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했던 것과 내가 얻은 것

원하는 걸 얻지는 못 했으나, 또 아무것도 못 얻은 것은 아니다.

by 모자란사람

그러니까 이게 두 번째 글이다.

앞서 첫 번째 글에서 너무 비관적으로 나 스스로 연민하며 징징됐던 것 같다.


그래도 뭐... 근 3년간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아무것도 못 얻은 것은 아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대학원에서 원했던 것 (하지만 얻지 못한 것), 그리고 내가 얻은 것 이렇게 두 가지에 대해 서술해보고자 한다.


일단 내가 원했던 것.


1. 나는 내가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성장하길 바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PI가 아니다. 나는 박사과정 찌꺼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더 좋은 표현을 찾을 수 없다. 뭐 간혹 가다가 좀 능력이 있는 대학원생은 자기 연구를 리드하기도 한다. 일단 나는 그런 능력 있는 부류가 아닌 것 같다. 나는 병신이다. 대한민국 이공계의 상향평준화를 위해 자살을 해야 마땅하지만 그럴 용기는 차마 없다.

자기 비하는 이쯤 하고... 그럼 내가 뭘 해야 하는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주변인과 소통하고, 이를 통해 피드백을 받아 연구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써놨지만 나도 참 못하는 것 중 하나이다. 왜 어렵냐면, 상대방이 하는 말이 대개는 참 쓸모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건 당연한 게, 아무리 네가 독립적인 연구자는 아니더라도 니 연구는 네가 하는 거기 때문에, 데이터라던가, 최신 연구라던가, 아님 어떤 방법을 쓰는 게 맞을 것 같은지, 객관적인 팩트든, 아님 어떤 감(感)이든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하는 말은 현장에서 구르는 내가 보기에 맞지 않는 소리라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한 말은 또 내가 바라보는 관점과 다르기 때문에, 뭔가 못 봤던 것을 짚어낼 수도 있다. 의도 파악... 이 중요한 것 같다. 하라는 것 곧이곧대로 해서 "안 돼요!" 하면 경험상 안 좋아하시더라.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내가 현장에서 얻은 경험과 섞어서 적절한 솔루션을 내놓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2. 세상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싶다.

이건 케바케일 것 같다. 일단 내 경우는 절반 정도는 해당하는 것 같다. 일단 나는 공학계열이다. 아무래도 자연계열에 비해서는 세상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할 확률이 높다. 까놓고 말해서 푸앵카레의 추측을 푼다고 해서 세상에 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그것보다 새로운 카레 레시피를 만드는 것이 인류에 도움이 더 될 것이다. 공대는 그것보단 좀 낫다. 나중에 자세히 또 다루겠지만, 나는 이상 탐지를 연구하고 있다. 이상탐지는 실제로 세상에 도움이 된다. 나는 과제를 하면서 그것을 매우 잘 느꼈다. 비록 TRL은 낮았지만, 정해진 환경 내에서는 내가 구현한 AI는 잘 작동한다.. 그러니까 이상읊 잘 탐지한다.

문제는, 연구다. 그러니까 연구라는 것이 참 병신 같은 게, 연구를 위한 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DCASE를 봐라. 2021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DCASE의 성능은 AUC가 0.9를 밑돈다.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대충 시스템이 병신이란 뜻이다. 아무리 연구적으로 흥미로운 (딱히 흥미롭지도 않다 사실. 그냥 CV에서 하던 거 베껴온 것에 불구하다.) 주제를 다룬다고 한 들, 0.9를 못 넘는 게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또 엄청난 기술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21년도와 22년도의 DCASE task2는 domain adaptation과 domain generalization에 대해 다룬다. 근데 그 어떤 팀도 domain 관련 기술에 대해 깊게 파고 들어가지 않았다. 그냥 모델 자체를 잘 만드는 것이 해결책이다.

