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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의 작은 초록, 새해는 그렇게 시작된다

by 다다미 위 해설자

겨울바람이 조금씩 잦아드는 1월 초,
일본의 골목을 걷다 보면, 문 앞에 놓인 작은 초록빛이 시선을 붙잡는다.

카도마츠(門松), 대나무와 소나무가 만들어낸 단정한 새해의 문지기.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그 초록 속엔 오래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카도마츠 – 신을 맞이하는 자리
일본 사람들은 새해가 오기 전, 집이나 가게 앞에 카도마츠를 세운다.
소나무는 사계절 푸른색을 잃지 않는 강인함의 상징이고,
대나무는 똑바로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번영의 상징이다.

그 둘을 함께 엮어 문 앞에 세워두는 건,
'이 집은 준비가 됐다'는 신호다.
새해의 신, 도시가미(年神)가 내려와 복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새해가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첫 풍경이다.

시메카자리 – 악운을 막는 작은 장식
그 옆에는 시메카자리(しめ飾り)가 걸린다.
짚으로 엮은 동그란 띠, 종이 장식, 작은 귤이나 해산물이 매달린 모습.
모양은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의미는 같다.

경계와 보호.
이 선을 넘어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고,
안쪽은 깨끗하고 평온한 공간으로 남기 위한 작은 의식.

조용한 골목을 걷다 보면,
시메카자리가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모습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진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하네츠키를 한다.
작은 라켓처럼 생긴 판으로 셔틀콕을 쳐 올리는 놀이.
배드민턴을 닮았지만, 좀 더 정겹고 소박하다.

한 번이라도 셔틀콕을 떨어뜨리면,
서로의 얼굴에 먹을 칠해주는 장난이 시작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새해 아침을 깨운다.

어른들은 따뜻한 술을 따른다.
조심스레 오세치요리를 나누고, 한 해를 돌아본다.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또 한 해를 잘 버텼다는 안도감.
잔잔한 술 한 잔 속에 녹아든다.

새해의 문턱에서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닐 수도 있는 문 앞의 작은 장식.
하지만 카도마츠와 시메카자리를 준비하는 그 마음에는
늘 비슷한 소망이 담긴다.

"올해도 무사히, 평온하게,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소란스럽지 않아 더 따뜻한,
그런 일본 새해의 풍경 속을 걷는 순간,
문득 나도 내 삶의 문 앞을 다시 정돈해보고 싶어진다.

조용한 골목, 흔들리는 초록빛, 그리고 마음속 작은 다짐.
새해는 그렇게, 아주 사소하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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