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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당 Jul 09. 2021

삶이란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 물 위에 떠가는 꽃잎처럼 우리 모두 고요히 고요히 어디로 흘러만 가고 있을까.     

직장에 30년 넘게 근무를 하고 퇴직 후 이곳으로 온 지 4년이 되어간다. 권태와 무위도식이 힘들어 여기로 왔지만, 처음 안전지킴이 지원을 하여 면접을 보고 합격 후 근무를 시작할 때의 초조한 심적 갈등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내게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일들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보이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즉 일의 내용보다 스스로의 체통과 위신에 관한 것이 전부였다. 나의 근무실이 본관 어딘가에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정문 경비실인 사실에의 실망, 면접 때 화단 물 주기와 잡초 제거의 장담과 후회, 한편 교문 밖 청소와 출입문 개폐와 교통지도 등 모든 게 내게 큰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차량 진입이 있을 때마다 후문을 내가 열고 닫았는데, 이 일도 창피하게 생각된 일 중 하나였지만 차츰차츰 누구에게나 전화로 교문 열어 달라는 전화가 그렇게 달콤하게 들려지기 시작했었다. "예, 5분 후 도착이라고요, 바로 열어 두겠습니다." 시시하게 여겨진 일들이 주요 업무로 점차 바뀌어져 갔던 것이다.     


지금은 교통지도가 최고 즐거운 일이지만 처음에는 얼굴을 가리는 큰 모자를 쓰고 했으며,  차츰 천진난만한 아이들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그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한 하루 일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을 찾게 된 것이리라. 

한 친구는 내가 교문 밖을 청소한다고 하니, 사람들에게 부끄러워 어떻게 하느냐고 되묻기도 하였다. 삶에서 도전이란 거창한 것이 아닐 것이며, 이러한 일들을 하나씩 처리해 가면서 느끼는 성취감이 아닐까? 

 

생활의 방식도 능동적으로 바뀌어져 갔다. 근무하는 곳이 정문 앞 교차로였으니, 교직원 학생을 포함하여 지나다니는 분들 모두가 이웃이고 동료로 생각하여 점점 인사를 나누는 사람도 늘어났다. 어디서나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내가 먼저 안녕하며 밝게 웃어 주었으며, 궁금하지 않은 것도 실없이 물어보며 친근감을 표해 주었다.    


당시 내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다른 초등학교 2학년 여자 아이 두 명의 학교, 학년, 몇 반인 지를 잘 맞추어서 아이들은 매우 신기해했다.

"어~ 안녕."

"예 안녕하세요."

"학원 마치고 집에 오는구나?"

"맞아요, 어떻게 아셨지요."

"그 정도는 알 수 있지! 나는 너희들 다니는 학교와 학년 몇 반 인지도 다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에이~ 설마, 맞춰보세요."

"아마도 00 초등학교 학생이겠지?"

"아 맞아요!"

"2학년일 테고, 그리고 반은 1 반일 텐데!"

"우와 대박! 그럼 옆에 친구는요?"

"친구는 아마 2 반일 걸!"

"와 정말 어떻게 아셨는데요!ㅎㅎ"


서당 개 3년이면 풍월도 읊는다 했으니, 내게도 그동안의 안전지킴이로서 눈치와 경력으로 꽤 신통한 힘이 생겨났었나 보다.      


세월이 흐른 지금, 내가 이 일을 못했다면 내 삶은 정말 내용 없는 빈껍데기뿐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던 바닥끝에 닿아보지 않고는 참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을 테니까!    


당시 서울의 고교 동기회장이며 장군으로 전역한 친구가 동기회 기금을 확충하려고 부회장, 총무 두 명과 함께 일주일간 대학교의 조경 일용직으로 일하러 갔던 얘기도 좋아 보였으며, 마침 그 대학교 총장이 탄 차가 지날 때 일하다 말고 힘차게 거수경례를 했다는 이야기도 내게 신선한 영향을 주었다. 일에는 귀천이 없지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각각 느낌이 달라질 테니까. 스스로 낮추고 내려놓을 수 있는 삶이 진정한 용기가 아닐 런지.     


매일 7시에 출근해 아이들이 등교하는 오솔길 문을 열어두고 주변 청소로 하루를 시작한다. 8시간 근무로 오후 일찍 퇴근하니 한결 여유 있는 하루다. 토, 일요일은 산행이나 온천천 산책을 하면서, 또 여름, 겨울방학 때는 해외로 여행도 빠짐없이 다녔다. 이렇게 새 일상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작지만 소중한 행복감으로 차츰 일에 긍지와 보람을 느끼게 된 것이리라.  

  

이 짧은 근무로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새벽 일찍 나오게 되니 부지런한 자의 삶도 보이고, 그들과 함께 움직인다. 단체급식을 준비하는 조리사, 새벽의 환경미화원, 아파트 미화 용역원, 요구르트 아주머니 등과 만나며 그들과 나누는 인사는 참 따스하고 정겨워진다. 

  

나른한 오후 하교시간 교통지도를 할 때면, 아이들도 점심 후 공부도 마쳐서인지 마음이 풀어져 내 목걸이 명찰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을 걸어오는 아이도 있다.

"이 사진은 누구세요? 혹시 아들인지요?" 5년 전에 사진을 찍은 나라고 대답을 하니,

"왜 갑자기 흰머리가 나서 할아버지가 되셨나요?" 또 되묻는다.

"그래, 늙는 것은 금방이란다. 그러니까 어릴 때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해야 한단다."    


'歲月不待人'(세월부대인)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시간은 늘 앞에서 우리를 이끌어가며 압박하고, 우리의 삶은 늘 시간에 예속되어 분주하다. 기대했던 약속과 만남은 늘 새벽녘의 가로등처럼 불빛을 잃어가지만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아침에 복지관에서 봉사하러 오시는 고령의 어르신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게 남겨진 삶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끊임없는 노익장의 자세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정문 앞 좌우 느티나무 아래는 정자가 있어 사시사철 쉬는 곳이며, 이곳 단골 할머니들도 이제 친한 사이가 되었다. 하루의 햇살이 많은 오후 두세 시경이 되면 창백한 얼굴의 할머니 한분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서 교문 앞 양지바른 곳에 앉으신다. 햇살같이 밝은 아이들의 재잘거리며 하교하는 모습을 한참 즐겁게 구경하고 있다.      


삶이란 내 마음의 보석처럼 새겨진 예쁜 그림들이 아닐까. 스쳐 지나가는 세월도 사람도 풍경도 잘 담아 둔다면 아름다운 석양을 맞이하리라. 스스로 아무 쓸모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만큼 슬픈 일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로 거듭나도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물어가며 인생 후반의 그림을 그려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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