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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당 Jul 09. 2021

안전지킴이가 되다

정년퇴직을 한 지 7개월 여가 지나가고 이제는 나름의 백수로서 일상을 즐기고 있다. 거의 매일 집사람과 9시경에 어린이 대공원 찬물 샘터를 지나 편백나무 숲을 두 시간여 걸으며 아침 대용으로 커피 한잔과 빵 한 조각에 길들여졌다. 

30년간의 직장생활 후 이렇게 자유를 향유한다는 것이 행복처럼 느껴졌다. 책이나 TV를 아무 때나 볼 수 있고 평일이라도 친구를 만나 골프도 치고 당구와 바둑을 겨루고 술 한 잔 나눌 수 있는 것이 어찌 작은 기쁨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일하지 않는 하루의 일과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면서, 무료와 권태감 속에서 자신감의 감소와 내 마음속에 조급함과 초조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지난 추석 직전 옛 직장 동료의 퇴직자 모임에 갔다가, 중학교 안전지킴이로 자원봉사하는 선배 퇴직자가 나름 여유 있게 보여 지원 절차를 물어보았더니, 지원 신청 사이트를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그날 저녁 늦게 집으로 와서 인터넷을 살펴보니 집에서 가까운 00 초등학교에서 안전지킴이를 공개 모집하고 있다. 밤늦게까지 자기소개서를 적었으나. 마감이 내일 오후 2시인데 내일 아침에 골프 약속이 있어서 아내에게 부탁도 할 수 없어 망설여진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골프는 취소되고, 두시 마감시간에 학교로 가서 지원서를 제출하고 집으로 왔다.


다음날 오전에 아내와 산행을 하고 있는데, 지원자가 총 3명이라며 오늘 오후 3시에 와서 면접을 보라고 전화가 왔다. 부리나케 집으로 와 양복으로 갈아입고 초등학교로 갔다. 작은 스트레스도 약이라 했던가. 이 나이에 면접을 본다는 것도 신선한 학습이었다. 다수의 면접관들 앞에서 넥타이를 하고 답변을 하는 게 긴장되었지만 한편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의욕이 앞서 면접장에서 나의 답변은 보편성을 넘어 많이 오버하였으리라.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 스포츠맨이라서 아이들 안전을 누구보다 잘 돌볼 수 있습니다. 학교 또한 자기 집처럼 가꾸는 게 당연한 것이겠지요. 나무에 물도 주고 잡초도 열심히 뽑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2시간쯤 지나니, 담당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와 합격하였으니 내일 와서 인수인계를 받으라고 한다. 아마 면접 결과 나이 덕을 보았는지 상대적으로 가장 어린 내가 합격하였던 것 같다.     


바로 다음날 아침, 한 달을 하고 그만둔다는 교감 출신의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갑자기 후회감이 밀려왔다. 모든 게 3일 만에 일사천리로 결정되어 업무를 깊이 있게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지만, 당초 기대하고 상상했던 내용보다 강도가 높고 근무 상황이 힘들어 보였다. 

한 달 만에 사퇴하는 전임자의 이유도 궁금하였다. 인수인계 설명을 들으면서도 그 말이 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으며 내 머리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근무를 시작하려니 자신이 없고 그만 두려니 이전의 지루한 생활이 눈에 아른거리며 어렵게 얻은 자리를 포기하게 되는 것 또한 싫었다. 정말 머리가 지근지근 아파온다. 포기하려면 지금 해야 되는데 정말 진퇴양난이다. 

아직도 퇴직 전의 화려함을 생각하고 있는지, 아니면 지금 백수생활의 안이함을 떠나는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면접 때의 자신감과 용기는 어디로 갔는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른다.     

 

일단 내일부터 추석 연휴에 돌입하게 되니 그때 고민해 보기로 하고, 인수인계를 받자마자 집으로 달려왔다. 그나마 첫 출근을 할 때까지 10월 초 열흘 동안의 추석 연휴가 있었던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동안의 나의 심적 갈등과 번민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등산과 휴식을 하면서도 연휴가 휴식이 아닌 더욱 고통이었지만, 내 특유의 마인드 컨트롤로 온전한 자기 합리화를 거듭하여 마침내 근무를 하기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퇴직 후 7개월여 자유로운 생활을 하다가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하여 8시간을 근무하니 첫 며칠간은 적응이 되지 않아 누우면 잠에 곯아떨어졌다. 아침이면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나는 일어나 출근을 강행함으로써 어느 정도 규칙적인 일상으로 내 몸을 바꾸어 나갔다.     


