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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당 Jul 09. 2021

지킴이실 (2)

1

비가 내립니다.

한평 남짓의 지킴이 실을 두드립니다.


여름방학의 텅 빈 운동장 

나뭇잎과 꽃잎, 내 마음을 적셔 줍니다.   

  

이런 날은 일찌감치

우산을 쓰고 단골 식당에서

따뜻한 돼지국밥으로 몸과 마음을 데우고

돌아와 커피 한잔을 마십니다.   

  

의자에 몸을 젖히고 창밖 하늘을 보며

좋아하는 노래

70년대 '세모와 네모'의 '안개비'를 찾아 

볼륨을 높여 들어 봅니다.    

 

♪~ 안개비는 소리 없이 꽃잎마다 스미네

이미 잊은 옛날 일을 내게 일깨워주네

한때 사랑한 ~  한때 미워한 ~

수많은 얼굴들이 내게 떠 오네

안개비는 소리 없이 메마른 내 마음 적시네 ~ ♪     


유리창에 맺힌 빗물처럼

흐릿한 추억을 일깨우며 내 눈시울이 아려옵니다.  


옛날 우리들 이름 한 글자씩 따 하트로 수놓은 손수건을 건네 준 한 소녀에게

이 노래를 선물로 띄워 보냅니다.        



2

운동장 끝

한 평 남짓의

사방 유리창의 지킴이실은

마치 옛날 음악다방의 DJ박스   

  

마이크도 

빽빽한 LP판도 없지만

낡은 PC 한 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한이 없지요.     

토르토와 발라드

손님도 신청곡도 없지만 

나는 음악을 켭니다. 

옛날 다방 식 프림 커피 달콤한 향기에 음악은 흐르고, 긴 안락의자에 기대어 나는 노래 속으로 빠져 듭니다.   

체육 수업하는 아이들

담장 옆을 지나는 사람들

하늘에 수놓은 앙상한 나뭇가지 그 끝에서 지저귀는 새들, 흘러가는 뭉게구름들     

찬비라도 뿌리면

맺힌 빗방울은 창문을 가려주고

지나치는 우산들 

DJ박스 안 나를 주시하지만

이곳은 완전한 나의 공화국이 됩니다.   

  

옛 가수를 뒤적이다

멋진 노래를 들었을 때

마치 잃어버린 옛 추억을 찾은 듯이 기쁩니다.     

오늘은

얼마 전 친구가 알려준

이수미의 '두고 온 고향'을 들었습니다.

반쯤 아는 가사였기에

너무 좋아 눈물이 맺히더니

어느 듯 혼자 훌쩍이고 있습니다.     


누구나 외롭고 힘들 때 

옛날을 떠올리듯 

우리는 가끔 옛 노래에 마음이 정화되고 위안을 받게 되지요.     


어릴 때 

어슴프레 저물녘이면 

엄마가 불러주던 '산 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의 음성이 그립습니다.  

노래를 모르던 중학교 때 

재주 많은 친구가 즐겨 부른 '당신은 철새'를 낭랑하게 듣고 싶어 집니다.      

입영 전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전영의 '어디쯤 가고 있을까'는 늘 내 눈시울을 아리게 했습니다.     

재작년 

속리산 펜션의 노래방에서 불렀던

김정호의 '날이 갈수록' 은 친구에게 팁까지 받아 젊은 날 우리들 만남을 더욱 붉게 덧칠해 주었었지요.     


새 노래는 친구처럼, 연인처럼 

그 노래 외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푹 빠졌다가, 익숙해지고 나면 조금 시들해지는가 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흘러  

우리의 몸과 마음이 완연히 시들해질 때면  

옛 노래와 추억은 우리들 곁으로 더욱 다가오겠지요.     


평생을

'찔레꽃, 산 넘어 남촌에는, 봄날은 간다'만 불렀던 엄마는 얼마나 적적하셨을까.     

왜 나는 엄마에게 더 좋은 노래를 들려주지 못했을까.     

나는 이렇게 좋은 뮤직 박스에서, 참 멋진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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