난 이런 짓을 하기 싫어서 22년도부터 새로운 연구 분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 분야가 또 엄청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 게다가 문제를 새로 정의하고, 이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려고 하니까 너무 어렵다. 그래서 내가 독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미안하다.


3. 시대 변화를 잘 따라가는 fancy 한 연구를 하고 싶다.

정말 슬픈 이야기지만, 이건 내가 병신이어서 못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은 꼭 시대 변화를 잘 따라가는 fancy 한 연구를 하길 바란다. 뭐 어느 정도는 연구분야 탓도 있다. 이 분야는 지금 몇 년째 DCASE 2020의 데이터를 사용하여 똑같은 문제를 누가 더 성능을 찔끔 올리느냐에 매몰되어 있다. 난 DCASE 2020이라는 하나의 데이터셋에 뭘 그리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어서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또 시대 변화를 따라가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진 않다.

요즘 시대에 핫한 것이 무엇인가. 생성형 AI 아니겠는가. 근데 일단 생성형 AI는 ASD에 그다지 의미가 없다. 뭐 굳이 따지자면 Outlier를 생성형 AI로 만들어서 exposure 하는 연구를 진행하려면 할 수 있지만, 그거 말고는 크게 정말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일단 내가 이 연구 분야를 택했다.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너무 폐쇄적인 것이 문제이다. 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새로운 기술을 실제로 적용해 봤는데 성능이 오르지 않는 것을 여러 번 목도하고 나서 이렇게 된 것 같다. 나는 몇 년째 ResNet18만 사용하고 있다. 이걸 어떻게 혁신하긴 해야 하는데, 아직 정답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내가 독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정말 미안하다.


그럼 이제 내가 얻은 것을 나열해 보겠다.


1. 코딩 실력이 늘었다.

난 원래 컴퓨터를 잘 만지지 못했다. 근데 대학원 와서 이런저런 실험을 하다 보니 코딩 실력이 늘은 것 같다. 마치 미국에 있다 오면 영어가 느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다만 뭔가 정제된 코스로 늘기보다는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익히면서 늘었기 때문에 뭔가 체계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차마 프로그래밍 실력이 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요즘은 chat gpt가 나와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chat gpt에 어느 부분을 코드로 짜달라 하면 잘 짜준다. 약간의 에러는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수많은 github 유저가 있고, 이 유저들이 남긴 코드들이 있다. 이걸 잘라다가 붙이면 코드가 완성된다.

이거 외에도 잡다한 컴퓨터 기술, 서버 다루는 법, 따위가 늘었다.


2. 1도 도움 안 되지만 야부리를 털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어떻게 보면 안 좋은 것이지만, 여하튼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해당 능력은 이미 30년 정도 지나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내용을 배우는 Course work을 배우면서 얻은 것이다. 요즘은 모르겠는데, 2020년대 초까지만 해도 DL과 관련된 강의가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고전적인 신호처리 관련 내용을 배웠는데, 정말 도움이 안 된다. 한 때 학부생 상담해 주는 TA를 했었는데, 이때 학부생한테 신호처리 관련 내용을 배우면 나중에 도움이 된다고 했었는데, 이젠 잘 모르겠다. 다만, 이런 능력이 누군가를 꼽주거나 아님 한 마디 거들 때는 필요한 것 같다. 특히 과제 미팅 같은 것을 해보면 실무자인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하등 쓸모없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종종 나오는 것들이 이 Course work 지식들이다. 모르겠다. 일단 지금은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3. 객관적인 "박사과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다. 사실 3번이 없으면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학원에 진학하지 말고 차라리 패스트 캠퍼스로 실력을 늘리는 것을 추천할 것이다. "박사"라는 타이틀은 살면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대기업에 들어갈 때 과장에 거의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박사과정" 이기에 전문연구요원에 편입될 수 있다. 사실 3번 때문에 버티는 것이다. 나 같은 인간의 부류를 "물박사"라 칭하던데, 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이게 두 번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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