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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당 Jul 09. 2021

一雨一芽(일우일아)

안전지킴이를 시작한 지 3년이 지났어도 알고 있는 아이들 이름이 열 명 정도다. 이름을 계속 기억할 자신이 없기에 잘 묻지도 않을뿐더러, 이름을 알아도 여러 명 있는데서 불러주는 것도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내 명찰을 흔들며 자기 이름도 기억해야  한다는 아이, 늘 동생이 하교했는지를 물어보는 자매, 임원에 출마해 떨어져 울컥한 아이, 도로를 무단 횡단한 아이, 내게 편지를 보내준 아이 등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름을 알고 모르고 에 따라 친밀감이 달라지는 건 아니며, 얼굴만으로도 친한 아이들이 꽤 많이 있다.                    


주로 간단한 말이라도 나눌 수 있는 건 하교시간 교통지도 시 초록 신호등을 기다리며 함께 서 있을 때 몇 마디를 나누게 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아이들이 많다.  

                  

A라는 4학년 남자아이는 나를 볼 때 면 늘 달리기 시합을 도전하며, 그 외의 주변 근황을 세세히 전해 준다.   

A는 맨 처음 반 친구가 운동장에서 코피가 났을 때 닦아주려고 티슈를 가지러 혼신의 빠른 속도로 뛰어가기에, 뒤에 내가 달리기를 한번 요청하면서 친해졌다.     

운동장에서 50m 경주를 여러 번 했는데 어떤 때는 일부러 져주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간발의 차로 이기기도 하여 최종 승부를 기대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늘 대화는 단 둘만이 아는 비슷한 내용이다.     

"오늘 한번 대결할까요?"       

"좋 치, 너 자신 있니!"       

"예 지난겨울 방학 때 연습 많이 했어요."       

"그래~ 점심시간이나 수업 마친 후 운동장에서 만나게 되면 한판 붙자."       

"예~  알았어요."      

"이번 4학년 때 반장은 안 하니?"       

"예 안 해요. 다음에 전교 회장도 출마할까 생각했는데, 그러면 엄마가 귀찮아진다며 하지 말랬어요."     

"그래, 공부와 운동을 열심히 하면 다 잘 될 거야. 아마 6학년 때쯤은 달리기를 내게 이길 수 있겠지. 하지만 나도 자신 있으니 시간 날 때 연습 많이 하여라."             

       

B라는 4학년 남자아이도 지금은 빠지지 않고 인사를 잘하는데, 예전에는 내 코앞을 수없이 지나다니면서도 인사를 전혀 하지 않았었다. 3학년 초쯤 어쩌다 내게 인사를 한번 하기에 반가워서     

"야, 너 이제 4학년 올라가지?"       

"아닌 데요 3학년 됩니다."      

"아 그래~, 이렇게 인사도 잘하고 씩씩한 3학년도 있었구나. 난 정말 4학년인 줄 알았다."     

"ㅋㅋ" 그 후로 인사를 안 빼먹고 누구보다 큰소리로 인사한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야 오랜만이다."      

"예, 안녕하세요!"     

"너 이제 6학년 올라가지?"      

"아녜요, 4학년 됩니다."      

"그래, 이렇게 인사 잘하는 아이가 4학년밖에 안 된다니 참 이상하구나! 교장선생님도 뭘 하시는지, 이렇게 훌륭한 아이를 6학년으로 곧장 올려 보내지 않고. ㅎㅎ"      

그 후 나를 볼 때마다 농담인 줄 알면서도 "ㅋㅋㅋ" 웃으며 흡족해한다.  

                  

C라는 4학년 여자 아이는 아주 통이 크고 보스 기질이 있다.      

지난겨울 방학식 날  00 문구에서 구입한 새콤한 과자를 주 길래 내가 괜찮다고 했더니,     

"아이 참, 드시라면 드세요!" 하며 봉지를 통 채 내 주머니에 넣고 가버린다.      

작은 키에 왜소하지만 거부하기 어려운 강한 권유다.     

며칠 전에는 점심 급식으로 나온 꽤 맛있는 국화 약과를 먹지 않고 또 내게 준다.      

내가 사양하니, 자기는 괜찮으니 줄 때는 조용히 드시라는 밝고 강한 어조로, 마치 친한 동생에게 강제로 권하는 듯하다.     

표정을 보면, 자기는 이런 하찮은 물욕에 연연하지 않으니, 할아버지 께서나 맛있게 드시라는 투다. 아마 내게 동정과 연민이 느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며칠 전 운동장에서 C가 남자아이 B의 옷을 잡아끌고 가기에,      

"야~ 너희들 같은 반이냐? 그리고 너는 왜 남자 친구를 괴롭히나!"      

 B가 말하길      

"예! 맞아요. 건데 애는 이번에 반장 부반장에 다 떨어졌어요.~ㅋㅋㅋ" 웃으면서 끌려가고 있다.         

 

늦은 하교시간인데 저 멀리 C가 혼자서 운동장을 나오는 게 보인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서 지킴이실 창문을 열고 인사를 한다.    

"야~ 잘 가라"      

"예~ 할아버지", 나도 꼭 친구에게 하는 다정함이 느껴진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또한 나의 자발적인 인사라기보다 그 아이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내 마음이 강제되어서 인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ㅎ)          

        

4학년 D라는 여자아이는 등하교 시에 수첩과 연필을 손에 꼭 쥐고 다닌다.     

걸을 때 바른 자세로 몸을 꽃꽂이 세우고(마치 북한 최고지도자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꽃꽃장수처럼), 새까만 눈이 맑게 보이는 아이인데, 늘 수첩과 연필을 들고 내 앞에서 말을 할 듯 말듯하며 혼자 지나간다.      

수첩에 무엇을 적어 두는지 참 궁금하여, 한 번은 내가 "그 예쁜 수첩에 뭐가 있는지 보여줄 수 있겠니?" 하고 물으니, 인형과 꽃을 그린 그림을 보여 주면서 곧 어울리는 글도 적어 넣을 예정이란다.      

"그래, 멋진 시화집이 만들어지겠구나!" 완성되면 그때 한 번 더 보여 달라고 했으나 아직 연락이 없다.     

00 문구에서 군것질이 아닌 예쁜 수첩을 사고 그곳에 좋은 글, 그림을 채워 나가는 그 마음이 참 고울뿐이다.                    

이렇게 잠시 짧은 대화로 오고 가지만 아이들도 나를 반가워하고, 나 역시 소소한 기쁨으로 기다려진다. 모두가 4학년인걸 보니, 호기심과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이때인가 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으로 볼 때, 5, 6학년으로 접어들면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 가는지 이런 만남도 이전 같지가 않더라는 것이다.      

이 아이들도 고학년이 되면 예외 없이 나와 인사하고 대화하는 것이 귀찮고 시시껄렁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키가 커고 목소리가 굵어지더라도 지금처럼 누구에게나 유쾌함을 주는 순진무구한 마음이 지속되면 참 좋을 텐데.      

              

'一雨一芽'(일우일아) 라 했던가!      

한 비에 한 싹이 열린다는 5월의 싱그러운 봄날에, 아이들도 교정의 나무만큼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나무처럼 많은걸 포근하게 품어주는 어른이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이끌어 가는 멋진 리더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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