으면 좋으리라.

    

2/3의 등교만으로 이렇게 기쁘고 활기찬 풍경이 만들어지는데, 2학기엔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맞아서 집단 면역이 되어 아이들도 예전의 학교생활로 복귀하여 일상을 누리길 기대해본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면서, 꽃과 열매와 나무속에서 몸과 마음이 무럭무럭 성장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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