초등학교라서 교통지도가 제일 중요하고 긴장이 된다. 가장 먼저 접한 것이 전자 호루라기 신호봉이다. 빨간 신호봉의 손잡이에 위치한 스위치를 누르면 호루라기 소리가 크게 울려서 지나가는 사람뿐만 아니라 차 안의 운전자도 놀라 속도를 멈추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보행 건널목의 초록 신호등이 들어올 때와 동시에 나는 이 스위치를 눌러서 자동차는 정지하고 사람들은 안심하고 건너가도록 한다. 차 안의 호루라기 소리에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이 걸려있으며, 아이들의 밝은 몸과 마음을 지켜내야 한다. 신경이 곤두서서 며칠 동안 나는 집에서 잠을 자며 꿈속에서도 내 호루라기 소리에 스스로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주변을 크게 울리는 이 호루라기 소리가 교차로를 건너는 아이들에게는 매우 신기하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하교시간 때 어떤 학생이 

"아저씨, 소리가 어디서 나지요." 묻길래, 나도 장난 삼아서

"응, 아저씨 휘파람 소리야~" 하면서, 초록 신호등 때 스위치를 누름과 동시에 입으로 휘파람 부는 시늉을 했더니, 아이들이 반신반의하면서도 재미기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지나갔다. 그리고 내가 휘파람을 크게 잘 분다는 소문이 주로 저학년들 사이에 퍼졌다. 그 이후에는 길을 건널 때마다 호루라기 소리를 들으면서, 휘파람을 부는 내 입을 유심히 바라보는 아이들이 차츰 많아져 갔다.


하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호루라기 소리를 내지 않도록 방침을 정했다. 건널목의 초록 신호등과 동시에 호루라기 소리를 크게 내는 것이 아이들에게 잘못된 학습효과를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우리 학교 앞이 아닌 어디에서라도 호루라기 소리만 나면 아이들이 무심결에 길을 건너게 되어 사고 발생의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즉 교통경찰 아저씨들도 사람 아닌 차량 통행의 신호로 호루라기를 마음대로 불어대기 때문에 아이들이 빨간불에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갈 위험이 높다는 스스로의 결론이었다.


학교 앞이 번잡한 지역이라 인근 대학으로 출근하는 형님과 지나가는 선배와 친구들도 자주 만나게 되었으며, 처음에는 쑥스러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욱 반갑고 뿌듯한 마음이었다.

주 3회 정도 화단의 야생화에 물도 주고 잡초를 뽑는 여유도 생겼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마주치고 함께 식사하는 교직원들도 반갑다. 일이란 이렇게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가는 것인가 보다.     


하루 종일 교정을 돌아다니다 보니 문득 옛날 시골에서 각각의 집을 수호해 주는 ‘집 지킴이 구렁이’가 생각난다. 난데없이 처마 밑이나 마루 아래에서 나타나 깜짝 놀라게 하지만,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사라지며 집을 지켜준다는 구렁이 말이다. 

학교 하나를 차고앉아 그 테두리 내에서 곳곳을 배회하는 나 자신이 마치 갈 곳 없어 눌러앉은 그 노련한 집 지킴이 구렁이 같이 여겨진다.   

  

세월이 흐르고 늙어가면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직업이 바로 이것이리라. 지킴이, 경비라는 이름으로 아파트와 빌딩을 지키고, 체육관과 공장, 상가와 주차장, 재개발 조합의 땅, 산과 강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이 차츰 늘어만 간다.

 갈수록 인간의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며 60이 넘은 퇴직자에게 좋은 일자리는 꿈도 꿀 수 없다. 단순한 지킴이로 가는 것 또한 '통과의례'처럼 다양한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닐는지.  

   

그러나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개인의 인권인 자유, 생명, 재산을 지키는 일을 어찌 가벼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린이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와 주변 환경을 잘 관리하며,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은 오히려 정말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이 일도 로봇과 AI가 우리를 대신하겠지만, 지금부터 나는 아이들의 '안전지킴이'를 천직으로 삼으련다. 그 속에서 나 자신의 쓸모와 존재 가치를 느껴 보리라, 뭐 인생이 별거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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